초등 동창인 그를 다시 만난 건 7년 만이었다.
초등학교 때 난 키가 작아 늘 맨 앞에 앉았고 그는 키가 커서 맨 뒤에 앉았었다. 그 옛날 남자애들은 내 키가 작다고 꼬맹이라고 놀렸고, 그도 그 중의 한 명이었다. 다행히 난 어른이 되면서 평균 키 정도는 되었다. 나는 그를 오랜만에 다시 만나기로 하면서 내심 그가 키가 작아서 놀려줄 수 있기를 바랐다.
오랜만에 만난 그는 안타깝게도 키가 컸다. 어릴 때 컸다가 자라면서 작아지는 사람들이 많다던데 그는 그냥 쭉 컸나 보다. 장난기 많아 보이는 얼굴은 어릴 적 모습과 그대로였다.
나는 집안에 일이 생겨 고 1 때 부랴부랴 서울로 올라오면서 어릴 적에 살던 지방 도시를 떠나게 되었다. 3년 내내 그곳을 그리워하다가 대학생 여름방학이 되어 친구 집에 며칠 놀러 가게 되었다.
며칠 친구들과 잘 놀고 마지막날 서울로 올라오기 직전 터미널에서 그를 만났다. 버스 시간까진 약 1시간이 남아 있었다.
초등 6학년 때 나는 왕따였다. 지금이야 '왕따'라는 용어라도 있었지, 그땐 그런 말도 없었다. 그냥 자타공인 '반에서 친구 없는 애'였다. 다행히 물리적 괴롭힘은 없었다.
같은 반에서 유일하게 친한 친구는 주류에 속하고 싶은 마음이 강해서 공개적으로 나와 친한 것을 표현하지 않았다. 다만 하교하면서 나에게 애들이 나에 대해 욕했던 이야기를 전해주곤 했는데, 나는 그게 고마운 건지 싫은 건지 잘 몰랐다.
반에서 애들이 나에게 관심을 가질 땐 어떤 남자애가 날 좋아한다는 소문이 돌 때뿐이었다.
"야, ㅇㅇ가 너 좋아한대."
남자애들은 놀렸고 여자애들은 궁금해했다.
"ㅇㅇ랑 친해? 걔가 어떻게 해서 널 좋아해?"
그도 나를 놀리기 좋아하는 남자애 중 한 명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친하지도 않았지만 안 좋은 감정을 가진 애도 아니었다. 다만 우리 반에서 그와 나는 성적으로 1, 2등을 다투었기 때문에 은근히 서로를 의식했었다.
어쨌든 7년 만에 그와 연락이 닿아 만나게 되었다. 그는 수도권 소재 대학을 다니고 있었는데 마침 방학이라 집에 내려갔다고 한다. 나중에 서울에서 만나도 된다는데 그는 굳이 터미널에 나오겠다고 하였다.
난 배낭 하나를 메고 티셔츠랑 반바지 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있었는데 - 삼선슬리퍼는 아니었다. - 내 모습을 처음 보더니 그는 웃었다.
"이러고 왔어?"
"이러고 왔지. 왜?"
"아니야."
우리는 터미널 근처 빵집에 앉아서 얘기를 했다.
난 조심스럽게 옛날 얘길 꺼냈다.
"나 옛날에 이상했지? 애들이 나 싫어했었는데."
"아니? 잘 모르겠는데? 어릴 땐 다 좀 이상하지 않나?"
"그런가?"
마음이 편해졌다. 그 시절 나를 알고 있던 사람이 내가 이상하지 않았다고 말해주니 위축된 어깨가 펴지는 느낌이었다.
이번엔 그가 말했다.
"옛날에 내가 너 좋아했는데 몰랐지?"
"아, 그랬어? 나도 너 좋아했던 거 같은데."
"우리 둘이 수학 경시대회 준비한다고 남았는데 그 때 담임이 나 시험 잘 못 봤다고 혼내서, 내가 네 앞에서 혼나가지고 얼마나 창피했는 줄 알아?"
"수학 경시대회? 내가 수학 경시대회를 나갔어? 나 수포잔데."
기억이란 건 신기하다. 각자한테 인상 깊은 것만 기억했다. 내가 기억하는 걸 그는 기억하지 못 하고 그가 기억하는 걸 내가 기억하지 못 했다.
어쨌든 그와 이야기하는 시간은 즐거웠다. 훌쩍 흘러가 버린 시간을 아쉬워 하며 나는 서울 가는 버스를 탔고 그는 그곳에 남았다.
이성으로서의 감정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냥 그는 내게 유일한 초등 동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