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다 큰 것 같은 고등 아이, 마음을 봐주세요.
고등아이도 아이입니다.
‘엄마는 왜 항상 집에만 있어요? 다른 엄마들처럼 직장에도 다니고 그러셨으면 좋겠어요.’
3월이 되면 고등학교는 정신없이 분주합니다. 담임은 처음 보는 아이들 30명을 만납니다. 3월 한 달 안에 아이들의 가정문제, 친구 문제, 학업 문제 등에 대해 상담을 통해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서 보통 3월 중순 이후에 ‘학부모 상담주간’을 통해 부모님들을 모시고 상담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물론, 학부모 상담을 하기 전에 학생과의 대화는 필수입니다. 학생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이 부모님과 대화하기는 좀 어렵기 때문이에요.
학생 상담은 방과 후에 진행하니까, 3월 한 달 동안 거의 ‘야근’을 할 수밖에 없어요. 계획은 1시간에 1명. 아주 포부 있는 계획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무슨 고민이 그렇게 많은지, 1시간은 턱없이 부족해요. 이야기를 중간에 지혜롭게 끊어내지 않으면 친구, 성적, 부모님, 가정 분위기까지 모조리 쏟아냅니다. 그래서 상담을 하다 보면 ‘이 아이들은 평소에 대화를 나누지 않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어요.
상담이 끝나면 내 머릿속도 복잡해집니다.
예기치 않게 아이들의 인생이 한가득 들어와 버렸기 때문이죠.
내가 모두 해결해 줄 수는 없지만, 아이의 사정을 알게 되었으니 모른 척할 수도 없죠.
우리 반 아이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나는 아이를 상담하고 상담일지에 이야기를 기록하고, 부모님을 만났을 때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갈까 고민하게 됩니다.
내가 풋내기 교사 시절의 일이에요. 어느 해인가 고등학교 2학년을 담임하던 때입니다.
역시 학기 초 ‘학부모 상담주간’에 우리 반 아이의 어머니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선생님, 우리 아이 때문에 너무 속상해요. 글쎄, 아이의 성적표를 옆 동에 사는 친구가 건네주는 거예요.” 라고 말씀을 시작하십니다.
나는 속으로, ‘풋, 짜식, 머릴 더 쓰지. 다른 동네로 날려 보냈어야지.’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어머님께는 그렇게 말씀드리면 안 되니까 제법 선생답게 대꾸했죠.
“저런, 어머님. 정말 속상하셨겠어요. 철수가 그럴 아이가 아닌데, 성적표 보고 어머님 속상하실까 봐 그랬나 봐요.”
이어서 어머니께서,
“너무 속상해요, 선생님. 저보고 왜 항상 집에만 있냐고 해요. 엄마가 자기만 바라보고 있어서 부담스럽대요. 다른 엄마들처럼 회사도 다니고, 놀러도 다니고 그러래요.”라고 말씀하시면서 울음을 터뜨리셨어요.
‘이런, 어머님 마음이 많이 상하셨네. 어떡하지?’
나도 모르게 그 순간 아이와 어머님의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하나에서 열까지 옆에서 보필하는 듯한 보살핌보다는 한마디라도 진실함이 전달되는 대화가 필요해 보인다고 직감했습니다. 아마도 아무런 상담 기법도 모르고 경험도 없는 풋내기 교사이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이야기를 어머니에게 한 듯합니다.
“어머니, 철수가 정말 기특하네요. 자기만 돌보느라 집에만 있는 엄마한테 많이 미안했나 봐요. 어머니, 너무 속상해하지 마세요. 그렇게 말해주는 아들이 얼마나 있을까요?”
라는 말이 툭 튀어나왔어요. 우시던 어머님도 아들을 칭찬하는 교사의 말에 그다지 기분이 나쁜 얼굴은 아니었어요. 그래서 말을 이어갔습니다.
“어머니, 철수가 겉으로 보기에 장난스럽지만 자기 진로에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어요. 공부를 안 하는 것처럼 보여도 야자(야간자율학습)랑 보충수업도 듣고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요. 믿고 맡겨두세요.”
“그럴까요? 잘할 수 있을까요?”
“그럼요. 믿는 만큼 성장한다고 하잖아요. 믿으세요. 그리고, 오후 시간에는 친구분들도 만나시고, 직장 다닐 수 있으면 다니셔도 좋을 듯해요.”
상담은 무사히 잘 마무리되었습니다.
어머님도 눈물을 거두시고 웃음을 찾으시고 돌아가셨습니다.
상담이 있었던 후, 두 달 뒤에 어머님이 다시 찾아오셨어요. 아이의 성적은 그다지 크게 오르지 않았지만, 어머님은 한결 여유로워 보이셨어요.
“선생님, 저 직장 다녀요. 직장에 다니면서 오히려 아이와 대화도 늘어난 것 같아요.”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직장 생활을 처음 하시는 거라 힘든 일이 많았으리라 생각되지만, 아이의 인생을 모두 짊어지고 책임져야 한다는 초조함을 조금 내려놓으신 것 같아서 안심되었습니다.
고등학생은 학생입니다. 그리고 어른이죠.
‘미성년’이라는 제약이 있어서 사회적으로 금지된 것들이 많이 있지만, 버스 및 지하철 등 교통수단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고, 집에 어른이 며칠 없어도 혼자 지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책을 사서 읽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 방학을 이용하여 친구들과 여행을 가기도 하고, 비행기 및 숙소까지 예약하여 여행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유튜브 채널이나 구글을 검색하여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언제, 어디서든 얻을 수 있어요.
고등학생은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오히려 어른들보다 유익하고 다양한 정보를 접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기계를 설명서를 보고 작동시킬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부모님이 보기에는 밥도 챙겨줘야 하고, 학원 시간에 맞춰서 보내야 하고, 어떤 친구를 사귀고 있는지 확인해야 하고, 좋은 대학과 좋은 직업을 갖게 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돌봐주어야 할 것 같죠. 하지만 그것은 안타깝게도 부모님의 부모로서의 직업병입니다.
어른의 시각에서 길을 제시하면 아이는 그만큼만 성장합니다. 하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아이들에게 맡겨두시면 그 성장은 얼마만큼인지 측정하기 어렵습니다.
얼마 전 「가려진 시간,2016」이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심리적인 성장통을 겪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여자 주인공이 적은 시구가 기억에 남습니다.
제목, 하얀달.
눈을 감고 걸었다.
어둠이 무서웠지만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무섭지가 않았다.
눈을 떠보니 네가 내 손을 잡고 있었다.
너와 내가 함께 하얀달을 바라보았다. - 수린(신은수)
지금 아이들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자신을 향한 변함없는 신뢰와 대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