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물을 사랑할 따름이다. 물의 착실한 투명성, 물속의 초록빛, 물속의 침묵의 생물을, 물밑의 나의 머리칼을. 공정한 물, 초연한 수면, 그대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지 못하게 막는 수면 밑에 풀려 있는 나의 머리칼을. 나와 나 사이에 그어진 축축한 한계를......"
춘천 그 다방에서 무심코 펼친, 보흐만의 산문집의 문장은 창 밖에 흐르고 있는 북한강을 금방 떠올리게 할 만큼 극적이었다. 문장을 읽고 나서 커피잔을 집어 들고 한 모금 마셨다. 다시 나의 시선은 책이 아니라, 북한강을 향했다. 그리고 우연히 조우한 이 문장으로 마치 북한강의 내면과 진실을 본 듯한 벅찬 감정을 느끼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해 생각했다.
"아마, 나는 이런 식으로 이 세상의 진실과 영원히 이별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강의 표면은 정체되어 해를 가만히 받아들이고 있다. 강이 가진 이 침착함은 나로 하여금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리게 만든다. 이렇게 강은 나를 더 어리고 명확하고 단순한 인간으로 변화시켜 간다. 무의미하고 때론 잔인한 이 세계에 반응하는 내 내면의 역치는 매우 낮은 수준인데, 더욱더 위태롭게 낮아져 간다. 그러면서 동시에 암흑에의 충동을 느낀다. 가장 순수한 절규를 외칠 수 있는 어딘가 진공의 세계로 떠나고 싶은 그런 욕구.
어쩌면 물고기들은 마음껏 비명을 지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가 듣고 있지 못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