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했다
싱가폴에서 두 번째 이직을 했다. 이번에는 회사 뿐만 아니라 직업도 바꿨다. 이제는 더 이상 개발자가 아니라 솔루션 엔지니어가 되었고, 영어 포지션은 Software Engineer 에서 Solutions Engineer / Architect 가 되었다. 이름만 보면 "여전히 개발자가 아니냐?"고 질문 할 수 있는데, 전체 업무 시간의 절반 정도는 고객을 만난다는 점에서 아주 차이가 크다고 하겠다. 고객들을 만나서 복잡한 기술을 쉽게 설명하는 업무가 많다보니, 몇 년간 온라인/오프라인에서 개발을 가르친 경험도 큰 도움이 된다.
사실 전 회사도 아주 좋은 회사였다. 훌륭한 매니저, 그리고 좋은 팀원들과 함께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제품을 만들었다. 동료들 모두 업계에서 짧게는 5년, 대부분은 10년 이상 경험을 쌓은 베테랑들로 그들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사람들을 만나면 "평생 한 회사를 다녀야 한다면 이 회사를 다니겠다"고 말할 정도로 다니기 좋은 회사였는데, 첫 아이의 출산과 함께 이직을 결심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이직을 결심한 이유는 "아이 때문에 도전하기가 힘들었다"는 식의 아기 때문에 내 삶의 도전을 포기했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매우 만족스러운 회사 생활을 하는 중에 이직을 하고 나니, 무려 더 좋은 회사로 옮겨오게 되었다. 무려 해외 회사 평가 사이트인 글래스도어(glassdoor)에서 평점 4.9점을 받은 회사다. 그리고 출근 한 지 한 달이 다 되어가는데, 이렇게 직원들이 자기 회사가 좋다고 입을 모아서 말하는 곳을 아직까지는 만나지 못했다. 회사는 매우 기술 중심의 회사로, 기술 영업으로 경력 전환을 계획하던 내가 기존의 경력을 인정 받으면서 새로운 기회에 도전할 수 있는 좋은 여건이 갖춰져있는 미국계 회사다. 다양한 솔루션을 보유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제품이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회사라 처음 기술 영업을 배우기에 나쁘지 않은 곳이라고 판단했다. 입사해서 주위를 둘러보니 직원들 대부분이 3년 이상 다녔고, 딱 한 분이 근속 연수가 1년이 채 되지 않았는데, 근속 연수가 긴 분들은 7~10년 이상 다니는 걸로 봐서 확실히 좋은 회사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무엇이 이 사람들을 이 회사에 남아있게 만드는 지 잘 살펴볼 예정이다.
나는 개발을 매우 좋아하고, 기술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앞으로도 꾸준히 개발을 할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화가 없다. 매주 주말마다 모여서 싱가폴에 계신 분들께 코딩을 가르쳐드리고 있기도 하고, 개인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동시에 나는 비지니스에 관심이 많고, 스스로 사업가라는 강한 정체성을 갖고 있다. 전 회사에서 훌륭한 개발자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하면서, 개발자로서 경력을 계속 쌓아나가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하게되는 기회가 되었다. 개발자는 기본적으로 기술적인 깊이를 쌓아야 인정을 받고, 연봉을 높여나갈 수 있는 직업이다. 처음에는 다양한 분야를 경험하는 것이 도움이 되지만, 일정 수준이 지나면 내 전문 분야를 정하고 그 부분을 기술적으로 깊이 이해하는 것이 경력을 쌓아나가는데 필수적이다. 하지만 기술과 비지니스를 연결하는데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점점 개발자로서 경력이 쌓일수록 비지니스와 거리가 멀어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6년 간 쌓은 개발 지식을 바탕으로, IT기업들이 만들어내는 제품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고객을 만나는 지 실제로 경험하기 위해서 기술 영업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다만 한국에서 해외영업으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가 호되게 당한 적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는 싱가폴에서 한국, 싱가폴, 말레이시아 시장을 지원하는 포지션으로 전략적으로 접근했다.
요즘도 개발을 배우거나, 개발자가 되는데 관심이 있는 분들이 많이 연락을 주신다. 이직에, 육아에, 삶이 많이 바빠져서 예전만큼 다 답변은 드리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분들께 드리고 싶은 조언은 IT 산업의 시대에 개발을 배우는 것이 꼭 개발자가 되지 않더라도 더 많은 기회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점이다. 마치 내가 6년의 개발자 생활 끝에 기술 영업으로 전향한 것처럼 말이다.
사실 개발자는 다른 직업들과 다르게 경력을 쌓을수록 다양한 커리어의 기회가 열린다. 개발자는 개발팀 내에서는 사람을 관리하는 매니저나 기술을 전담하는 기술 전문가로 커리어를 쌓을 수 있다. 그리고 외부적으로는 이번에 나처럼 기술 영업이나, 프로젝트/프로덕트 매니저로 빠질 수도 있다. 그 외에도 기술을 이해하고, 개발자와 소통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양한 기회가 열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자세한 내용은 다른 글에서 다뤄보겠다.
고민이다, 이제 이 매거진 이름을 "개발자, 영업맨이 되다" 이런 것으로 바꾸어야 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