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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지 Oct 17. 2020

나만의 바보 모먼트, 바보 플레이스를 지켜나가기


가끔 정말 좋아하는 대상 앞에서는 바보가 된다. 아니 내가 왜 그랬지? 지나고나서야 정신이 든다. 


하지만 바보가 되어도 좋다. 계속 좋아할 수만 있다면 
좋아하는 대상 앞에서 모든 것을 내어주는 아이같은 순간은 어른이 되고서부터 점점 줄어든다. 온전한 좋아함보다는 이성과 계산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아주 가끔 일어나는 기적같은 순간이 되어버리고. 오히려 바보가 되어도 좋으니 그런 사고의 순간이 찾아오면 좋겠다 바라기도 하지. 내 경우 10대 시절 밴드 라이브 공연을 처음 접했을 때도 그랬고, 정말 애정했던 프로젝트들이 그러했다. 아름답고도 치열한 몇몇 순간들이 흘깃 지나간다. 


이것을 나는 바보 모먼트라고 부르겠다. 그리고 그 빠져든 대상의 호구가 되어 애정을 수행할 수 있는 공간은 바보 플레이스. 


그런 나에게 어린 시절부터 유지되어온 바보플레이스는 바로 도서관이나 서점. 날씨가 좋고 휴일이라 모두가 나들이를 간 날에도 나는 혼자 도서관에서 양껏 책을 고르고 읽고, 연관된 다른 이야기들을 찾아 미친 사람처럼 서가 사이를 쏘다녔다. 오래된 책의 변색된 바삭한 페이지에서 나는 냄새들이 서가마다 가득 들어차있고, 이 바보는 제법 익숙졌을 법한 그 냄새에도 흥분해 이런저런 경로에 꼬리를 물며 탐색하였다. 쪼그리고 앉은채 서가 가장 아래칸을 뒤적이다 드디어 발견한 책, 그 기쁨에 겨워 갑자기 일어설때의 어지러움과 깜깜함마저 즐기곤 했다. 


귀가길에는 기어이 대출한도를 가득 채운 배낭의 무게에도 실실 웃으며 행복한 바보가 되어 집에 갔다. 어찌나 상태가 심각했던지 100년전에 죽은 작가와 꿈 속에서 만난 일에 감명받기도 했다. 그의 글을 읽는 일은 시간을 거슬러 함께 하는 대화같았기 때문이다.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가고 또 가고. 빌리고 또 빌리고. 돈도 쓰고 또 쓰고. 

하지만 바보 호구가 되어도 좋다. 계속 좋아할 수만 있다면. 역설적으로 바보플레이스에 가면 갈수록 바보와는 멀어지게 되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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