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좁은 나의 방, 그리고 우리가 만나는 세상
영우오빠의 유재하 동문회장 시절, 늘 힘들고 어려운 일은 가장 먼서 나서서 유쾌하게 하던 모습이 인상깊었는데요. 특유의 긍정 기운, 그리고 속깊은 이야기들을 최선을 다해 들려주는 모습까지, 언제나 좋은 영향을 받게 됩니다. 오랜만에 작업실에서 만나, 지난 음악 이야기를 비롯, 최근 아이유님과의 콜라보 작업기까지 이어서 들어보았습니다. 여러분께도 그의 이야기를 나누어드려요. '작은 방'을 함께 들으며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
1. 당신은 누구신가요?
마음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네요. 예전에는 그저 ‘노래하는 사람’으로 소개하곤 했었는데요, 요즘은 ‘마음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이 되네요. 마음을 캔버스에 표현하면 화가일 것이고, 소설로 표현하면 소설가, 저는 마음을 음표로, 리듬으로, 음악으로 표현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죠.
2. 음악이라는 표현 언어를 선택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요 ?
음악이 나를 살아있게 해주는 느낌을 가장 많이 주어서 였던 것 같아요. 나를 못 찾고 고민하던 순간에 합창단에서 피아노를 치고 노래하면서 나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게 하고 싶은 음악으로서의 출발이었다고 기억되네요.
누나가 피아노 전공을 해서 음악에 친숙해졌었고요, 아버지가 목회를 하셔서 교회 안에서 많은 음악들을 접하면서 노래와 피아노를 점점 사랑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분명 앨범에서 들리는 느낌은 다 다른데, 악보 피스에는 같은 코드로 되어있지? 이런 의문도 해결하려고 나름대로는 찾아보았고요. 대학교 들어와서는 내가 치는 피아노에 누군가 노래하면 행복해하고 다같이 화음 맞추는 것에 기분 좋아하고 함께 노래하면서 그렇게 음악이라는 아름다운 언어를 배우게 되었던 것 같아요.
3. 피아노로 반주하는 걸 좋아했던 학생에서 스윗소로우 멤버로의 길은 어떻게 이어진 것인가요?
합창단 내 아카펠라 팀에서 편곡하고 호진이형이랑 합창단 무대를 세우고 우진이랑 말도 안되는 3분짜리 Mo better Blues 연주를 하고 하면서 남들과 다른 것을 해보는 게 재밌구나를 느끼게 되었었어요. 그러다 급기야 곡을 쓰기에 이르렀구요. 대학가요제 나갔던 3학년 선배가 강력 추천을 해주어서 1, 2학년때 유재하음악경연대회를 나갔었고, 그 후로도 줄기차게 떨어졌지만 이 때 무언가 시작은 했던 거죠. 사실 그때 곡을 써서 뭔가 유명한 것, 뭔가 멋진 것을 만든다는 생각보다 그냥 내 것이 생겼다는 것을 확인 받고 싶었던 것 같아요. 유재하 음악경연대회가 그런 싱어송라이터들을 뽑는 대회라 더 애착도 가고, 상대적으로 다른 대회에 비해 노래에 많은 비중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에 마음의 장벽이 좀 낮기도 했었구요 ㅎㅎㅎ
학교 다닐 때 호진, 우진이 먼저 들어가 있던 기획사에 들어갔던 것도 컸어요. 공수표의 남발과 기대와 좌절의 연속이었지만 내가 무대에 서게 된다면, 내가 데뷔하게 된다면 하고 구체적으로 상상해 볼 수 있는 시기였죠. 불행히 IMF가 터지면서 흐지부지되고 우리 멤버들 다 군대를 가게 됐고요.
그런데 다행인건 저는 군대를 가서도 아카펠라 팀을 할 수 있었어요. 카투사를 갔기 때문에 자유시간동안 노래 연습도 많이 하고, (그 사이에 틈틈이 유재하 도전해서 또 떨어지고) 호진, 우진 저 모두 군대 제대하고 의기 투합, 아현동에 방을 구하며 본격 활동 준비를 했죠. 때 마침 유재하 대상 출신인 김혜능 형을 아카펠라 씬에서 만났는데, 감사하게도 저희 프로듀서가 되어주셨죠. 유재하 음악 경연대회를 함께 준비했고, 결국 2004년에 대상받고 1년 동안 준비해서 데뷔했습니다.
4. 예측하기 어려웠던 여러 상황들이 우리 모두를 두렵게 만든 2020년이었어요.
음악, 공연 분야도 예외가 아니었는데요,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객관적으로 보면 완전히 무너졌죠. 뮤지션은 크게 공연형, 라이브형으로 임하는 사람들, 그리고 음원형으로 나눌 수 있잖아요. 라이브형을 추구하는, 즉 대면으로 만나서 해야하는 중심의 뮤지션들은 대단히 큰 타격을 입었던 게 사실이죠. 그래서 우리끼리도 처음엔 '어떻게 해야되지? 뭐지?'하고 생각했던 순간들이 있었어요. 그러다 이게 얼마나 갈지 모르겠는데 … 뭔가를 준비해야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죠. 모두가 멈춘 이 시기에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느냐가 이게 끝나고 났을 때 우리를 다르게 만들수 있을거다라는 깨달음이 있었고. 그래서 몇 달에 걸쳐서 유튜브 기획 회의도 오래하고 리허설도 두 달 동안 해보고 전문가들의 감수도 받으면서 스윗소로우의 채널을 준비할 수 있었어요.
코로나 시대에 딱 떠오르는 것은 불안함이 아닐까요. 불안과 그 이후에 대한 이야기를 안할 수 없는 것이고. 그래서 이 불안한 시대에 어떤 것을 준비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모두 생각했어요. 완벽하진 않지만 우리가 유튜브를 하고, 새로운 음원을 내고 이런 일들에 집중할 수 있게 된 것도 유익이라면 유익이죠.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플러스와 마이너스를 잘 따진 다음, 긍정적 방향으로 생각하려는 쪽이라. 어쩌면 이런 계기가 아니었다면 ‘작은 방’ 작업에 이렇게 집중할 수 있었을까, 유튜브에 포커스를 맞출 수 있었을까 생각하면 코로나의 두려움이 주는 가치는 있었다고 봐요.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서로 더 단단하게 뭉쳐서 이 험난한 시기를 잘 헤쳐나가보자는 파이팅이랄까 서로에 대한 고마움이랄까 그런 것들이 더 많이 느껴진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5. 11개월만의 새 노래예요. 곡과 노랫말 모두 직접 작업하셨는데, 어떤 생각과 과정을 통해 나온 노래인지 궁금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작은 방이라는 개념이 특히 코로나19상황에서 고립되어 살게 된 우리의 공간과 언뜻 겹치기도 했어요. 어른, 성인이라는 불안과 두려움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대를 끌어낼 수 있는 포인트라는 생각도 들고요.)
두려움의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픈 게 가장 컸죠. 예전에는 노래 하는 사람. 대중적인 가수 그러니까 사람들을 기쁘게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 느낌이 많았지요, 지금도 중요한 모습이지만요. 풀어서 얘기하자면 내가 주어진 스테이지에서 얼마나 퍼포밍을 잘해서, 어떻게 사람들을 즐겁게 해줄까의 역할이 중요했달까요. 다른 예로 라디오 디제이도 퍼포밍을 하는 거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그간 저는 퍼포먼스 중심의 사람이었다고 생각했었어요. 첫 질문에 대한 답에서 말씀드렸듯,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을 음악으로 표현한다는 것으로 바뀌게 되었는데요. 이는 프로듀싱, 라이팅에 대한 개념이 더 확장된 거죠. 단순히 음악을 프로듀싱한다는 것이 아니라 싱어송라이터로서 결국 내 삶을 잘 프로듀싱해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데요. 그 지점에서 두려움과 작은 방, 코로나와 언택트와 작은 방, 소심해지고 불안한 우리와 작은 방을 연결시키게 되었던 거죠.
개인적으로 16년 동안 해오면서 항상 두려움이 있었어요. 늘 당연한 듯 겪는 변화들...변화는 늘 두려움을 수반하니까. 예로 나는 가수다 할 때 우리가 가서 첫 무대에서 꼴찌했었는데, 야 이러다 광탈하는 게 아닐까, 이런 순간도 있었고, 새 앨범이 나올 때, 콘서트 준비할 때, 결혼할 때, 대학교 강의할 때 애들이 날 좋아해줄까. 아이를 낳고 나면, 아이를 잘 키울수있을까. 정말 별별 생각들이 드니까. 누구나 겪는 두려움을 좀 더 강렬하게 체험해온 것이었을까 생각했어요. 그리고 저희 팀은 멤버의 변화도 있었고요.
그런데 항상 그 순간의 두려움을 파악하고 현실인식을 한 다음에 좋은 쪽으로 가려는 태도가 있어요. 별로 멋은 없지만 항상 그렇게 해온 것 같아요. 나가수 무한도전, 불후의 명곡에 참여한 것도, 스윗소로우의 걸음도 다 그렇게 해왔던 건데. 곰곰 생각해보니 그냥 어찌보면 결과적인 아름다움을 적어놓았던 건 아닐까 생각했어요. 지금도 그 과정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 입장에서, 헤피앤딩에 가까운 노래들은 너무 박제된 결론만 이야기하는 것 같지 않을까 싶었고, 그 두려움의 과정, 진폭들도 기록해 놓고 싶단 생각이 들었죠. 그리고 그 두려움의 과정을 함께 겪고 있다는 동질감, 함께 있다는 다르지 않다는 마음을 나누고 싶었던 게 컸었어요.
6. 아이유님과 호흡을 맞춘 것도 인상적입니다. 어떤 계기로 함께 하셨나요?
아이유에게도 앞서 말한 그런 상황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함부로 넘겨짚을 순 없지만 누구에게도 어떤 두려움은 있을 테니 그 마음을 표현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우리 모두가 변화와 두려움 속에서 살아간다는 건 그리 다르지 않을 테니까. 그런 공감의 영역을 설정했던 거고,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앞이 안보이고 두려운 상황이니 이 상황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노래가 되겠다. 더 적절한 타이밍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발전시켰어요.
내 개인적인 경험이 사회적인 경험, 공감 들로 확장되는 기분들을 꼭 밝은 노래에서만 느끼는 것은 아니니까. 이러한 이야기들이 무거운 주제라서 힘들까 생각했지만 그래도 아이유랑 같이 하면 또 달라지지 않을까. 또 저희가 스윗소로우의 텐텐클럽 디제이를 하던 시기에 수요일 선곡여왕이란 코너를 아이유씨과 나윤권씨가 고정으로 했었어요. 그래서 아이유씨를 아가수/ 윤권씨를 나가수라고 불렀었어요.
그래서 항상 첫곡을 부르고 질문을 내고 정답인 노래를 사람들이 맞추는 음악 퀴즈와 라이브가 합쳐진 형태였는데 그 때 기억을 더듬어 아이유가 그 추억을 소환해 함께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들을 했죠. 아이유랑 만나서 노래 들려주고, 그간 있었던 이야기들도 하고, 서로에 대한 신뢰감이 있으니까 편하게 작업했어요.
사람들마다 다 방이 다른 것 같다고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우리 멤버들의 방도, 아이유의 방도, 서로의 방이 다 다르겠죠. 더 묘사해보자면, 내가 중요한 것들을 어디에 놔두는지. 책상을 벽에 붙여서 놔두는지 떨어져서 놔두는지... 내 소중한 편지는 참고서 사이에 끼우는지 첫번쨰 서랍에 넣고 잠구는지. 선물들을 박스안에 넣어두는지. 그런 가장 개인적인 공간들을 생각했어요. 저에게는 침대에 누워서 작은 농구공을 허공에 던지고 받는 장면이 생각나는데 처음에는 그런 공간에서 시작했어요. 그 방을 사실은 되게 어렸을 때 갖고 싶어한 방이잖아요. 보통 대부분의 사람들이 처음엔 태어나면 내 방이 없잖아요. 나만의 방은... 내 공간, 내 영역을 가지고 싶어하죠. 문 잠그고 내 프라이버시를 지킬 수 있는 방. 이 방을 처음에 생각하다가 결국 그 방에 모든 게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진짜 모든 것들이 창고처럼 칸칸이 쌓여 있다는 기분이라기보단 내 모든 역사가 있다는 느낌인데요. 이 방 안에 내 지난 세월이 다 들어있고, 미래도 지금 그 속에서 계획하고 있으니까 나의 과거 현재 미래가 다 이 안에 있는 거죠.
미래를 생각하며 불안해하는 걱정의 낙서도, 과거의 찬란한 순간이 남겨진 상장이나 트로피도 있을 거고. 옛날에 내가 좋아했던 사람에게서 받은 투유 초콜릿 포장지가 있을 수도 있고. 보통은 형광등이지만 멋있어 보이고 싶을 땐 스탠드 키고 연애 편지 쓰고 학 접고 ㅎㅎ 테이프 만들어서 선물주고. 그런 기록들이 있는 작은 방. 이런 것에 대한 생각이 어느 누구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마찬가지로 지금 코로나 시기에 갇혀있는 우리 마음도, 우리 방안도 아마 어느 정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거죠. 얼마큼 나는 어른이 된 걸까 걱정하는 우리,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우리. 그렇게 무거울 수 있는 이야기를 모두가 사랑하는 아이유, 즉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고 동일시 해줄 수 있는 페르소나로 참여해주어서 이번 협업이 더 고맙고 의미있기도 했어요.
7. 녹음 때 프로듀서로서 더 구체적인 디렉션을 준 것이 있었나요?
아뇨. 그냥 해석을 맡겼던 것이고, 아이유씨가 충분히 그녀만의 느낌으로 해석 해줘서 좋았어요. 상황을 잘 설정해둔 상태로 공감대는 충분히 형성했다고 생각했고요. 어떤 상황이었는지 무엇을 떠올리며 노래했는지 알 수 없지만. 굳이 구체적으로 너의 작은방은 뭐냐고 물을 필요는 없을 거 같았어요. 이 노래의 프로듀싱 영역이 처음부터 끝까지 레고처럼 내가 혼자서 부품들을 조립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 사람의 어떤 마음이 어떤 결이 올지 모르는 거니까. 그런 틈을 기대하고, 그런 해석들을 하나로 잘 합치고, 또 나아가 그 음악을 리스너들이 해석하는 결도 있고. 이런 것을 열어두는 프로듀싱이랄까요.
8. 뮤지션으로, 또 아이를 키우는 아빠로, 유재하동문회 회장으로서도 많은 일들을 하시는 걸 지켜보며 참 성실한 작업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성실하게 차곡차곡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영감은 어디에서 오나요?
제가 생각할 때 사실 저는 성실이랑 거리가 먼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오히려 제 기준에서는 마무리를 잘 못하는 스스로를 바라 보면서 고민이 많았던 것 같고, 새롭게 주어진, 또 시작한 일들을 마지막까지 잘 끝마칠 수 있다면 더 좋을텐데 하고 스스로 생각했던 적이 많아요. 사실 저는 새로운 계획을 벌려놓고 정리하지 못하는 쪽에 가까워서 핀잔도 많이 듣거든요, 저희 다른 멤버들은 잘 살펴보고 두드려보고 가자는 타입이고요. ‘달라’ 라는 노래에 그게 잘 들어있죠.
점점 우리의 프로젝트들을 잘 정리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성실을 연습했고요 덜 충동적이 되어졌고요. 책임감 속에서 영감만큼 중요한 것이 성실한 것이구나 깨닫게 되었던 것 같아요.
사실 유재하 동문회장을 할 떄도 처음엔 일들을 많이 추진해봤어요. 그런데 하다보니까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싫어하는 사람이 있고, 또 상처받거나 나가떨어지는 사람이 생기더라구요. 이 모임의 목적이 뭐지. 내가 뭘 위해 이 계획을 짜고 있는거지 되돌아보게 되었고, 좋은 마무리를 생각해보니 성실함이 무기가 되지 않으면 절대 아무에게도 설득이 안되겠구나 생각했어요. 저 스스로 압박감을 주는 것도 있고요. 이번에 작은 방 작업할 때도 성실하게 하지 않으면 제가 생각했던 그림을 결국 설득하지 못할까봐 엄청 스스로를 다그쳤죠. 뭐 이런 상황들을 많이 겪으면서 성장한 것도 있는 거 같고. 내가 그렇지 않은 사람이었다 할지라도 그 관성을 거부할 수 있는 저 만의 노하우나 저만의 능력이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지요. 더 나아지고 싶은 마음이랄까. 요즘 저와 다른 영역의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싶다고 생각하는데, 그것 역시 그 만남을 통해 오는 자극을 통해 나를 머무르게 하는 그 중력을 이길 수 있을꺼라 기대하기 때문이고요.
9.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김영우가 뮤지션이 되게끔, 또 이 삶을 지속하게끔 영감을 준 사람, 사건이 있다면요?
재미? 이게 재미없어서 떠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다른 걸로 돈을 버는 사람들도 있을 거고요. 이 일을 해내는 삶이 더 재밌고, 보람있고, 더 잘하고픈 마음이 들어서 이게 충분한 동기가 된 것 같아요. 전 이 재미가 커지는 걸 느껴요. 물론 지속적인 오름세도 아니고 업과 다운의 부침은 당연히 있지만, 그 부침의 저점에서도 재미가 없진 않았고. 고점에서는 당연히 재미가 생기는 거니까요. 중요한 선택들이 프로젝트들이 우리의 삶을 바꿔놓고 그래서 부담도 두려움도 있지만 그 압박감이 왜 이 삶을 선택했을까 하게 하는 두려움이 아니라 더 잘해내고 싶은, 내 부족한 부분들을 채우고 싶은 욕심이나 배고픔 쪽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코로나때도 작업실에 처박혀서 뭔가를 하는 것이, 해야만 해서 하는 것과. 이거 아니면 안될 거 같아서 하는 것과, 정말 잘하고 싶어서 하는 것과는 다르잖아요. 이런 마음으로 177개의 보컬 트랙을 쌓은 거겠죠. 여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게 이건 내가 잘 할 수 있는 거야. 같이 공감할 울림이 생길 수 있다면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이 손실없이 전달되게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거든요. 잘 마무리 하고 싶은 프로젝트에 대한 마음. 이 재미를 계속 유지하고 싶은 마음. 좋은 사람들과 통하고, 좋은 팬들과 함께 하고, 좋은 멤버들과 함께 살며 스윗 소로우라는 브랜드를 잘 만들어가고 싶다는 마음.
우리 멤버들도 빼놓을 수 없죠. 그 누구보다 저에게 힘을 주고, 인정해주고 진지하게 충고해주는 25년 지기 친구들. 서로 더 좋은 뮤지션이 되도록, 더 좋은 인간이 되도록 곁에서 지지고 볶으면서 살아가고 있는데요. 그 사실이 새삼 좋아요. 곁에 있다, 함께 있다는 확실한 감각. 결국 이길 걸 알기에 불안하지 않은 하이라이트처럼, 저에겐 든든한 서로의 짐을 나눌 수 있는 동반자이구요. 그리고 가족은 뭐. 말할 필요도 없겠죠?
10. 작은 방이 담고 있는 주제의식처럼,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미래를 살아내기 위한 영감, 혹은 앞으로 꾸는 꿈, plan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내가 더 좋아지고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꿈 꿀 여지가 있다는 게 사실 제 희망을 갈구하는 성격상 꿈이 돼요. 과거형이 되고 싶지 않다는 마음, 라떼나 꼰대가 되지 말자는 다짐, 더 좋은 선생, 가수가 된다는 게 뭘까. 팬들에게 더 좋은 가수가 된다는 건 뭘까. 좋은 아빠가 된다는 건 뭘까. 좋은 크리스천이 되는 건 뭘까. 이런 것에 대한 고민을 풀어나가는 과정이 좋아요. 음... 문제가 없는 삶을 상상해봤는데, 저는 되게 재미없더라구요.
거창한 꿈을 갖는 것도 물론 나쁘지 않겠지만, 사실 하루하루가 살아지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거잖아요. 그 어떤 것도 어느 순간 갑자기 되어지지 않죠. 그 '된' 어느 순간을 위해 단련된 멘탈이, 근육이, 연습한 흔적이 있듯이요. 그래서 내 하루를 잘 살아내는 것, 매일 꾸준히 영감을 찾고 느끼고 표현 하는 게 중요하죠. 아무리 쓸데없는 것이라도 하나씩은 끄적이다가 오곤해요. 그것이 쌓일 저 나중을 기대하면서요.
세계의 변화도 무시할 수 없는 것 같고요. 기술 발달로 누구나 노래를 낼 수 있고 쓸 수 있는 시기가 되었는데. 그럼 결국 그 시대에 맞춰서 살아남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 시대에 각광받는 아이콘들이 있으니까. 그럴 수 있는 가능성들이 넓어지니, 나는 이 안에서 또 무엇을 해야하는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네요. 누구나 한 시대 안에서만 살지 않고 시대를 건너서 살아가잖아요. 제가 대학교 때 좋아하던 알앤비가 20년 지나서 다시 돌아 왔지만, 그 때랑 같을 수는 없는것처럼. NEO가 들어갈 수 있는 새로운 시기를 살아가며 그때의 경험에 과거에 집착하는 라떼 세대로 갈 것이냐, 현재에도 유효한 진행형인 사람으로 갈 것이냐가 이제는 훨씬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또 어느 시대나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은 많은데 그러나 그 어느 시대나 자기 세상을 가진 사람은 드물다는 이야기를 보고 정말 그렇다 생각했었는데요. 나아가 자기 세상을 남이랑 터놓고 잘 얘기하는 사람은 더욱 드문 것 같아요. 자기 세상, 자기 색깔을 가진 사람들. 이 잘 만들어진 세계관에 좋은 브릿지가 잘 만들어져서 사람들과 연결되는 것도 중요한데 그런면에서는 자기만의 컨텐츠를 사람들과 잘 나눌 수 있도록 확장하는 능력이 그 어느때보다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저도 저희 스윗소로우도 이렇게 우리만의 이야기들을 가지고 사람들과 유연하게 음악으로 유튜브로 방송으로 라이브로 만나면서 우리만의 컨텐츠가 계속 가치있게 남게 하는 것이 결국 가고싶은 계획이자 꿈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인터뷰, 작업실 사진 및 영상 : 이미지
사진 제공: 김영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