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친구'라는 주제로 연재한 글에서 김민섭 작가는 "작가들은 첫 책을 출간하고 나면 그간의 친구 사이가 어느 정도 정리되고 만다"라고 썼다. 신간이 나오면 외롭고 두려운 마음이 들고 판매지수를 검색하게 된다고.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친구들에게 출간 소식을 알렸을 때 "책을 안 읽으니 술을 사겠다"거나 "책을 뭐 이리 자주 내냐"는 친구들의 반응에 초라함을 느꼈다고 한다. (<내가 너의 첫문장이었을 때>, p.84~85)
나에게는 등단한 소설가 친구가 있다. (내가 연예인 친구는 없어도 소설가 친구는 있단 말이지!) 그러고 보니 친구는 나에게 책을 사달라고 한 적이 없었다.
친구와 나는 초등학교 때 만나서 지금까지도 우정을 지속하고 있다. 멀리 떨어지게 됐을 땐 편지로 왕래했었고, 성인이 된 후엔 서로의 생일 즈음 해서 1년에 두어 번씩은 만난다.
친구는 학창 시절부터 장래희망이 소설가였는데, 내 기억으론 꿈이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물론 생계유지를 위해 다른 직업을 가졌을지언정 그건 글쓰기를 위한 부업이었다.)
신춘문예에서 고배를 마실 때마다 마음이 흔들렸을 만도 한데, 친구는 그래도 우직하고 성실하게 글을 썼다. 나는 20대부터 30대까지 '이 길이 아닌가?' 혹은 '내 선택이 틀렸나?'라는 고민을 수시로, 끊임없이 했는데 친구는 본인의 꿈에 대한 확신이 있었나 보다. 이 점이 참 존경스러웠다.
등단을 한 이후에도 친구는 여전히 성실하게 글을 쓴다. 그 덕분에 많은 작품들이 세상에 나오고 있다. 이 점도 참 존경스럽다!
나는 초중등 시절에 이 친구를 아주 좋아해서 친구를 많이 따라 하려고 했다. 좋아하는 연예인부터 나의 가치관까지, 친구는 나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심지어 나도 소싯적 장래희망이 작가였는데, 이게 순수하게 자발적인 나의 꿈이었는지 친구의 영향을 받아 품게 된 꿈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동화작가, 그 이후엔 소설가라는 꿈만 품고 제대로 된 노력을 해보지 않았다. 내가 유일하게 완성한 작품은 초등학교 때 쓴 '꼬마 수다쟁이'라는 단편동화였다. (엄마는 이 동화를 동네방네에 자랑하셨었다. 흡!)
친구가 등단하여 첫 책이 나왔을 때 나는 너무 기뻐서 친구의 책 열 권을 주문했다. 그때는 내가 돈을 벌어 이렇게 플렉스 할 수 있다는 게 행복했다. "내 친구가 이번에 등단했는데 말이야." 하면서 주변에 선물하는 기분이 참 좋았다.
친구는 성실하게 글만 쓰는 사람이 아니라 풍류를, 더 정확히는 술과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맥주며 사케며 와인이며 못 마시는 술이 없고 (소주는 같이 안 먹어봤다) '부어라 마셔라' 양으로 승부하는 게 하는 게 아니라 술을 오롯이 즐길 줄 안다. (그러나 주량마저 대단하다) 오죽하면 등단작이 <애주가의 결심>이다.
친구는 음악도 좋아하는데, 내가 친구와 만날 적마다 얘기하는 주제는 '저물어버린 Rock의 시대, Rock은 과연 다시 부흥할 수 있는가?'이다. (이 친구를 제외하고는, 다른 이들과 얘기하기 힘든 주제다) 스피커가 빵빵한 음악 감상 공간에 가서 신청곡을 써내고 음악을 같이 들었던 시간, 그리고 오아시스의 'Don't look back in anger'를 사람들과 떼창 했던 기억은 아직도 강렬하게 남았다.
친구가 모름지기 소설가인데 소설 얘기를 너무 안 했다. 친구 소설의 특징은 사람에 대한 따스한 시선이라고 생각한다. 작품마다 세심하고 따뜻한 관심의 힘이 사람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담고 있다. 그래서 읽고 나면 주변 사람에게 안부 인사를 건네고 싶어진다.
이쯤에서 친구의 이름을 공개하자면 '은모든' 작가다. 우리 집 책장 한 칸엔 은모든 컬렉션이 마련되어 있다. 내가 산 책도 있고 친구가 선물해 준 책도 있다. 전부 다 술술 읽히고 재미있는데 나는 <한 사람을 더하면>이 가장 재미있었다. 흥미진진하고 생각할 거리도 많다.
생각난 김에 인터넷 서점으로 친구 이름을(정확히는 필명을) 검색해 보니 작년에 <세 개의 푸른 돌>이라는 장편소설이 나왔다. 신간이 나온지도 모르고 살았는데 검색해 봐서 다행이다. 나는 마침 다음 주에 친구를 만나기로 했으므로 부랴부랴 책을 주문했다. 친구는 나의 벼락치기를 이해해 줄 것이다. 친구의 허락 없이 글을 썼는데, 이에 대해서도 친구는 아마 너그러이 이해해 주리라. 그리고 기왕 이해해 주는 김에 이런 다급한 마무리도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