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인탈북자의 아이가 미국대통령 되다(8)방송 인터뷰-1

탈북자에 특별한 관심을 보이는 미국 방송사

by 버드나무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현석 등이 서서히 미국의 자유로운 문화에 적응해 가고 있었다.


난민 신청자들을 보호하고 있던 보호소에 한 방송국으로 터 요청이 왔다. 북한의 실상을 방송하기로 기획하고 있는데 이번에 탈북을 해서 보호소에 있는 현석 등 탈북자들을 인터뷰해서 방송을 해 보자는 요청이었다.


그 방송국에서는 북한 인권 문제에 관심이 높았었고, 이번에 현석 등 탈북자들이 미국으로 난민 신청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탈북자를 인터뷰하는 계획을 세웠다. 특히, 탈북자 중에 현석과 같은 시각장애인이 있다는 사실에 더욱 인터뷰를 하자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인터뷰를 요청한 방송국은 한국과 깊은 관련을 가진 방송국이었다. 바로 방송국을 설립한 방송국의 설립자 험프리가 과거 한국 전쟁 당시 한국에 파견되었던 미군 출신이었다. 과거 미군 출신으로서 한국 전쟁에서 돌아와서 미국에서 방송국을 설립한 험프리는 한국 전쟁 당시 한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밀고 올라간 후 중국군의 투입으로 다시 후퇴할 당시 북한 흥남부두에서 미군과 한국 사람들을 싣고 남쪽으로 후퇴한 선박을 직접 운행한 미군이었다.


한반도가 자유민주 국가로 통일되기 직전에 중국군의 투입으로 후퇴를 하는 선박을 직접 운행한 미군이었던 방송국 설립자는 한국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계속 한국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이번에 북한을 탈출한 현석 등 탈북자에 관한 기사를 읽으면서 방송국을 운영하고 있는 과거 미군 출신 험프리는 다시 옛날에 자신이 수많은 북한 사람들을 태운 선박을 운행하던 때를 생각하게 되었다.


당시 선박에 수많은 북한 사람들을 싣고 남쪽으로 선박을 운행해서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했던 기억은 그가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었다.


원래는 미군과 한국군 등 군인만을 선박에 싣고 떠나려고 했었다. 그렇지만, 당시 수많은 북한 사람들도 자유를 원해서 미군의 선박에 타고 남쪽으로 가기를 희망했다. 그렇게 자유의 공기를 마시기 위해 결사적으로 배에 타려고 하는 수많은 북한 사람들의 처절한 눈동자는 미군 험프리가 평생 잊지 못할 눈동자였다.


험프리는 미군 지휘부가 혹시라도 북한 사람들을 배에 태워서는 안 된다고 결정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을 하고 있었다. 미군 험프리 자신이 미군 지휘부라면 당연히 저렇게 자유를 열망하는 사람들을 배에 태우기로 결정을 할 것인데 만약 미군 지휘부가 다른 결정을 내리면 저 불쌍한 북한 사람들은 어떻게 될지 험프리에게는 배에 타기를 바라는 수많은 북한 사람들이 불쌍하게만 보였다.


배에 타기를 바라는 북한 사람들 중에는 아기를 안은 젊은 어머니도 있었고, 나이 지긋한 아줌마 아저씨도 많았다.


험프리는 남쪽으로 가는 선박을 운항하는 미군 병사로서 제발 미군 지휘부가 저 불쌍한 북한 사람들을 배에 태우기로 결정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이윽고, 미군 지휘부의 결정이 내려졌다.


험프리의 심장은 두근두근 마치 험프리 자신의 가족의 운명이 결정되는 시간인 것 같이 격렬하게 뛰고 있었다.


"미군 지휘부는 북한 사람들을 배에 태우고 남쪽으로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험프리는 당시 위 음성을 듣는 순간 그 말이 꿈인지 현실인지 너무나도 기뼜다. 원하던 대로 북한 사람들을 배에 싣고 갈 수 있게 된 것이었다.


험프리는 북한 사람들을 배에 가득가득 입추의 여지없이 남은 공간이 없을 정도로 북한 사람들을 싣고 남쪽으로 가는 배의 운행을 시작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안전 기준을 초과하면서까지 배에 싣고 배를 운행한 적은 없었다.


그러면서도 험프리는 배의 운행이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이 순간 배를 운행하는 것이 즐거웠다. 자신의 희망대로 수많은 북한 사람들의 목숨을 살릴 수 있게 된 이 순간 북한 사람들을 실은 배를 험프리 자신이 운행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배를 운행한 이후 이렇게 즐겁고 힘이 하나도 들지 않는 달콤한 운행은 처음이었다.


이윽고, 배는 한반도 남쪽 항구에 도착했고, 수많은 북한 사람들은 자유의 공기를 마시면서 굶주림과 피곤에 지쳐 있으면서도 모두 얼굴에 웃음을 띤 채 배에서 즐거운 표정으로 내렸다.


무사하게 많은 사람들을 자유의 땅으로 안내하는 일을 마친 미군 험프리는 선박의 운행에 지쳐 있으면서도 마음만은 하나도 피곤하지 않고 즐거웠다.


북쪽에서 배에 타기를 바라던 사람들을 무사하게 싣고 이렇게 남쪽 항구에서 안전하게 내리게 하고 있는 이 역사적인 사건에 선박 운행을 하면서 직접 참여하게 된 것을 험프리는 너무나도 행복하게 느끼고 있었다.


배를 출발할 때 보았던 아기를 안은 젊은 어머니도 행복한 표정으로 아기와 같이 배에서 내리는 모습을 보면서 미국 험프리는 그동안 쌓인 피로가 저절로 사라지는 즐거운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한국 전쟁 후 미국에 돌아와서 방송국을 설립하였고, 한국 전쟁 당시 기억을 잊지 못해서 한국에 대한 특집 방송을 다른 방송국보다도 더욱 자주 특집 프로그램으로 다루었다.


그러던 중 이번에 현석 등 탈북자 일행이 북한을 탈출해서 미국에 도착한 후 난민을 신청했다는 이야기를 읽었고, 새삼스럽게 과거 한국 전쟁 당시 험프리 자신이 배를 운행하던 당시가 생각이 난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방송국을 운영하는 험프리는 현석 등 탈북자와 인터뷰를 해서 방송으로 북한 인권을 알리자는 생각이 험프리에게 떠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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