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인탈북자의 아이가 미국대통령 되다(7) 자유의 공기

처음 숨 쉬는 자유의 공기는 낯설지만 달콤하다

by 버드나무

현석과 탈북에 성공한 일행들은 지금 미국에 난민 신청서를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작성 중이다.


현석은 시각장애인이었기 때문에 시각장애인에 대한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자원봉사자가 도와주고 있다.


이곳에서 이렇게 불안한 탈출 과정을 마치고 난민신청서를 작성하는 순간은 탈북 과정의 시간보다도 훨씬 달콤했다. 그런 칼날 위에 있는 것 같은 불안을 이겨내고 천신만고 끝에 압록강 근처로 북한의 땅을 벗어나는데 성공을 했다. 선교사와 현석 등 일행은 중국 땅을 거쳐서 미리 마련한 방법으로 미국으로 들어왔고, 북한에서 탈출한 탈북자의 자격으로 난민 신청서를 작성하고 있는 것이다.


독립투사 선생님의 중요한 말씀으로 노출된 탈북 일정을 피해서 이렇게 북한 탈출에 성공했다. 그 말씀이 없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에 현석은 하루도 잊지 않고 독립투사 선생님에게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앞으로도 매일 목숨을 구해 준 독립투사 선생님에게 감사의 기도를 드릴 것을 자연스럽게 마음에 새겼다.


로봇 같은 생활을 해야 했던 북한을 벗어나서 이렇게 자유의 공기를 마시고 있는 한 순간 한 순간은 탈북 일정이 노출되었다는 것을 알려 주신 독립투사 선생님이 없었으면 누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평생 처음으로 북한 땅을 벗어난 현석을 포함한 탈북자 일행들은 미국 땅을 밟고 나서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북한에서는 1년 365일 1일 24시간을 짜인 각본에 따라 기계 같은 생활을 해야만 했는데 이곳에서는 어느 누구도 무엇을 하라고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다. 1년 365일 1일 24시간을 누구든지 자신의 생각대로 자신의 의사에 따라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더군다나, 다른 국가에서 탄압을 받고 피신을 한 사람들을 미국에서 이렇게 보호해 준다는 것은 기적과 같이 그들에게 생각되었다. 북한에서는 북한 사람들 스스로도 생활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어서 다른 나라 사람들이 오는 것을 보호해 준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불가능한 일이었다.


탈북자 일행은 모두 영어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한국어를 하는 통역인의 도움을 받아서 난민 신청서를 작성했다. 난민 신청서를 작성하면서 과거 북한에 있을 당시 남한의 드라마와 노래를 들었던 것이 도움이 되었다. 통역을 해 주던 통역인도 남한의 드라마와 노래를 알고 있어서 서로 의사 소통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미국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모두 생기가 발랄하고 주눅이 들어 있지 않았다. 북한 사람들은 정해진 방식에 따라서 마치 로봇이 생활하는 것 같이 딱딱하게 생활해야 하였었는데 이곳 미국 사람들은 모두 자유롭게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이 말을 하고 생활을 하고 있었다.


미국 정부의 배려로 현석 등 탈북자 일행에게는 기본적인 주거와 음식 등이 제공되었다.


자원봉사자들은 현석 등 탈북자 일행을 정성 들여서 돌보아 주었다. 자원봉사자들 중에서 현석을 담당하는 자원봉사자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특별한 교육을 받은 자원봉사자로서 정상인보다도 더욱 신경을 써서 정성스럽게 이렇게 평생 처음 자유의 공기를 마시고 있는 현석을 자유인으로 변활 수 있도록 하고 있었다.


지원봉사자들은 북한 사람들과는 달랐다. 따뜻한 인간의 정이 흐르고 있었고, 자원봉사자들은 북한이라는 혹독한 지역에서 고생을 하다가 목숨을 걸고 탈출을 한 현석 등 일행을 진심으로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그리고, 간단한 영어와 미국 역사, 미국 문화 등에 대해 기초적인 교육도 시켜주었다.


미국의 독립선언문을 공부하면서 현석 등 일행은 북한에서 배웠던 모든 것들이 가짜 교육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북한에서는 북한이 지상천국이라는 교육을 어려서부터 세뇌교육을 시켰다. 이렇게 북한 밖에서 보니 실상을 알 수 있게 되었다.


현석 등 일행은 북한에서의 폐쇄적이고 짜인 각본에 따른 생활과는 180도 달라진 자유스러운 미국 생활이 마치 천국에서의 생활같이 느껴졌다.


북한에서는 사람을 공산당의 부속품 정도로 여기는 것에 반해서 미국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인간 그 자체로 존중해 주었다.


난민 신청을 한 후 결정이 내려지기 전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현석 등 탈북자를 위한 보호시설에서는 현석 등 탈북자 일행을 위해서 미국의 가정을 방문해서 미국 문화와 미국 생활을 경험하도록 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현석 등 탈북자를 거주하게 하고 있는 보호시설에서는 현석이 시각장애인이기 때문에 미국 가정 중에서 장애인을 가족으로 두고 있는 가정을 방문하도록 해 주었다.


아무래도 정애인이 있는 가정은 현석과 같은 시각장애인을 더욱 배려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미국에서는 장애인을 최대한 신경 쓰고 배려하는 문화가 깊이 존재하였다.


현석은 들뜬 마음으로 실제 미국 가정이 생활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방문하는 날이 기다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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