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월간남친> 리뷰
매일 비슷한 일상을 보내다 보면 뭔가 다른 사건을 기대하게 된다. 요즘에는 소위 도파민을 충전하고자 하는 이들이 많기에 <나는 솔로>, <환승연애> 등과 같은 자극적인 연애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는다. 다른 예능에서도 앞다투어 자극적인 연출과 편집을 사용한다.
굳이 얘기하자면, 나는 자극적인 도파민보다는 간질간질 설렘 쪽 정서를 좋아한다. 그래서 연애 프로보다는 로맨스 드라마를 본다. (도파민 터지는 연프는 한 번 입문하면 중독성이 심할 것 같아서 아직 한 번도 보지 않았다.)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월간남친>이라는 드라마를 보았다. 사실 제목부터 반감이 들었다. '월간' 남친이라니! 월마다 남친을 바꾼다는 건가?
사실 극 중에서 지수도 가상 연애 구독 서비스 '월간남친'이란 말을 처음 듣고 풉 웃는다.
지수의 연기력 논란 때문에 볼까 말까 망설였지만, 일단은 믿고 보는 '로코킹' 서인국을 믿고 드라마를 시작했다.
가상 연애 서비스, 나라면 구독할까?
극 중에서 '월간남친'은 가상 연애 시뮬레이션 서비스의 이름이다. VR 장비를 착용하고 데이트를 체험한다. 남자 풀이 무려 900명이며, 한 남자와는 50시간까지 데이트가 가능하다.
월 구독료는 기본 등급인 베이직은 50만 원, 그다음 등급은 100만 원, 가장 높은 등급은 200만 원이다. 진짜 미친 설정 같은데, 묘하게 설득력이 있다.
연애를 하려면 영화 보고 밥 먹고 놀러 다니는 데 돈을 써야 한다. 머리며 옷이며 화장품이며 꾸미는 데도 돈을 써야 한다. 게다가 현실에서의 연애가 어디 호락호락하던가. 나에 대한 자신이 없거나, 상대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잘 이어지지 못한다. 또한 남자를 만날 수 있는 기회도 한정적이다. 사귀기 시작해도 싸우고 진 빼기가 일쑤이고, 맘고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월간남친'에선 그럴 일이 없다. 구독료만 내면 추가로 돈 쓸 일이 없고, 어차피 내가 주인공이기에 상대방이 날 좋아하지 않을까 봐 의기소침할 필요도 없다. 또한 상대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제쳐 버리고 다른 데이트 상대를 찾으면 그만이다.
게다가 '월간남친'에는 연애하기에 아주 훌륭한 멋진 이들이 많다. 심지어 나만의 맞춤형 남친 제작도, 단 한 번이지만 가능하다. 외모부터 성격, 취향까지 나에게 딱 맞는 완벽한 남친을 사귈 수 있다.
극 중에서도 '월간남친'은 선풍적 인기를 누린다. 홍보 행사 팝업 스토어는 문전성시를 이루고, '월간남친' 리뷰어까지 등장한다. 당연히 찬반 논란도 뜨겁다. 현실이 아닌 세상에서 연애를 하는 게 정당한가라는 기본적인 질문부터 연애하고 싶은 사람의 마음을 이용한 상술이라는 비판까지 제기된다. 또한 이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에 대한 비난도 거세다.
이런 가상 데이팅 앱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그리고 내가 싱글이었다면, 나는 과연 이용하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상상해 보건대, 나는 아마 '월간남친'의 열렬한 구독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가상 남자친구에 빠져서 현생을 엉망진창으로 살 것 같다. (드라마를 정주행 하는 현재의 내 모습만 봐도 충분히 가늠이 된다..ㅋㅋ) 그러다가 이렇게 살면 안 된다고 자책하고 가상 남친과 이별하겠지. 마음 아파하다가 다시 다른 가상 남친을 찾지 않았을까.
저를 좋아한다고요?
드라마 <월간남친>에서 지수(블랙핑크의 지수)는 웹툰 회사 피디 '서미래'의 역할을 맡았다. 3년 전에 남자친구와 이별한 후부터 연애에 관심을 끊고, 집-회사-집-회사만 왔다 갔다 하는 생활을 하며, 퇴근 후 약속도 거의 잡지 않고 여가시간을 최대한 집에서 보내려고 한다. 지수의 연기는, 내가 보기엔 괜찮았다. '서미래'는 오글거리는 로맨스를 싫어하며 감정이 얼굴에 다 드러나는 사람인데, 지수가 이 캐릭터와 잘 맞았던 것 같다.
서인국은 '서미래'와 같은 웹툰 회사의 에이스인 '박경남' 피디의 역할을 맡았다. 그는 능력이 출중하다. 그가 맡은 웹툰 작품들은 열람 순위 1등이고, 드라마나 게임의 판권으로까지 계약된다.
'박경남'은 표정의 변화가 없어서 차가워 보이는 캐릭터다. 말수도 없는 데다가 가끔 하는 말도 이 모양이다. 회사 워크숍에서 술이 약한 '박경남'이 취해서 자고 있다가 '서미래'가 노래 부르는 사이에 깨서 "귀가 아파서 못 자겠어요"라고 하거나 다음 날 '서미래'에게 "어제 술 많이 드셨어요? 아직 술 냄새나요."라거나. (사람 무안하게!) 그래서 '서미래'는 '박경남'을 싫어한다. 사실 둘 다 서로 싫어하는 라이벌인 줄 알았는데... '박경남'이 '서미래'에게 뜬금포 고백을 하면서 둘의 관계는 달라진다.
고백이 진짜 뜬금포긴 했지만 뒤에 '박경남'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나오면서 납득이 되었다. '서미래'를 좋아하면서 '박경남'의 표정에 미세한 변화가 나타나는 게 귀엽다.
'서미래'는 '박경남'이 고백하기 전까지는 가상 연애 시뮬레이션에서 가상의 남자친구와 연애를 하지만, 어느 순간 현타가 온다. 결국 가상 남친과는 이별하고 현실에서 '박경남'과의 연애를 택한다.
'서미래'와 '박경남'이 서로 존댓말을 쓰며 연애하는 게 좋았고, 특히 표현을 잘 못 하는 (줄 알았던) '박경남'이 '서미래'에게 애정 표현하는 장면들이 치였다.
<월간남친>이 던지는 질문
<월간남친>은 총 10부작으로 분량이 짧고, 내용이 무겁지 않으므로 가볍게 보기 좋은 드라마다. 가상 환경에서 지수가 아주 다양한 패션을 소화하는 것도 관전 포인트. (난 사실 머리랑 옷 휙휙 바꾸는 장면은 다 스킵했...)
가볍게 볼 수 있는 드라마지만, 드라마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생각해 봄 직하다. 가상의 완벽한 남친이 나은가, 아무리 불완전하더라도 현실의 남친이 나은가?
드라마의 결론은 당연하다. 불완전한 사람이더라도, 그리고 언젠가 사랑이 변한다 하더라도 현실의 살아있는 사람이 낫다는 것. (게다가 상대는 서인국!)
... 그래봤자 현실 남친 '박경남', 즉 서인국도 나에겐 결국 드라마 주인공일 뿐이다. (갑자기 현타가 ㅎㅎ)
그나저나 AI가 좀만 더 발전하면 가상 연애 구독 서비스가 실제로 출시되는 건 시간문제일 것 같은데. 그땐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혹 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