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와 빈 그리고 행복에 관하여

필리핀에서 느낀 빈부

by 레드뷔

빈부.


오래된 이슈입니다.

상대적, 절대적, 과거와 현재, 자본주의의 폐해 등등

난해한 기준들과 원인들, 그리고 나름 제시된 해법들.

저는 그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상대적인 빈부차에는 화가 난다는 것,

절대적인 빈부차에는 가슴이 아프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마음속에 사람은 평등해야 한다는 본능 같은 것이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필리핀의 빈부차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한쪽은 구걸을, 한쪽은 동물원을 소유할 부를 갖고 있습니다.


그럼 이곳은 온통 불행뿐인가?

저는 한국보다 사람들이 더 많이 웃긴 하더라 고 답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제 마음 한켠은 여전히 불편하고 조금 아프기도 합니다.


비지씨의 밤.JPG 이곳도 필리핀.


IMG_7292.JPG 이곳도 필리핀.






골프 연습장에 다녀오는 길이었습니다.

벌써 사치스러운 냄새가 솔솔 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 번만 봐주십시오. 1시간에 8천 원 하는 골프 연습장입니다.)


땅에 있는 골프공들이 저를 피하는 것 같습니다.

다시 보니 공은 가만히 있습니다.

사실 제 몸이 뇌를 따르지 않은 탓입니다.

42년이나 뇌와 호흡을 맞춰왔으면서도 아직도 이렇게 손발이 안 맞나? 분노했습니다.

그러다 그렇게 잘했으면, 운동선수 했겠지 하는 생각에 제 몸을 용서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돌아오는 차 안, 시원한 에어컨에 땀을 식히며,

어떻게 하면 공을 잘 맞출 수 있을까에 몰두했습니다.

그러다 차창밖 길가에 앉은 한 아기 엄마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눈이 안 떨어집니다.

1살이 채 안된 아이가 엄마 품에서 몸부림치고 있었고,

아이 엄마는 친구와 얘기하며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앞니 하나가 없었고,

발에는 신발이 없었습니다.

신호에 차들이 멈추면 다가가 구걸하는 여인.

20대 초반. 환한 미소.


처음엔 화가 났습니다.

어린 나이에, 제 몸 하나 건사 못하면서,

책임도 못 질 아기를 낳아서 어쩌려고,

아기는 무슨 죄냐!


그리고 측은했습니다.

저 어린것이,

더 어린것을 낳고,

거리에서 구걸하며 웃고 있다.


저는 저의 눈으로 그녀에게 화를 냈고,

그녀는 현실에서 웃고 있었습니다.


묘한 순간이었습니다.


이제 누가 더 행복하지?


이게 뭔가 싶었습니다.





차가 신호에 대기하고 있으면 종종 물건을 팔거나 구걸하는 사람들이 다가옵니다.

저는 한 번도 문을 열어준 적이 없습니다.

일신의 안위 때문이었습니다.

비겁하지만, 현실이었습니다.

누가 도와주려다 해코지를 당했다는 소문들도 한몫한 것 같습니다.

실제로도 수없이 겪었습니다. 사람들의 동정심을 악용하는 사람들을.

그 사람들 때문에 내 마음은 완전히 닫혔노라, 그들을 탓하라며 저는 저에게 변명합니다.

그래봤자 마음은 똑같이 불편합니다.

잊혀지지 않는 장면 하나가 있습니다.

수능금지 송처럼 제 뇌에서 좀처럼 떠나지 않는 장면입니다.

중분대 화단 잔디에서 어린 소녀가 노래 부르며 춤을 춘다. 맨발로.

순수하고, 해맑게 즐거워한다.

구걸하는 엄마 곁에서.

메트로 마닐라의 어느 대로 한가운데서.


그들은 저대로 행복할까?

나보다도?


어쩌면 한 달 만에 겨우 미소 짓던 순간을,

제가 우연히 봤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모릅니다. 그들의 사정을.

굳이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가슴은 아프지만 선뜻 나설 용기가 없어서,

마음속 불편함을 어떻게든 해보려고

상대적 행복이니, 절대적 행복이니,

네가 행복하니, 내가 행복하니를 따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결국 무관심, 못 본 척 또는 위험하다는 변명 뒤에 숨을 것이 분명합니다.

부끄럽지만 제 한계입니다.

그 한계를 넘는 순간이 올까?

나는 그 순간을 바라기는 하는가?


빈부와, 행복, 그리고 저를 한참 생각해 봅니다.


상대적인 빈부차에는 화가 납니다.

네가 뭐가 그렇게 잘났냐 하며 그들의 성공을 폄하하기도 합니다.


절대적인 빈부차에는 무력해져 가슴 아픕니다.


결국 중요한 건 저 자신인 것 같습니다.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지는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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