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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코 Jan 28. 2024

무엇을, 얼마나 책임지며 사는가?

내 책임감 수준의 변천사

책임이라는 단어가 무겁던 날들이 있었다. 아들 둘 경상도 집안의 장남으로 많은 기대와 책임을 앉고 살았고, 특히나 외가에서는 8명의 손자 중 첫 손자여서 동생들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으며 자랐다. 뿐만 아니라, 내 어머니는 지금까지도 내가 본 그 어떤 사람보다 삶에 많은 책임감을 높은 수준으로 가지고 살아가는 분이셨고, 그 슬하에서 그 책임의 기준에 맞춰서 살아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일까?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교에 진학하고 난 이후에 다양한 일탈을 하기도 했다. 등록해 놓은 수업에 하나도 들어가지 않아서 F 학점 4과목으로 학사 경고를 받기도 하고, 한강에서 술을 진탕 먹고 집에 돌아오다 필름이 끊어져서 폐공장에서 밧줄을 이불 삼아 자다가 일어난 적도 있다. 남들이 다들 미국이나 영국 등 영미권으로 교환학생을 갈 때, 나는 남들 가지 않는 곳에 가보겠다고 스페인에 날아가 보기도 하고, 거기서 다시 남미를 경험해 보겠다며 혈혈단신으로 브라질에 날아가 3개월 간 살아보기도 했다. 대학교 4학년 때는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지만 일단 돈이나 많이 주는데 취업하자고 무역상사에 입사했다가, 술을 많이 준다는 이유로 아주 짧은 기간에 퇴사했다. 그리고 대학교 같은 과 후배가 개발자가 되었다는 걸 알게 되어 충동적으로 개발을 공부하기로 결심해서 개발자가 되었다. 아내에게는 사귄 지 3개월 만에 첫 직장을 그만둔 백수 상태로 프러포즈를 했고, 사귄 지 1년이 된 만 27살에 혼인신고를 했다.


무엇인가를 책임진다는 것은 참 무거운 일이었다.


그러다 책임에 대한 내 태도가 변한 건 결혼을 하면서였다. 나는 결혼을 굉장히 추천하는 사람 중에 하나로, 결혼을 하면 진심으로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고 믿는다. 나에게는 생각 없이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살아가던 삶의 종지부를 찍는 이벤트이기도 했다. 나의 결정이, 그리고 행동이 내 배우자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더 이상 아무렇게 살 수 없는 긍정적인 장치가 되어주었다. 물론 결혼 후에도 우리 부부는 칠레로 가서 살아보려고 준비하다가, 아내의 이직으로 상해로 거주지를 옮겼고, 그곳에서 더 나은 삶을 찾아 싱가포르로 이주하기도 했다. 여전히 우리 부부는 우리 둘만의 삶을 책임지면 되었다.



그러다 싱가포르에서의 삶이 안정되자 아기를 낳기로 결심했고, 첫 아이가 태어나자 정말 많은 것이 달라졌다. 나는 나의 삶의 한 요소로 책임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더 나은 가정을 꾸리기 위해 돈이 더 필요하면, 인터뷰를 보고 더 좋은 직장으로 옮겼다. 아이들과 아내에게 필요하다면 좋은 지역에 좋은 아파트와 차가 비싸다는 싱가포르에서 차도 사 왔다. 아빠의 책임감은 정말 다른 것이었고, 책임감이 무겁게 느껴졌던 옛날과는 다르게 즐길 수 있는 책임감이 있다는 사실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무엇인가를 책임진다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 되었다.


책임의 깊이와 범위


더 높은 수준의 책임감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깨닫게 된 재미있는 점은 책임감은 깊이뿐만 아니라 넓이도 함께 성장한다는 것이다. 대체로 사람들이 책임감을 특정 업무를 수행하는 수준 혹은 정도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책임감을 확장하면서 얻게 되는 가장 극적인 변화는 책임의 범위가 넓어진다는 것이다. 


예전에 아내 회사에서 진행했던 워크숍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다고 한다. 각자 자신의 회사에서의 삶과 개인에서의 삶에서 자기가 할 수 있다고 믿는 것과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믿는 것, 그리고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것으로 나누어 적어보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활동이었는데, 생각보다 사람들의 응답이 정말 다르더란다. 


천재지변, 부모나 자식의 사고/죽음, 회사에서 제한된 프로젝트 예산, 직장 생활에서 상사와의 관계, 인사평가 등을 여러분이라면 어떤 항목으로 분류하겠는가?


요즘 내가 겪고 있는 변화들은 점점 거의 모든 것들이 내가 결정할 수 있거나 내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내가 하는 많은 일에 온전히 책임지고 변명을 하지 않기로 먹으니, 생각보다 훨씬 나의 삶이 깊이가 생기고 고요해지는 것을 느낀다.


변명하지 않겠다. 내 인생을 온전히 책임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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