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실 완벽주의자였다. 줄은 반듯하게 그어야 했고 동그라미는 완전히 동그란 동그라미로 그려야 했다. 줄 맞춰진 책상들, 울지 않고 가지런히 깔린 침대보가 좋았다. 공부든, 일이든 놓치는 부분 없이 잘 해내야 한다는 생각도 강했다.
문제는 나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손으로 그리고 만드는 건, 손에 뭐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영 젬병이다. 그러니 반듯하고 가지런한 상태를 만들기가 남들보다 훨씬 어려웠다.
삐뚤빼뚤한 줄과 찌그러진 동그라미, 줄을 맞춰도 반듯하지 않은 상태를 보며 스트레스를 받았다. 줄이 있는 가나 초콜릿을 자를 때마다 줄 맞춰 반듯하게 자르지 못하여 신경질이 났다. 우산을 접어도 울퉁불퉁 예쁘지 않았다. 가지런히 우산을 접는 친구한테 “우산 어떻게 그렇게 예쁘게 접어?”라고 물어보니 친구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너도 그냥 접어!” 대단한 기술이 필요한 게 아니라 그냥 접으면 된다고? 난 아무리 해도 안 되는데. (지금까지도 우산을 예쁘게 못 접는다.)
공부나 일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꼼꼼하고 정확한 사람이라고 강하게 믿으며 살았지만, 그러한 신뢰는 종종 깨지곤 했다. 내가 아무리 꼼꼼하게 본다고 해도 구멍이 생겼고, 완벽하게 외웠다고 생각하는 일도 잘못 외우는 경우가 있었다.
‘완벽하지 않은 완벽주의자’는 살기 힘들었다. 완벽을 추구하는데 나 자신은 완벽하지 않으니 그 괴리에서 오는 고단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꼼꼼해질까? 어떻게 하면 완벽까진 못 가더라도 완벽에 가까워질 수 있을까?
내가 완벽하지 않을 거면 완벽을 추구하지나 말지. 대체 나는 어쩌자고 완벽을 추구해서 이렇게 힘든 거야?
이거다! 유레카! 나를 완벽하게 만드는 건 어차피 이번 생에 틀렸고, 그렇다면 내 정신 건강을 위해 완벽주의를 버리자.
나 자신이 완벽하지 않음을 인정하고 나니 세상 살기가 조금은 수월해졌다. 부끄럽고 감추고만 싶던 나의 실수는 더 이상 흑역사가 아니라 재미있는 ‘얘깃거리’가 되었다. 나의 허술함을 마주보니 나는 진심으로 웃을 수 있게 되었다. 실수를 저지를 때도, 운이 유달리 안 따라주는 날에도 ‘지금 이 순간만 힘들지. 시간 지나면 웃게 된다.’라고 생각한다. 아울러 ‘이거 글로 남기면 진짜 재미있겠다.’라며 사람들을 웃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으로까지 발전하였다.
인생에 좋은 일만 가득하기가 어디 쉬운가? 자잘한 실수에도 웃고 운이 약간 나쁜 날도 털어 버려야 즐거워진다. ‘내 인생은 왜 이래?’보다는 ‘웃기는 내 인생’으로 받아들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