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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세 Jul 15. 2023

월세 200에 코웃음 치는 런던에서 집 구하기 -1

영국 최악의 인플레에서  눈물의 집 구하기 

 







살다 보면 인생은 타이밍이란 말과 선택의 연속이라는 말이 정말 맞는구나 싶을 때가 정말 많이 있다. 그것이 좋은 때이든 나쁠 때이든. 내가 그 말을 가장 실감하는 순간은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손에 꼽는 순간은 바로 런던에서 집을 구하는 때인 것 같다. 



2020년 나는 정말로 타이밍 좋게 코로나 판데믹에 계약기간이 끝나 새로운 집을 구해야만 했었다. 솔직히 결론부터 말하면 이때당시 코로나 판데믹 락다운 때 런던에서 집 구하기란 그야말로 누워서 스콘 먹기였었다. 


어마무시하게 늘어나는 코로나 확진자들을 막으려 영국은 다른 유럽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국가적 봉쇄라는 극단적 길을 선택했었고 그 바람에 봉쇄 직전 모든 외국인 세입자들은 자신의 나라로 돌아갔고 기존에 직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물가와 집값이 비싼 런던에 살았던 영국인들마저 재택근무로 전환되자 더 이상 런던 같은 대도시에 있을 이유가 없어 비교적 인구밀집도가 많은 대도시로부터 벗어나 근교의 부모님 집으로 돌아간다던지, 집값이 훨씬 저렴한 시골로 떠나갔었다.

덕분에 런던의 수많은 집주인 (랜드로드)들은 어떻게든 비어 가는 플랫을 채워줄 새로운 세입자들을  찾으려고 어마무시한 가격을 낮추기 경쟁에 들어갔다.




너무나 다행스럽게도 나의 집 계약기간은 이때 즈음에 끝이 났다.

하지만 당시 집값(월세)이 이렇게 떨어졌는지 몰랐던 나는 비장한 마음으로 슬슬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는데 늘 상시로 깔아 두었던 나의 여러 부동산 앱들을 5분 정도 둘러보고는 떨어지는 입을 다물수가 없었다.



 

'이게 뭐야? 아니, 이 위치에 이 가격에 이 정도의 집이 이 가격이라고? 말도 안 돼!' 


 


런던에서 이미 3년을 살며 이것저것 꼼꼼히 따져 까다로워질 대로 까다로워진 나의 눈을 만족할 만큼의 좋은 이점들을 가지고 있으나 코로나로 인해 집값들은 최저로 떨어져 있었고 자신들의 빈집을 채워줄 세입자들이라면 조금 가격이 깎여도 열렬히 두 팔 들고 환영했던 (지금과는 전혀 다른 ) 랜드로드들 덕분에 2020년 나의 집 찾기는 유례없을 정도로 수월할 최고의 조건을 갖추게 됐었다. 



 

내가 그 당시에 거주하고 있었던 곳은 West South London Zone 2에 있었던 Fulham (풀햄)이라는 지역이었는데 정말 조용하고 한적하지만 있을 건 다 있는 소위 말하는 백인 부촌 마을이었다. 부촌 마을 특성상 렌트비는 조금 높은 편이었지만 그럼에도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안전' 이였다. 




내가 아직 런던에 대해서 무지하던 집 찾기 초짜였던 시절 살았던 동네는  stokwell (스톡웰)에 있었다. 건물 자체는 정말 모던하고 좋은 스튜디오형 아파트에다가 24시간 건물을 관리해 주시는 관리원분과 경비원분 그리고 헬스장, 독서실까지 있는 아주 좋은 건물이었다. 그리고  집 찾기 초짜였었던 나는 '동네'의 중요성을 전혀 알지 못하고 덜컥 이곳을 계약하게 된다. 낮에는 아무 문제없는 동네 같이 보였지만 뭘 모르는 나조차 밤이 되면 여자 혼자 다니기에 조금 으슥하다는 생각도 들었고 가끔 우리 집 앞에 큰 공원에서 밤에 마약에 취한 청소년들이나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녔었다. 그리고 집에서 지하철역에 가는 길에는 늘 마주치는 3명의 노숙자들이 있었는데 마치 게임 npc 마냥 늘 그 자리를 지키며 항상 똑같은 패턴으로 다가와 돈을 달라고 구걸했었다. 그곳은 인종차별은 없었으나 참 캣콜링도 심했었는데 지나가는 남자들이 내 옆으로 초밀착 다가와 귀속말로  sexy하다던가 하는 언어적 성희롱을 하루에 한 번씩은 꼭 당해 나중에 안 당하는 날이면 마치 내가 오늘 너무 안 꾸미고 나왔나?라는 착각이 들게 할 정도였었다.




영국에 와서 가장 동네에 대한 솔직한 평을 들어볼 수 있는 것이 우버드라이버라고 생각해서 늘 우버를 탈 때면 나는 드라이버들에게 이 동네는 어떠냐 하고 여러 번 물어봤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들이 모두 한결같이 'getting better(나아지는 중이야.)'라고 이 동네에 대해서 평가를 했었는데 처음 왔었을 때는 아직 이 동네에 대해서 잘 모를 때라 낙천적이었던 나는 '그래도 Better 해진다잖아' 하며 넘겼었다.




 내가 그곳에 있었던 시간은 고작 6개월이라는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사는 내내 동네의 생활수준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됐었던 순간들이 많았었는데 알고 보니 이 지역은 남미 쪽 이민자들이 거주하는 촌이었고 당시 칼부림사건도 꽤 있었던 곳이었었다. 그 근처의 제일 가까운 번화가로는 예전에는 한국대사관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여행을 다닐 때 각종 범죄와 인종차별 범죄로 여행을 주의하라는 Brixton과 몇 년 전 끔찍했던 경찰의 유아 살해 납치사건이 일어났었던 클렙헴 정션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쩐지 아파트 시설이 그렇게 좋은데 가격이 싼 게 납득이 된다. 





 불행 중 다행으로 나의 계약 자체는 1년 짜리였는데, 영국의 법상 break clause라는 제도가 있는데 이걸 해두면 서로 계약서에 미리 합의한 기간 도중에 집이 마음에 안 들 시 위약금 없이 계약을 끝낼 수가 있었다.  나의 경우는 그것을 6개월로 맞춰놓은 상태였어서 다행히 그곳을 6개월 만에 벗어날 수 있었고 그때쯤에 나는 이다음에는 꼭 안전한 부촌으로 이사를 가리라는 결의가 가장 최고조로 간절해져 있었을 때였다. 





사실 거기도 다 사람 사는 동네였었는데 그때는 왜 그렇게 무서웠던 건지 잘 모르겠다. 생존하고 나니(?) 지나간 추억들이 미화되어서 그런진 모르겠지만 거기 근처에 있는 현지인 클럽에 가서 신나게도 놀아보고 많은 영국인 친구들도 사귀었으며 그 근처 펍에서 만난 영국 귀족 남자와 연애도 할 수 있게 해 주었던 그런 동네였었는데. 아, 그리고 아직도 특별히 기억에 남는 건 그 동네의 브라질 음식점이 굉장히 맛있었던 것 같다.




아무튼 그다음 집은  무조건 부촌과 안전만 중점으로 두고 집을 찾았었는데 정작 부촌으로 정평이 난 Chealsea (첼시)는 너무 비싸서 가지 못했고 그 근처인 다른 부촌 동네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결론부터 말하면 살면서 너무 만족스러웠던 곳 중 하나인 Fulham (풀햄)이 바로 그곳이다.  




   풀햄지역 중에서도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웠던 지하철역이름은  Putney Bridge. 그리고 이곳의 첫인상은 이게 워라밸이 잘 맞춰져 있는 멋진 삶인가?라는 생각이 드는 동네였다. 나는 거의 약 1년 6개월 정도를 이곳에 거주했었는데 내가 영국에 가족을 이루며 산다면 꼭 이곳에 살고 싶다고 생각이 드는 동네였다. 지금도 가끔 저곳을 갈 때가 있는데 여전히 조용하고 아름다우며 사람들은 친절하고 최근에는 맛있는 한식집까지 생겼다. 




 당시 마약에 취해서 소리 지르며 낄낄거리는 십 대들 만 보다가 무거운 것을 들고 있으면 상냥하게 도와주는 사람들과 posh 함이 흘러넘치는 말투와 매너 있는 행동들을 보니 당시 영국에 대한 환상이 가득 차있었던 나는 와 이게 진짜 영국이지! 싶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전자가 진짜 영국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당시 내가 살았었던 Putney bridge 우리 집 앞 풍경

 



메인로드에 살았었지만 이곳은 family friendly residencial area ( 가족중심의 주거지 지역) 이여서 참 조용했었다. 한적한 유럽에 그저넉한 강물이 흐르고 사람들이 조정하는 것을 바라볼 수 있는 커다란 공원들이 있었지만 반면에 큰 마트와 고급 식료품점 등등 있을 건 다 있는 그런 곳이었다. 게다가 한인타운이랑도 나름 가까워서 한국 식료품등을 구하기도 쉬웠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장단점이 있었는데 내 사랑스러운 새 집은 다니던 대학교와는 가까워 버스 한 대로 왔다 갔다 하며 편하게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지만 그때 당시의 나는 졸업하자마자 바로 돈을 벌기 위해 지금부터 현장에 나가서 직접 배우는 실무경험들에 좀 더 집중하기 시작했었다. 문제는 거기에 있었다. 

  



 우리 집은 바로 지하철 코 앞이긴 했지만 왠지 모르게 그놈의 지하철은 우리 집 전전 정거장에서 그렇게 허구한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수리를 해대 지하철이 우리 집까지 운행을 안 하는 날이 많았다.  그런 날은 정말 힘들었다. 그때 당시 거의 대부분의 촬영들이 비교적 저렴한 촬영스튜디오들이 밀집되어 있는 런던 동쪽 지역 (Shoreditch, Hackney , Old Street, etc.)에서 이루어졌었는데 우리 집은 서쪽 런던 2 존이라 이것은 거의 동에서 서로 런던을 횡단하는 수준이었다. 행여나 8시에 촬영이 잡힌 날은  거의 30 키로에 육박하는 캐리어를 끌고 엘리베이터도 없는 승강장에서 새벽부터 일어나 출발해야 했었다. 문제는 그게 일주일에 최소 5일은 됐다는 것이다. 집이나 주거 환경은 너무 마음에 들었지만 매일 무거운 촬영짐을 들고 지하철 왕복 세 시간을 오고 갈 때면 이사 생각이 절로 났었다. 지금 생각해도 돌아보면 정말 열정으로 버텨낸 나날들이다.




하지만 사실 이 집에 이사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가 터졌었기 때문에 이 불편함 또한 모두 사라지게 되었다. 완전한 폐쇄 집 앞 마트 가는 것만 허락 됐었던 시기였고 나는 덕분에 조용한 공원 여기저기를 산책하며 아주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계약 종료일에 가까워졌고 나와 비슷한 시기에 집 계약을 끝내고 다른 곳을 알아보았던 언니가 요즘 런던 시내 중심이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나오고 있으니 그쪽도 한번 보라라고 귀띔해 주었다. 그렇게 나의 세 번째 런던 집을 찾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해리포터에도 나온 9와 4/3 승강장이 있는 킹스크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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