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에 싣지 못한 북한 사람을 생각하는 험프리의 인터뷰 요청
난민 신청을 하는 현석 등 탈북자를 보호하고 있는 보호소 측은 미군 병사 출신 험프리가 운영하는 방송국의 요청을 받고 고민을 했다. 폐쇄적인 북한 사회에서 온 지 얼마 안 되는 현석 등 탈북자 일행에게 방송국 인터뷰를 하도록 하는 것이 괜찮은 것인지, 그런 인터뷰가 탈북자 일행에게 오히려 불편하게 다가가지 않을지 등에 대해 보호소 측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험프리가 보호소 측에 탈북자에 대한 인터뷰를 요청하면서 한 말 가운데에서 가장 보호소 측의 마음을 울리는 말이 있었다.
"저는 한국전쟁 당시 북한 사람들을 배에 싣고 올 때 배를 운행했던 미군 병사입니다. 제가 한국전쟁 당시 북한 사람들을 피난시키는 배를 운행하던 당시 남쪽으로 가려고 하던 북한 사람들을 다 싣지 못하고 일부 북한 사람들을 북한에 남겨 놓은 채 제가 운행하는 배가 남쪽으로 출발해야 했습니다. 지금도 그 배에 태우지 못한 북한 사람들의 눈동자가 떠오릅니다. 저는 미국에 와서 방송국을 설립하면서도 그때 배에 태우지 못한 북한 사람들을 잊지 못합니다. 그들의 한을 풀어 주지는 못했던 당시 현실이 지금도 가슴에 아련합니다. 그래서 그때 제가 운행하던 배에 싣지 못한 북한 사람들에게 지은 마음의 빚을 조금이라도 갚는 의미에서 이번 탈북자 일행에 대한 인터뷰를 요청드리게 된 것입니다. 제가 미국에서 설립한 방송국이 인터뷰를 통해서 제작하는 이번 특집 프로그램이 탈북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보호소 측은 험프리의 그 말에 진심이 담겨 있음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보호소 측은 현석 등 탈북자 일행에 대해서 인터뷰를 요청한 방송국이 그동안 어떤 내용으로 방송을 해 왔는가를 검토해 보았다. 그리고 방송국 설립자 험프리가 어떤 분 인지도 검토해 보았다. 이번 인터뷰를 하게 되면 혹시라도 해당 인터뷰 내용이 다른 목적으로 악용될 위험은 없는지 점검하기 위한 것이었다.
현석 등 탈북자 일행이 낯선 땅인 미국으로 왔기 때문에 돌보아 주고 신경을 써 줄 곳은 오직 난민 신청을 도와주고 있는 보호소 측뿐인 상황이다. 보호소 측은 이 낯선 미국 땅에서 탈북자들을 도와줄 곳이 보호소 자신들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더욱 여러 가지를 철저하게 신경을 써 주고 있었다. 이런 낯선 약자를 철저하게 보호해 주는 미국의 배려와 희생의 정신 때문에 미국이 세계 최고 국가가 되고 아메리칸드림이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것이었다.
현석은 시각장애인이라서 영화를 볼 수는 없지만 친한 친구들을 통해서 미국 영화 중 포레스트 검프라는 영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바보 같고 영악하지 못한 주인공은 주어진 상황에 굴복하지 않고 꿋꿋이 생활을 해 나가고, 결국 큰 성공을 거둔다는 줄거리를 현석은 친구를 통해서 듣고 감동을 받았다. 현석이 탈북을 결정하게 된 데에는 바로 포레스트 검프의 내용에 감동을 받은 영향도 있었다.
친구에게 들은 포레스트 검프 영화의 주인공 역시 인생에서 많은 고난과 시련을 마주쳤지만 굴하지 않고 성실한 삶을 살면서 이를 극복했다는 내용이었다. 현석도 그 영화 내용을 친구로부터 들으면서 자신도 그런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었다.
현석은 포레스트 검프의 주인공 같이 자신도 이제 미국에서 난민 신청이 받아들여지면 우직하고 꿋꿋하게 생활을 할 것을 다짐하고 있었다.
난민 신청자들을 보호하고 있는 보호소 측은 인터뷰를 요청한 방송국 설립자 험프리가 과거 한국 전쟁 당시 미군으로 파견되었고, 파견 당시 북한에서 남쪽으로 가기를 원하는 북한 사람들을 싣고 남쪽으로 온 배를 운행했던 미군 험프리가 바로 지금 인터뷰를 요청한 방송국의 설립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보호소 측은 그런 내용을 알게 된 후 인터뷰를 요청한 방송국의 인터뷰 요청에 대해 우호적인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인터뷰 내용이 다른 목적으로 악용될 위험은 낮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탈북자들에 대한 인터뷰를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과거 방송국 설립자 험프리가 북한 사람들에게 자유를 찾아주기 위해서 북한 사람들을 실은 배를 운행하서 자유를 찾아 주었던 미군 병사로서 그는 한국 전쟁이 끝난 후에 미국에 와서 방송국을 설립한 이후에도 과거 미군 병사 시절의 생각 때문에 자유를 찾는 북한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마음에서 인터뷰를 하게 된 것을 보호소 측은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험프리가 미군 병사로서 한국 전쟁 당시 자신이 운행하던 배에 싣지 못하고 북한에 남겨 놓은 북한 사람들에게 진 마음의 빚을 갚기 위해서 인터뷰를 요청하게 되었다는 말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험프리가 살아온 인생을 알고 나서 보호소 측은 어떻게 보면 인터뷰를 하는 것이 이번 탈북자 일행의 난민 신청이 인정될 가능성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보호소 측은 미군 험프리가 설립한 방송사의 인터뷰 요청이 현석 등 탈북자 일행에게도 유익한 인터뷰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탈북자 알행 중에 시각장애인 현석도 포함되어 있고 시각장애인까지도 자유를 찾아서 이렇게 탈북을 한 후 미국으로 왔다는 것이 인터뷰를 통해서 미국인들에게 알려지게 되면 난민신청이 벋아들여질 가능성이 훨씬 높게 증가하는 것은 당연했다.
보호소 측은 우선 현석 등 탈북자 일행의 탈북을 진행한 선교사에게 방송국의 요청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았다.
선교사는 보호소 측의 이야기를 듣고 감정이 복잡해졌다.
'현석 등 탈북자들이 미국 방송에 등장해서 북한의 실상을 알려 준다면 북한의 인권이 개선되도록 하는데 세게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은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아직 미국에 온 지 별로 안 된 텰북자들이 미국 방송 인터뷰에 제대로 답을 할 수 있을는지 그것이 걱정이 되네.'
선교사는 한편으로는 탈북자들의 방송 인터뷰가 잘 진행될 수 있을 것인지를 걱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잘만 하면 탈북자들의 방송 인터뷰가 북한 인권을 개선하고 북한의 실상을 세계에 알리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더군다나 그 방송국은 과거 북한 사람들이 남쪽으로 가는 것을 도와주어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해 준 배를 운행했던 미군 병사 험프리가 설립한 방송국이라는 사실에서 선교사의 마음은 안심이 되었다. 다른 의도가 아닌 북한 안권의 실상을 얼리려고 하는 방송국 설립자 험프리의 마움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선교사 역시 미군 병사 출신 험프리가 전달했다는 내용 중에서 과거 한국전쟁 당시 미군 병사 험프리가 운행하던 배에 싣지 못한 북한 사람들에 대한 마음의 빚을 갚고 싶어서 인터뷰를 요청하기로 했다는 내용이 가장 선교사의 가슴에 와닿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