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고등아이들이 진로를 결정할 때

저는 수학이 좋아요

by 카멜리아

고등 아이와 진로에 관해 대화하는 이유

“선생님, 저는 수학이 정말 좋아요. 친구들과 함께 공부할 때 가르쳐 주는 것도 좋아요. 내 설명을 듣고 친구가 이해하게 되었을 때 희열을 느껴요.”


3월, 새로운 학년, 새로운 학기가 시작하면 올해 아이들과 무사히 잘 지내기 위해 상담을 시작합니다. 고등학생의 신학기 상담은 대체로 진로에 관련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아이들과의 대화 중 느끼는 것은 학생들이 자신의 꿈을 구체적인 직업으로 표현한다는 겁니다. 나는 분명 아이들과 ‘자신의 꿈’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싶은데, 학생 경력이 많은 우리 아이들은 학교생활기록부의 ‘진로희망’란에 적을 수 있도록 아주 친절하게 자신이 되고 싶은 직업을 선생님에게 제공해줍니다. ‘교사가 되고 싶어요.’, ‘대기업 사원이 되고 싶어요.’, ‘공무원이나 해야죠.’라고 대답합니다. 아이들에게 ‘자신의 꿈’이라는 것 자체가 ‘직업’이 되어 버린 겁니다. 아마도 우리 교육 시스템이 우리 아이들에게 ‘꿈’이라는 단어를 가져가 버린 것 같아서 교사로서 무척 미안한 마음이 들 때가 종종 있습니다.


제가 대학교에 들어가던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때는 상담이라고 할 것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담임 선생님과 대학교 상담할 때가 기억이 납니다.

“너 어디 갈래?”

“저, 사회사업학과요.”

“뭐? 사회사업학과? 거기 보내본 적이 없는데…. 혜영아, 너 일본어 좋아하잖아. 맞다. 그러고 보니, 너네 일본어 선생님도 그 대학 나왔잖아. 너 거기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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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당시 저는 주변에 어려운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잘 배워서 그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사회 복지라는 개념이 잘 잡혀 있지 않았었던 때라 학생만이 할 수 있는 호연지기를 발휘하여 우리나라의 복지를 발전시켜 보겠다는 꿈을 가지고 그 학과에 진학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담임 선생님께서는 전혀 다르고, 단순한 시각에서 저에게 일본어일본문학과를 권해주셨습니다.

그 순간 모든 것이 틀어진 기억이 납니다. 그 당시 모의고사를 볼 때 답안지에 자신이 희망하는 대학을 기록했었습니다. 그리고 성적표를 받을 때 내가 어느 선의 대학까지 진학할 수 있는지 분석하여 제공해주었습니다. 더불어 내가 희망한 대학 학과의 합・불 여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의고사를 볼 때마다 ‘숭실대학교 사회사업학과’를 지원하였고 합격 점수를 받아서 진짜 진학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처음이자 마지막인 대학교 입시 상담에서 전혀 다른 대학의 학과를 말씀하신 겁니다. 정말 우습게도 선생님의 말씀에 한마디도 저항하지 않고, 일본어일본문학과를 진학했습니다.

다행이라고 해도 될까요? 저는 일본어를 무척 좋아했고, 대학 공부하는 것이 재미있어서 신나게 학업에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교사의 시점에서 고등학교 시절 상담의 내용을 보면 말도 안 되게 직관적인 흐름이었지만, 그래도 다행인 것은 우리 담임 선생님께서 제가 좋아하는 것을 아시고 저에게 맞는 학과를 추천해 주셨다는 겁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합니다. 제 인생이 걸린 상담이었는데 말이죠.

mug_obj_144109346546893628.jpg 갈림길 : 네이버 이미지검색

교사를 하면서 이때의 일을 계속 생각합니다. 결과적으로는 내가 일본어를 좋아했고, 초등학교 시절까지는 외교관이 되고 싶어 했으니까요. 하지만, ‘사회 복지’ 관련하여 미련이 계속 남아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정말 즐겁게 일본어일본문학과를 졸업하고 ‘나의 꿈찾기’ 방황이 시작되었습니다.

교회를 다니면서 우리나라 남도에 위치한 보육원에 봉사활동을 다녔었죠. 아이들의 얼굴에서 웃음을 발견하고 행복감을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교회 선교원에서 아주 적은 급여를 받아가면서 봉사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보았습니다. 아마도 최저생계비에 못 미치는 급여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개척 교회에 봉사하는 마음으로 10년 가까이 섬겼습니다. ‘사회 복지’를 향한 마음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주변에서 보고 있었던 우리 부모님의 속이 까맣게 타는지도 몰랐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께서 정말 호소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혜영아, 너 일본어 좋아하잖아. 그러니까, 아직도 손을 놓지 못하고 공부를 하지. 그리고, 아이들도 좋아하잖니. 너 선생 시험 한 번 봐라. 이번에 시험이 안 되면 내 다시 말하지 않으마.”

정말 죽기 살기로 공부했습니다. 어느 날 버스를 타는데 할머니께서 아주 커다란 짐을 지고 버스 계단을 오르셨습니다. 갑자기 그 모습에 내가 겹쳐 보이면서 ‘일사각오’로 공부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교사가 된 지금 저는 여전히 꿈을 꿉니다. 어려서 꿈꾸던 외교관의 꿈은 ‘한국일본어교육연구회’라는 전국 단위 연구회 활동을 하면서 일본과 관련된 교육 활동을 통해 나름의 ‘민간 외교’를 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꿈이 있다면 교사인 나를 통해서 자신의 진로를 찾아가는 과정에 어려움을 느끼는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꿈을 꿉니다. 아직은 직업을 논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의 가능성을 직업이라는 프레임에 가두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단순히 교사가, 공무원이 되기에, 대기업 회사원이 되기에는 너무 아까운 인재들입니다. 교사를 꿈꾸면 교사만 되지만,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고자 꿈꾸는 친구들은 자신뿐만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대기업 사원이 되기를 꿈꾸면 대기업 사원이 되겠지만, 자신이 기획하고 있는 사업안을 성공시키고자 하는 친구들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선생님, 저는 수학이 정말 좋아요. 친구들과 함께 공부할 때 가르쳐 주는 것도 좋아요. 내 설명을 듣고 친구가 이해하게 되었을 때 희열을 느껴요.” 학기초 상담할 때 어떤 아이의 말입니다.

아이들은 무엇이든 계기가 있습니다. 고등학교에 올라와서 첫 시험을 보았는데, 수학을 못 한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좋은 성적으로 친구들과 스터디그룹을 만들어서 멘토・멘티 활동을 하면서 가르치는 것에 재능이 있음을 깨닫고 교사를 꿈꾸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고등 아이들,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재능, 친구 관계, 좋아하는 교과목, 봉사활동 등 자신이 학교생활에서 집중했던 교육 활동 및 잘한다고 생각했던 것임에도 불구하고 실패했던 경험, 부모님의 경제 상황 등을 토대로 하여 나름 종합적으로 진로 선택을 합니다. 당연히 이들의 인생이기 때문에 이러한 선택 과정을 존중해야 하고 지켜봐 주고 싶습니다.

거창한 사명감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다른 일이 아닌 이 직업을 굳이 선택한 이유가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때,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신입 하나가 씩씩하게 말했다.
"저는, 평생의 꿈이었어요."
---「어쩌다 간호사」 중에서

어느 날 자신이 선택한 인생 앞에서 블랙홀로 빠져들어 갈 만큼 힘든 시기를 만나겠지만, 꿈을 향해 직진 중이 아이들에게 ‘너를 위함으로 포장한 염려’보다는 ‘너의 선택에 존중’의 격려를 보내주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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