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15년이라는 적지 않은 직장 생활로 나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 회사에 다니며 받은 월급으로 아이들도 키우고 우리 가족이 잘 생활한 것은 맞지만, 조기 은퇴를 할 만큼 부동산을 마련해 놓았거나 재테크를 잘하였던 것도 아니니 재력은 나에게 남지 않은 것이 확실하다. 내가 수행한 일로 내가 살아있음을 느꼈던 적도 없다. 가뭄에 콩 나듯 성취감이나 보람을 느낀 적도 간혹 있었지만, 자아실현과는 거리가 멀었다.
남은 게 거의 없는 듯한 직장 생활에서 그나마 남은 것은 회사에서 주어진 일들을 잘 해냈던 경험이다. 비록 성실함과 책임감으로 일이 늘어나서 불만을 가지기도 했고, 때로는 상사에게 깨지고 때로는 나의 계획대로 일이 돌아가지 않아 좌절하기도 했으나, 나는 어디 가서든 ‘돈값’은 해낼 사람이라는 믿음을 얻었다.
13년이라는 결혼 생활과 10년이라는 육아 기간에 나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 살림이나 요리 실력은 그다지 남지 않았다. 원활한 가정생활을 위해서 ‘할 일’이 많다는 것과 그것을 다 잘 수행하기에 나는 지독한 귀차니스트라는 깨달음만 남은 듯하다.
나에게 확실히 남은 것은 가족이다. 나를 지지하고 믿어 주는 남편과의 대화는 즐겁다. 아이들이 조잘거리는 모습을 보면 매일 아이들의 생각이 커짐을 느낀다. 또한 아이들을 키우며 나라는 사람도 함께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애들 잘 크고 가족 건강한 게 내 행복이지’라는 마음으로 충분하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하나? 가끔씩 마음속 허함이 찾아올 때는? 나의 경우는 글을 쓰면서 마음속 허함을 채우고 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 마음은 무엇을 원하는지, 아울러 내 꿈은 무엇인지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나에 대해 알아간다. 맨날 똑같아 보이는 지겨운 일상에서 조금씩 특별한 점을 포착하여 내 일상을 특별하게 만들어간다.
‘나에게는 글이 남았다’는 결론을 위해 지금까지 쭉 달려왔다. 그런데 문득 한낱 나란 인간이 그렇게 말해도 되는 건지 회의감이 든다. 내가 글로 성공한 사람이었다면 나에게 글이 남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을 텐데.
오랫동안 꾸준히 잘 쓰는 사람들과 비교할 때 나의 글쓰기 여정은 아직 초심자 수준이다. 그래도 인생의 절반(혹은 1/3?)을 살아온 시점에 자발적 글쓰기를 만난 것은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글쓰기가 앞으로 내가 살아갈 날에 큰 힘이 되어 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니까 나는 이렇게 말해 본다.
40대 워킹맘인 나에게는 ‘쓰는 삶을 살겠다’는 꿈이 남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