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로란트 군이라고 이 소설의 핵심 주인공 입니다. 체계적이고 주입식 대학 교육 방식을 몹시 싫어하나, 그것을 강요하는 아버지 때문에 학업을 그만두지를 못 합니다. 그래서 그는 학교를 다니면서 숱한 여자들과 쉽게 관계를 갖고 헤어지기를 반복합니다. 한마디로 머리는 쓰기 싫으나, 여자들과의 강렬한 썸은 즐기는 건강한 사나이 타입의 인물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던 와중 그는 어느 날, 대학교에서 영문학 수업을 듣다가 특별한 열정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와 조우하게 됩니다. 어떤 열정이냐면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 등장하는 키티 선생님을 아시나요? 학생들에게 틀에 박힌 관념보단 자기안에 있는 내면의 소리를 들으라 외쳤던 그 교수, 학생들을 책상에 위에 서게 해서 다른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라 가르쳤던 그 교수요. 물론 츠바이크 소설에 등장하는 교수가 키티 선생과 완전히 같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역동적이고 진취적인 느낌이 흡사하다는 것이지요. 교수는 말합니다.
"체험이 없는 어학적 이해는 있을 수 없습니다. 가치와 인식을 동반하지 않고서는 단 하나의 문법적인 단어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 우리는 문학을 청춘의 강력한 형태로서, 그 정열의 궁극적인 견지로서 들여다 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
로란트 군은 교수의 역동적이고 진취적인 모습에 격정적으로 매료됩니다. 특히 교수가 토론 수업을 진행할 때, 학생들 사이에 분란이 생기니까 마치 바다에 뛰어드는 능숙한 수영선수 같이 뛰어들어서 분란을 조정하는 모습에도 내적으로 감탄합니다.
한편 교수도 로란트 군이 자신에게 흥미를 가졌다는 것을 알고, 자신의 집까지 초대하기에 이릅니다. 집에서까지 둘은 학구적인 열정을 불태우면서, 로란트는 이제 외적으로 방황하는 일은 사라졌습니다. 그는 생애 최초로 고독한 내적인 세계의 방황을 느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진짜 갈등이 시작됩니다.
교수가 로란트 군을 어느 때는 굉장히 진지하고 뜨겁게 대하다가, 또 어느 때는 세상 냉정한 사람으로 변모해서 그에게 까칠하게 대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소설의 핵심입니다. 소설 제목 그대로 교수에게 "감정의 혼란" 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또 한 가지. 교수에겐 이상한 점이 있었습니다. 갑자기 아무런 말 없이 며칠 동안 여행을 다녀오곤 했다는 것입니다. 로란트 군은 그런 그를 이해할 수가 없었고, 질투와 시기로 불타올랐습니다. 교수와 자신의 관계가 충분히 특별하다고 여겼는데 그가 자신에게 조차 털어놓지 않는 비밀이 있다는 것은 매우 분노가 느껴지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세번째 핵심 인물이 등장합니다.
교수의 아내입니다. 아내는 늙고 피로해보이는 교수와는 달리 한 여름 날에 빛을 발하는 파란 하늘처럼 밝고 명랑한 여자였습니다. 그녀는 스포츠를 즐겼고, 가볍고 유머있는 대화를 즐겨했습니다. 그런데 교수의 이상한 점이 아내로 인해 더 두드러집니다. 교수가 아내에게는 아주 냉랭하게 대하는 것이었습니다. 로란트 군과 대화하거나 그럴 때 가까이에 오는 것 조차 꺼려했습니다. 그런데 아내인 그녀는 그것을 당연스레 여기고 교수의 사적인 영역은 침범하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은 법적으로만 부부일 뿐, 소위 말하는 쇼윈도 부부였습니다.
로란트 군은 아내에게서 교수의 비밀을 듣고자 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맙니다. 다만 그녀는 로란트 군에게 시시한 정신세계에 너무 빠져있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그것은 당신의 정신을 종국에는 피폐하게 만들 것이라면 서요. 그렇습니다! 아내란 인물이 가지는 의미는 로란트군이 교수를 만나기전에 즐겼던 향락을 떠올리게 하는 존재인 것입니다. 그리고 교수는 그와 반대의 인물로서, 대인관계의 단절, 자신의 자아에 갇혀서 오로지 정신세계에 몰입하게 해주는 인물인 것이지요.
겉으로는 두 인물이 각자의 독립된 개체로서, 서로 사이가 안 좋은 부부사이로 보이지만 사실은 두 인물은 하나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로란트 군 자신의 자아 속에서
끊임없이 외부의 유혹과 내적 성찰 사이에서 방황하고 혼란을 겪는 모습이, 사실은 인간 본연의 모습이라는 것을 츠바이크는 말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소설의 흐름은 교수가 자신의 비밀을 폭로하면서 끝이 납니다. 사실은 자신이 제자를 에로스적으로 사랑했다고 고백하면서, 교수와 제자는 강렬히 키스 합니다. 그간 교수가 로란트 군에게 문득 차갑게 대했던 이유는 자신의 사랑이 불결하다고 느껴지기에 숨기고 싶었던 것이요, 여행이라는 명목으로 방황했던 이유는 그 풀어내지 못한 욕구를 부랑자들 사이에서 불법적인 방법으로 해소했던 것이며, 아내를 기피했던 것은 그들의 고결한 정신적 관계에 아내의 명랑함이 끼어드는 것은 불륜보다 훨씬 불결한 요소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독자들은 그렇다고 해서 교수를 동성애자로만 취급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동성애는 교수의 감정의 혼란에 명분을 부여해주기 위한 소재일 뿐입니다. 이 소설이 단순하게 동성애자의 남 모를 고통으로 순화되는 것은 츠바이크의 이 훌륭한 명작을 시시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교수와 제자의 키스가 의미하는 것은 결국 인간은 두 가지 세계, 즉 육감적이고 자극적인 젊은 날의 동물적인 세계와 모든 것이 정지된 상태, 외적인 방황은 멈추고 내적인 동요에 몰입하는 세계 사이에서 늘 방황하지만, 결국 두 세계를 아우르는 것은 젊은 날의 자극도 고뇌도 아니다, 인간과 인간이 진정으로 내적인 교감을 이뤄냈을 때, 거기에서 극적으로 탄생한 에로스는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 대사 하나 하나, 그리고 그 외에 다른 철학적인 사상도 조사해서 더욱 자세히 쓰고 싶었으나 시간적 여유가 안 되어, 이 만큼의 애정 밖에 보이질 못 해서 나는 이 소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내내 비평을 썼습니다. 내게 시간이 아주 많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럼 더 자세히 샅샅이 사랑해줄텐데요, 그럼 더 문학은 새로이 태어날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