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달성을 위한 자기희생의 끝이 궁금하다면, 삶의 불꽃을 보고 싶다면
내가 행할 수 있는 희생의 크기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때문에 동시에 희생의 반복이라고 할 수 있다. 희생이란 단어는 숭고해 보이기도 연민을 느껴야 할 것 같기도 하지만 사실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선택이나 희생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신념을 위해서 보수가 충분치 않은 일을 선택한다는 것은 동시에 신념을 위해 나의 안락을 희생시키는 행위이기도 하다. 총기 규제에 대한 로비스트의 싸움을 다룬 영화 미스 슬로운은 개인의 선택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모든 것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다른 하나를 희생시키는 이야기이다. 그 희생은 인간관계가 될 수도, 기본적 욕구가 될 수도, 심지어 자기자신이 될 수도 있다. 단지, 결과에 대한 책임은 모두 개인에게 있다.
선악의 대립은 중요하지 않다
모든 이야기는 선악의 대립이 확실하고 선이 이겨야 재미있다. 갈등이 없는 삶은 무미건조하고 악이 득세하는 세상은 희망이 없으니까. 영화 미스 슬로운의 인문들은 선악을 극명하게 드러내진 않지만 미국 영화답게 선을 대변하고 악을 대변하는 듯한 인물들이 나온다. 단지 주인공이 미스 슬로운이 악인지 선인지에 대한 단번에 확신을 가질 수 없을 뿐이다. 사람의 마음은, 선악의 선택은 종이 한장 차이일 뿐이다. 이는 영화를 보면서 끊임없이 결과를 궁금해하고 영화에 몰입할 수 있게 하는 데 도움을 준다.
소크라테스? 로비스트의 믿음?
로비스트라는 직업자체가 익숙하지 않지만 승리를 위해, 독보적인 존재감을 갖기 위해, 상대를 예측하고 그에 대응하는 인물 혹은 직업은 많이 접했기 때문에 영화 속 인물이 어색하지 않다. 다만 인물의 움직임을 쫓다보면 감독이 주는 싸인을 놓칠 수 있다. 감독은 소크라테스가 가르침을 남긴 법, 회사의 대표가 남긴 쪽지, 법정에서 수정 헌법 5조로 자신의 권리를 대변하다 폭발하는 주인공 등 여러 힌트를 끊임없이 주지만 한 번에 캐치하기는 쉽지 않다. 감독이 주는 힌트를 놓치지 않고 따라갔으면 결말에서 놀라지 않았을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