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장난꾸러기에 갖은 난폭한 행동들을 해서 부모의 골칫거리인 주인공, 그런 주인공을 어머니가
"꼴도 보기 싫다"라고 해서 친척집에 가 있는 동안 어머니는 돌아가신다.
형과는 사이가 안좋고, 아버지 역시 어머니 돌아가시고 몇년 뒤에 또 돌아가신다.
결국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받아보지 못하고 자란 아마도 차가운 도련님 정도의 캐릭터인 듯 하다.
그냥 부모님의 골칫거리.
하지만 키요라는 유모가 언제나 칭찬하고, 무슨 일이 있으면, '마음이 착해서 그런거다, 마음이 맑아서 그런거다, 너무 착하다' 라고 하면서 유모만은 도련님을 이해해 준다.
키요는 아주 소소한 것이라도 찾아내서 칭찬해 주고, 부탁하지 않아도 용돈도 주고, 맛있는 음식도 해다 주고 한다. 그리고 도련님이 성년이 되어 독립할 나이가 되어 집을 사면 그 집에 가서 끝까지 돌봐주겠다고 하면서 '어서 집을 사라, 장가가라~' 라고 하면서 옆에서 이것저것 챙겨준다.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형은 사업을 한다면서 살던 집을 정리하고 얼마 정도의 돈만 쥐어주고 자기 길을 떠난다. 그리고, 그 이후로 다시는 만나지 않는다.
형에게 받은 돈으로 3년 동안 공부를 하는 동안, 자신을 돌봐주던 키요는 친척집에서 잠시 식모살이를 하면서 도련님이 자신을 불러주기만을 기다린다. 하지만, 키요의 소원대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도련님은 3년간의 공부가 끝나고 시코쿠에 있는 중학교에 수학 선생으로 가면서 키요하고 정말 멀리 헤어지게 된다.
뭔가 애틋하다.
도련님을 따라가고 싶으나 너무 먼 길이고, 나이가 있어서 본인이 찾아가기도 힘들다고 생각했는지 그렇게 결혼해서 '어서 집을 사라, 난 그 때만 기다리고 있다' 라고 언제나 언제나 오매불망 도련님과 한집에 살면서 모실 날만 기다리던 사람이,
"이제 진짜 헤어져야겠네요. 몸 조심하세요. "
[もうお別れになるかもしれません。ご機嫌よ。]
이라고 말할 때 그 마음이 얼마나 슬펐을까. 하지만, 정말 쿨하게 도련님을 보내준다.
평생 열망이던 그 소원이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소원인 것을 알게 된 그 순간, 포기해야 하는 그 순간을 받아들이기가 얼마나 어려웠을까. 그런데, 그 순간을 순수히 받아들인다.
그래서 더욱 애틋했다.
자신을 불쌍히 여기고 돌봐주는 유모를 귀찮게 생각하기도 했는데 기차에서 멀어지는 유모를 보는 도련님의 그 눈은 또 왜 그리 애틋한지, 정말 애틋하다.
기차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유모의 모습을 멀어져 갈 때까지 바라보는 도련님의 시선을 따라가 보는 나의 마음에도 그 애잔함이 옮겨온다.
나쓰메는 도대체 어떤 경험을 겪은 사람이길래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움직일 수 있는지 궁금해졌다.
필체 또한 꾸밈이 없이 매우 담백한 문장으로 천천히 써내려 간다. 키요의 마음과 도련님의 마음을 작가가 설명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마음이 전해져 온다.
나쓰메는 무슨 자신감이지? 무슨 자신감에 주인공들의 마음을 하나도 설명하지 않는 거지?
보통 1900년대 작가, 근대 작가들의 특징이 안보인다.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그냥 눈에 보이는 것, 주변 경관, 상황, 그 사람이 하는 말을 그대로 전달하고 써내려간다. 아주 담백하게.
그런데, 그 주인공들의 마음이 왠지 느껴진다. 작가가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작품을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그 상황의 주인공들의 마음이 느껴진다.
나쓰메 소세키, 그는 천재인 듯 하다.
[2장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