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련님]을 읽고

5-6장 진정한 배려

by 카멜리아

아이들의 잘못을 반드시 인정하게 하겠다던 도련님의 결심을 어떻게 되었을까?

도쿄에서 나서, 도쿄에서 키요의 살뜰한 보살핌을 받으면서 자라고 생활한 도련님이 궁핍한 시골 생활을 잘 이겨낼 수 있을까? 시코쿠의 작은 도시의 작은 학교에서 동료 선생님들과는 잘 지낼 수 있을까?

도대체 이 소설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서 글을 읽게 된다. 사실 읽기 시작한 지 몇 달이 되었는데, 학교 일과 수업 준비 등으로 읽는 것을 중간에 그만 둘 법도 한데, 글을 읽고 브런치에 글을 쓰고 계속 기억하고 신경 쓰고 해서인지 책상 한편에 놓인 이 책을 자꾸만 보게 된다.

마음으로 신경을 쓰고 머리로 기억하고 있어도 몸의 피곤함이 4장을 읽고 뒤 이야기를 빨리 올리겠다는 의지를 보기 좋게 꺾여서 이제야 뒷 이야기를 읽고 올린다.


[도련님]을 읽으면서 선생님의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이렇게까지 가십거리가 되나?라고 느끼는 부분들이 있었다. 그런데 5, 6장을 읽고 '그럴 수 있겠다'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교감 선생님이 낚시를 권한다거나 동료 교사가 문학 관련 이야기를 한다거나 하는 일들이 도련님에게는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도대체 왜 낚시를 할까, 아무리 물고기라도 자신의 생명을 빼앗기는 상황에 누가 좋아라 할까, 사람에게는 다 전공이 있는 법인데 과학과 수학을 전공한 사람에게 문학 이야기를 하는 것은 무슨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인지~등 도련님은 이 학교의 사람들에게 매우 우호적이지 않다.

아무리 좋은 의도에서 한 행동이어도 싫어할 것 같은 상황이 전개된다.

만약 처음부터 간절히 원하는 학교에 오게 된 것이라면 학생들의 장난, 잘못된 행동에 너그러운 마음을 갖고 대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학생들의 잘못을 규명하고 아이들에게 잘못을 시인하게 하려고 하는 도련님의 자세에 대해 교감이 이런 말을 한다.

" 나도 기숙사생들의 난폭한 행동을 듣고, 교감으로서 부주의했던 점, 평소 지도하지 못했던 점에 대해서는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이런 일들은 평소 대비가 부족하면 생기는 것으로, 사건 그 자체를 보면 학생만의 잘못으로 보이지만, 글 진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잘못을 오히려 학교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표현에 드러난 것으로만 엄중하게 처벌하는 것은 오히려 미래를 위해 좋지 못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또 청소년이기에 혈기왕성하고 선악의 판단 없이, 거의 무의식적으로 이런 장난을 했을 것입니다. 어차피 처분은 학교장이 최종 결정을 하는 것이라 교감인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니, 부디 앞에 언급한 내용을 고려하여 가능한 관대하게 처분해 줄 것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이 말을 들은 도련님, 적당히 덮으려고 하는 학교의 입장이 몹시 마음이 안 든다. 도련님은 난폭한 학습을 근절하고 싶어 한다. 교육이란 '학문'만을 하는 것이 아니며 고상하고 정직한 기본 성품을 기르는 것을 모두 내포하는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즉, 적당한 선에서 아이들에게 관용을 베풀 생각이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전후 상황을 이야기하는 도중 자신의 잘못을 조금씩 각성해 간다.

당직 때는 학교에서 식사를 하고 기숙사생들을 살피고 학교를 순회해야 한다. 하지만 도련님은 무료한 숙직의 밤을 달래기 위해 온천을 다녀오고 근처 식당에서 식사를 하게 된다. 학교 시스템을 가볍게 여기는 행동을 한 것이다. 그런 장면을 아이들에게 들키게 되고, 아이들은 그런 도련님의 모습이 마땅치 못하여 장난을 하게 되는 악순환이 전개된 것이다.

결국, 도련님이 [템푸라, 가락국수, 꼬치]를 먹은 행동 자체가 아이들에게 가십거리가 아니란 말이다.


적어도 내 생각은 그렇다.


나도 교사 생활을 하면서 지역을 3번 옮겼고, 지금 있는 학교는 다섯 번째 학교이다.

지역마다 학교마다 특성이 있고, 그 안의 아이들도 다양한 환경을 가지고 있다. 내가 살아온 나의 경험치로 아이들을 판단할 수 없으며, 그런 생각으로 아이들과 생활한다면 학교에 있는 그 자체가 지옥일 것이다.

아마 아침에 일어날 때 숨이 쉬어지지 않을 것이고 어떻게 하면 학교에 최대한 늦게 갈까 미적거리다 겨우겨우 일어나서 챙기고 가게 될 것이다.

학교에 가서는 주어진 일만 꾸역꾸역 하고 근무 시간을 끊임없이 체크하고 마지막 교시를 마치자마자 학교를 탈출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해도 나는 학교를 즐긴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도 아이들은 사랑스럽다. 신규 시절에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엄격하게 지도하려고 노력했고, 혈기왕성한 성격이 조금씩 순화되면서 아이들을 감싸는 법을 익혀나갔다. 그리고, 잠깐의 슬럼프를 슬기롭게 넘기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아이들을 응원하게 된 것 같다.

물론 기가 막히게 학교에 가기 싫어서 사직서를 쓰고 싶었던 적도 있긴 하다. 아주 잠깐이지만.

그때를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잘못된 선입견을 갖고 기대를 했고 그 기대치에 미치지 못해서 스스로 실망했고, 그런 실망감은 겉으로 당연히 드러났을 것이고, 아이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알았을 것이다.


내가 아이들을 힘들어하는 것을.


진정한 배려는 상대방을 생각해 주는 척, 단순하게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배려는 '내가 네가 되는 것'인 것 같다.

조금 무섭지만 '빙의'라는 말을 빌어서 생각해 보고 싶다. 나의 어휘력이 무척 딸리는 것이 매우 아쉽지만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새로운 시기, 조직, 변화, 어려운 국면을 잘 헤쳐나가려면 내가 나로만 있는 것이 아니라, 너도 되어 보고, 그도 되어보는 자세가 무척 중요함을 느끼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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