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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 YI NA Dec 17. 2022

김광균_추일 서정

소외의 초상

 


인간은 어느 때 소외를 느끼는가. 다들 대세 sf소설을 읽고 있는데, 혼자서 1990년대 문예지에 실려있는 서정시를 읽을 때일까. 다들 기괴하고 새롭고 자극적인 것에 몰두할 때 홀로 진부함이 되어버린 진실을 되새기고 있을 때인가. 대부분 하나 둘 모여서 점심시간에 롯데리아에 가거나 돈가스 집을 갈 때 책 읽기를 고집하며 소통을 멈춰버릴 때일까. 그렇다면 소외가 소외가 아닌 순간은 언제인가. 아이러니하게도 소외와 소외가 부딪히는 순간이다.

소외가 자신만의 신념을 지키려는 의지의 또 다른 이름이라면 그 의지와 의지가 조우하는 순간, 자신이 견지해왔던 소외가 단지 나만의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는 순간일 것이다.

 김광균의 추일 서정을 읽고 있으면 그의 시가 나의 소외와 조우함을 느낀다. 낙엽은 망명정부의 지폐라는 표현은 자연과 인공의 대립인 것이다. 낙엽이 곧 지폐로 은유되어버렸으므로 인해 자연적인 것을 사랑하고 견지하고 싶은 의지에 대한 슬픔이 느껴진다. 그러나 화자는 이에 지지 않고 이 지폐 또한 포화에 이지러진 토른 시의 가을 하늘을 떠올리게 한다고 한다.

여기서도 바르샤바와 같은 수도가 아닌 토른을 언급한다. 토른은 중세를 대표하는 도시 중 하나다. 그 당시 독일군에 의해 폐허가 된 도시이며 이는 토른을 언급함으로써 좀 전에 자연이 인공에 져버린 것처럼 중세 시대의 몰락을 드러낸다. 자연적인 것과 폐허, 몰락을 여전히 잊을 수 없는 화자의 정서가 가을날의 풍경으로 서정성에 농밀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길과 열차의 대립을 통해 시간의 속력 때문에 소외를 느끼는 인간의 고독도 드러난다. 우리가 느끼는 시간은 한 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천천히 걸어가는 길처럼 느리지만 이는 금세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그리고 급행열차가 빠르게 달린다. 마찬가지로 인간적인 것은 금세 사라지고 인공적이고 현대적이고 급변하는 시간성을 보여준다. 이 시간성에 함몰되어 늙어가고 스스로의 존재를 망각해가는 인간은 한 없이 고독하다.

 포플러 나무는 이빨을 드러내는 강력한 공장의 공격성과도 대비된다. 자연적이고 아름다운 것이 위협을 느끼는 형국인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하늘을 올려다보아도 구름마저 셀로판지로 만든 것처럼 인공적이고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이는 화자의 고독이 정점에 이르렀음을 시사한다. 그리고 이는 마지막 연에서 고독한 반원을 긋고 잠기어 간다 라는 표현으로 내가 느끼는 고독과 소외는 영원할 것임을 말한다.


문학이 엔터테인먼트처럼 변모해가고, 작가가 콘서트를 열어 연예인이 되어가고, 점점 가볍고 그저 재밌게 읽히기 위해 꾸며진 문예지들, 이러한 것들에서 인공성을 느끼고 있는 요즘 옛 서정시를 읽고 있으면 나의 소외가 나만의 것이 아니었음을 느끼고 다시 글을 쓴다. 소외가 또다시 소외가 될지언정 그것은 곧 또 다른 서글픈 조우와 탄생을 야기시키기 위한 아름다움임을 믿는다.

토른

개인적으로 김광균의 추일 서정과 윤동주의 별 헤는 밤, 와사등, 데생 시를 너무도 좋아합니다. 특히 추일 서정...

언제 읽어도 참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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