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간영감 인터뷰는 한창 <백파더: 요리를 멈추지 마> 연출 중인 최민근PD님과 함께했습니다. 인터뷰가 요리는 아니지만, PD님만의 어휘를 그대로 담아 생생하게 보내드립니다.
저는 15년째 예능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는 MBC 예능피디 최민근입니다. 지금은 생방송 <백파더:요리를 멈추지 마>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많은 예능프로그램들을 해왔지만, 망한 프로그램들은 어차피 말해도 모르시니까... 알려진 프로그램으로 소개할게요. <라디오스타>로 시작해서 <무한도전>을 거쳐 <진짜 사나이>를 연출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제일 아꼈던 프로그램 <세모방>도 꼭 말씀드리고 싶네요. (2018 PD대상에서 실험정신상 받았어요ㅎㅎ 망했다는 의미^^) 그리고 언젠가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크리에이터’라고 불리우고 싶습니다.
예능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플랫폼의 변화를 먼저 고려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늘 염두해 두긴 합니다. 굳이 순서를 따지자면 ‘콘텐츠’를 먼저 생각하고 그 콘텐츠에 맞는 포맷과 플랫폼을 고민합니다. 플랫폼의 변화가 확연한 시대지만, 그래도 연출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콘텐츠 ‘내용’입니다. <백파더> 탄생 얘기를 잠시 해보면...
<백파더> 기획을 위해 백종원 대표님을 만났을 때, 생방송으로 요리를 한번 해보는 건 어떠냐고 먼저 제안을 하셨습니다. 놀랐습니다. 생방송은 많은 연예인들이 어려워하고 피하기 때문입니다. 항상 방송사고의 위험도 도사리고 있습니다. 연출하는 입장에서도 편집 없이 과연 재미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백대표님 말씀처럼 요리프로그램들은 이미 너무 넘쳐나고 있었고, 식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아예 새로운 시도를 해본다는 게 두렵지만 한편으로는 좋았습니다. 오히려 생방송에 도전해 보겠다고 먼저 말씀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저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리얼함’과 ‘진정성’을 특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관찰예능이 넘쳐나는 요즘에는 ‘리얼함’마저 식상해지고 있습니다. 오히려 궁극의 리얼함은 생방송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 순간 돌이킬 수 없기에 방송 내내 긴장감을 유발시키고, 새로운 재미 포인트가 있을 거라고 기대했습니다. 빠른 호흡으로 편집된 많은 예능 요리프로그램과는 달리 <백파더> 생방송은 느린 호흡으로 요리 과정을 천천히 보여줍니다. 중간 중간 실시간 질문들을 받고 대답하느라 요리도 못 끝내고 방송 종료된 적도 있습니다. 첫 방송은 달걀 후라이 하나 굽고 끝났습니다. 편집과 자막 예능문법에 익숙한 시청자 분들에게는 순간순간 답답함과 지루함을 느낄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생방송 호흡에 익숙해 지는 순간 그동안 겪어보지 못한 색다른 재미가 있을거라고 확신했고, 최근 반응을 보면 그 예상은 아직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백파더>를 준비하는 동안,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사회분위기가 되었고, 자연스럽게 전세계 요린이들과 실시간 소통하면서, 요리를 만드는 ‘생방송’ + ‘비대면’ + ‘실시간 소통’ 요리쇼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시도가 가능했던 이유는 공중파 플랫폼(중계 경험)으로서의 장점과 비대면 네트워크 기술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첫 방송이 기억납니다. 첫 시도인 만큼 방송사고처럼 가도 재밌을 것 같다고 해서, 리얼함을 추구하고자 리허설 한번 없이 호기롭게 방송했습니다. 그리고 정말 방송사고가 되었습니다;; 생각보다 비대면 네트워크는 오류가 많았고, 중간 중간 견딜 수 없는 호흡은 방송 내내 시청자들을 힘들게 했습니다.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합니다 ㅎㅎㅎ 그 이후 한 주 한 주 기술적으로 보완해가면서 <백파더>는 진화하고 확장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요리쇼라기 보다는 토크쇼 같기도 하고, 리얼상황 코미디 같기도 하고... 매주 매주 다른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어떤 기자는 <백파더>를 컬트예능이라고 칭하기도 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의 끝은 어떻게 될지 저도 너무 궁금합니다. 그래서 재밌습니다.
식상하지만 좋은 예능프로그램은 대중들이 많이 보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시청률이 중요합니다.(특히 2049 시청률) 기대하셨던 대답이 아니어서 실망하셨을 지도 모르겠네요. 예능프로그램은 대중들을 위한 포맷입니다. 그리고 TV같은 대중매체는 대중들의 즐거움을 위해 존재해야 합니다. 대중들의 기호를 잘 파악해서 많은 대중들이 보고 즐길 수 있어야 좋은 방송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작품은 아니고 소비되는 콘텐츠라고 불렸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연출자 입장에서 나름 좋은 프로그램에 대한 기준을 정해 놓고는 있어요. ^^(주관적 기준) 많은 대중들이 즐겨 본다는 전제 하에...
첫 번째는 실험성입니다. 어쨌든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능프로그램은 유행에 민감하다보니 인기가 좋다고 하면 유사프로그램들이 막 쏟아져 나옵니다. 하지만 후속작들은 처음 시작한 프로그램만큼 인기를 얻기는 쉽지 않습니다. 검증은 됐으니까 안전하기는 하죠. 그럼에도 새로운 시도가 들어가야 더 의미 있고 사랑받는 예능프로그램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예능콘텐츠 생산자의 사명이라고 생각해요.
두 번째로는 진정성입니다. 진정성 없이 성공한 예능 프로그램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장치와 재미에는 더 이상 대중들은 흥미를 느끼지 않습니다. 그런 이유로 코미디 프로그램들이 점점 설 자리가 없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계산된 웃음과 예측가능한 구성에 더 이상 대중들은 반응하지 않습니다. 결국 진정성을 잘 담아내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세 번째는 확장성입니다. 매회 다양하게 진화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면 대중들도 점점 더 기대하게 된다고 믿습니다. 내용 뿐 아니라 포맷적인 측면에서도 확장성을 가진 프로그램은 생명력도 길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딱 짜여진 구성보다는 느슨하게 시작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무한도전 같은 프로그램이 그랬죠. 도전이라는 이름 하에 매주 다른 콘셉트와 기획을 했기에 대중들은 함께 열광했던 것 같습니다. 연출자도 앞으로 예측이 안되는 콘텐츠...매주 고민이 되고 불안하겠지만 동시에 설레고 신나기도 합니다. 그런 과정에서 대중들도 함께 반응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방송국(놈들?)은 오래 기다려주지 않아서, 진화하고 성장할 시간이 많지는 않습니다.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저는 영상 만드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촬영과 편집이 너무 해보고 싶어서, 대학교 시절 캠코더를 사서 아르바이트로 웨딩촬영을 시작했습니다. 단순히 촬영만 하지 않고, 결혼 준비 단계부터 팔로우 촬영 하고, 뮤직비디오도 찍고, 편집에 자막까지 넣으면서 재밌게 만들었습니다. 당연히 반응도 좋았습니다. 나름 스토리가 있는 ‘리얼리티 웨딩비디오’였습니다. 무언가를 재밌게 만드는 과정이 좋았습니다.
그 후로 여유가 되는대로 작은 단편영상들을 꾸준히 만들었습니다. 물론 돈이 없었기 때문에 늘 저예산이었습니다. ㅎㅎㅎ 하지만 시작한 모든 작품들은 꼭 완성하고, 홍보물까지 만들어서 국내외 영화제 혹은 영상제에 출품했습니다. 어떻게든 성과가 날 때까지 출품했습니다. 탄자니아 영화제까지도 출품했었습니다. 대단한 영상제가 아니더라도 내가 만든 작업물에 관심을 보일 만한 곳이라면 어디든지 보냈습니다. 심사에서 탈락하면 다시 편집하고 또 리서치를 해서 출품해서 어떻게든 꼭 성과를 냈습니다. 그래야만 그 작업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뭔가를 만들면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피드백을 받아야 작업이 완성됐다고 생각합니다.
첫 단편 변비쾌락이론(좌), 다큐멘터리 똥의 힘(우)
그 과정에서 꾸준히 만들고 성과를 내는 인내심이 길러진 것 같습니다. 제가 처음 만들었던 작품 <변비쾌락이론>은 뉴욕의 작은 영화제에서 수상했었고 (국내 영화제에서도 두군데에서 수상), 입사 전 마지막으로 작업했던 다큐멘터리 <똥의 힘>은 국제환경영화제에서 단편부문상을 수상하고 그 외 세계 환경영화제에서 많은 수상을 했습니다. 웨딩비디오로 시작했지만 어쨌든 저는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2005년 운좋게 MBC 예능피디로 합격해서 지금까지 재밌게 일하고 있습니다. 저는 대중의 피드백을 빨리 받는 예능피디가 잘 맞다고 생각합니다. 성격도 좀 급하고요 ㅎㅎㅎ
15년 정도 예능피디로 일하다 보니, 새로운 작품에 대한 영감은 모든 곳에서 오는 것 같습니다. 만나는 사람, 주변환경, 심지어 낮잠에서 꾸는 꿈까지 ... 중요한 것은 그 영감을 어떻게 구체화시켜서 의미 있는 일들로 만들어내는가입니다. 아이디어를 콘셉트화 시키는 과정이 참 고통스럽습니다.
그리고 평소 저는 상업영화보다는 독립영화나 비주류 영화를 많이 봅니다. 새로운 시각과 독특한 스토리를 많이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중학교 때. AFKN에서 방영한 <록키호러픽쳐쇼>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후로, B급영화나 컬트영화에 푹 빠졌습니다. 제가 했던 예능 프로그램에도 컬트적, B급이라는 수식어가 종종 붙습니다. 의도한 것은 아닌데, 슬쩍 슬쩍 묻어 나오는 것 같습니다. ㅎㅎㅎ 데이빗 크로넨버그, 데이빗 린치 감독의 영화 등을 좋아했고, 틈만 나면 미국 MTV를 즐겨 봤습니다. 특히 크리스커닝햄, 마이크 존즈, 미셸 공드리 작업들은 거의 100 번 이상 찾아본 것 같습니다. (어 저도요!!)
예능프로그램은 역시 무한도전이 가장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리얼버라이어티’라는 장르는 무한도전이 최초입니다. 버라이어티가 리얼이 될 수 있는 이 혼종 돌연변이 예능은 제작진의 치밀한 캐릭터 메이킹과 디테일한 연출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지금도 무한도전 키즈 (무한도전을 거친 피디들)들의 새로운 실험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늘 기대가 됩니다.
<작품>
미국과 영국 유학 때 접했던 ‘도그마 영화 (도그마95)’는 저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작가주의와 헐리우드의 장르 영화를 배척하고 영화의 순수성을 찾고자 했던 도그마95 영화들은 당시 충격 그 자체 였습니다. 라스폰트리에 <백치들>, 토마스빈터베르그 <셀레브레이션>는 제작방식에 대한 기본 개념들을 송두리째 다 바꾸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일주일내내 심장이 아프고 두근거렸습니다. 그 감정들이 오랫동안 몸 속에 살아있었습니다. 그 때 도그마95가 내세웠던 원칙들은 <진짜사나이> 촬영에 고스란히 적용되었습니다. 의도적으로 적용한 것은 아니었는데, 진정성(출연자들의 진짜 감정)을 추구하다보니 공통된 부분들이 많았습니다.
<인물>
지금은 함께 일하고 있는 백종원 대표님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정말 부지런합니다. 이 많은 일들을 어떻게 다 잘해낼까 믿어지지 않습니다. 모 CF에서처럼, 100명의 백종원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잠을 안잔다는 소문까지 돕니다.ㅋㅋ 아이디어도 정말 많고, 많은 분야에 호기심이 많습니다. 말을 했으면 무조건 실행에 옮기는 미친 실행력도 갖고 있습니다. 관찰력이 매우 뛰어나서 디테일이 강하고,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합니다. 자주 놀라고 있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면 잘될 수 밖에 없는 분이구나 라는 생각을 합니다. 답을 찾는게 아니라 답을 만들어내는 분입니다.
최근에 <폴리매스>라는 책을 관심있게 읽고 있는데요. 폴리매스란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는 분야에서 적어도 세 가지 일을 출중하게 해내는 미래형 인간을 뜻합니다.
백종원 대표님은 진짜 폴리매스입니다. 요리 연구, 브랜드 개발, 방송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엄청난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관심사가 어마어마하고 그 박학다식한 면에 많이 놀랍니다. 어떤 화제를 꺼내도 재밌습니다. 심지어 게임도 수준급이상입니다.ㅎㅎㅎ
예전에 백대표님의 책 <장사 이야기>를 재밌게 읽었습니다. 단어만 바꾸어서 <방송 이야기>로 해도 적용이 될 정도로 내용이 좋습니다. 그 책을 통해서 브랜드 개발과 프로그램 만드는 것은 공통점이 많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파격적인 형식의 생방송 <백파더:요리를 멈추지마> 예능도 가능했다고 봅니다. 지금도 방송편성을 안하는 불모지 시간대에 생방송으로 과감하게 들어가서 시청자를 끌어모으고 있습니다. 마치 죽었던 골목상권을 살리는 것처럼...
도전을 밥먹듯이 하고, 다양한 영역에서 얻은 영향력을 서로 연결시켜서 엄청난 시너지를 내는 모습을 보면 가끔 소름이 끼칠 정도입니다. 기부도 많이 하시는데, 저도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무엇보다 즐겁고 재미있게 생활하십니다. 장난꾸러기같은 면도 많아서 주위 사람들을 항상 즐겁게 해주십니다. 그래서 요즘 저도 신납니다.
사진제공: 최민근
인터뷰 정리: 이미지
[인터뷰 후기] 현재 매주 생방 예능을 연출하는 살인적(?) 스케쥴 속에서도 충실히 답변해주신 최민근 PD님께 감사드립니다. 2년전 콘텐츠의 미래를 고민하는 스터디를 결성하며 가장 먼저 떠올라 섭외했던 PD님이기도 한데요, 다양한 영역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특유의 입담은 스터디 모임의 시공간을 재미로 뒤흔들었었죠. 그의 '수다'에는 리얼함과 진정성, 업에 대한 깊은 고민이 배어있기에 더욱 들을수록 재밌습니다. 웨딩 영상 아르바이트로 시작해, 단편, 다큐에 이어 15년째 예능을 멈추지 못하는 프로페셔널의 삶. 그 역시 폴리매스가 아닐까 생각하며, 어느 한 분야에 성실히 임해본 사람은 다른 분야의 결과물 역시 신뢰와 책임의 산출물을 뱉어낸다는 진리를 다시금 깨닫습니다.
백파더 : 요리를 멈추지 마!연출최민근출연백종원, 양세형, 조빈, 원흠방송2020, M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