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사온 세제의 뚜껑 색깔이 다르다 했더니 하나는 일반 세탁기용, 하나는 드럼 세탁기용이다. 우리 집은 드럼 세탁기라 드럼용을 사야 하는데 아무 생각 없이 나란히 있는 세제 두 개를 집어온 것이다.
"아우! 2개 사면 할인되는 행사, 드럼 세탁기용 세제를 2개 집어와야 하는데 일반 세탁기용 세제랑 드럼 세탁기용 하나씩 집어왔네."
남편에게 말했더니 남편이 즉각 반응한다.
"아니 무슨 마트에서 그렇게 다른 상품을 묶어 팔아?"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내가 잘못 집어왔어. 보통 내가 잘못 갖고 오잖아. 인터넷 주문해서 2개 오면 내가 실수로 2개 주문한 거고."
"아... 그렇긴 하지."
어느새 처세의 달인이 된 남편은 처음부터 내 잘못이라고 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네가 잘못 갖고 왔겠지."라고 했다면 나에게 좋지 않은 소리를 들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내 반응을 살살 보다가 내가 먼저 "내 실수야."라면 "자기가 실수하는 경우가 많지."라고 맞장구를 치는 식이다.
나도 처음부터 순순히 내 실수를 인정한 것은 아니었다. 이런 일들이 쌓이고 쌓여 이제는 순순히 인정하고, 그러려니 하는 단계가 된 것이다. 예전에는 내가 꽤나 정확하고 꼼꼼한 사람인 줄로 착각을 했었다.
2010년 남편과 홍콩에 여행 갔을 때 일이다. 덥고 습한 홍콩에서 많이 걸어 지쳤을 때 우리는 저녁을 먹으러 당조(糖朝)라는 식당을 찾았다. 이 식당은 내가 전에 한 번 와서 맛있게 음식을 먹었던 곳이라 자신 있게 남편을 데리고 온 것이다. 나는 능숙하게 주문지에 주문할 음식을 체크하였다.
당조(출처: 네이버 블로그 TiniWini Christine)
잠시 후 주문한 음식이 차례대로 나오는데 웬 거대한 나무 찜통에 두부 푸딩(豆腐花)이 나왔다. 나는 분명히 소(小) 자로 시켰는데 말이다.
"아니, 난 작은 걸로 시켰는데 이게 뭐야? 이걸 어떻게 다 먹어? "
두부 푸딩 소(출처: 네이버 블로그 문블링의 반짝이는 하루) 두부 푸딩 대(출처: 네이버 블로그 unitycode) 나는 씩씩대며 말했고, 남편은 내 눈치를 보며 "그러게. 뭔가 식당에서 실수가 있었나?"라고 했다. 식당에 따져야지 하는 순간 낯선 요리가 나왔다. 이것 역시 내가 시키지 않은 메뉴였다. 나는 직원을 불러 주문에 착오가 있는 것 같으니 확인해 달라고 했다. 잠시 후 직원은 내가 체크한 주문지를 가지고 왔다. 씩씩대며 주문지를 봤더니 두부 푸딩 대(大) 자에 버젓이 체크가 되어 있었고, 내가 원래 시키려던 메뉴의 위칸에 체크가 되어 있었다. 으아! 이놈의 손! 아니, 눈이 잘못했으니 '이놈의 눈'이라고 해야 하나? 직원에게 착각해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나는 의기소침해졌다.
"내가 왜 그랬을까? 도대체 왜 잘못 시킨 걸까? 제대로 봤어야 했는데."
"아니야. 그럴 수도 있지. 우리 오늘 많이 걸어서 그래. 근데 잘못 시킨 이 메뉴도 맛있어!"
"그래? 어우, 원래 시키려던 메뉴 자기한테 맛보여주고 싶었는데. 미안해."
그 이후로 나는 식당에서나, 인터넷 쇼핑에서나 뭔가 잘못되면 일단 나 자신을 의심해 본다. 잘못 나왔을 때 순간적으로 짜증이 나기도 하지만 일단 따지기 전에 내가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 택배가 왔다. 아이들에게 먹일 텐텐 영양제다. 텐텐은 분명히 어제 왔는데 오늘 또 오다니 이게 무슨 일이야? 확인을 해보니 역시나 내 잘못이다. 안 시킨 줄 알고 한 번 더 시킨 것이다. 반품하려고 보니 반품 택배비가 6천 원이다. 그냥 뒀다 먹이는 수밖에.
오주문의 달인은 이제 그만 오주문의 세계에서 졸업하고 싶다!
이틀 만에 텐텐 부자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