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의 적은 싱글?

애엄마는 이래서 안 된다

by 생각여행자

대학강사 3개월 차. 아이를 키우며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나 조차도 돌볼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게 됐다. 육아만 할 때는 샤워는커녕 화장실도 가지 못할 때가 있는데, 거기에 강의 준비에 개이연구, 학회 논문 작성에 발표준비까지 하려 하니 기본적 욕구를 채우는 것은 이미 내려놓은 지 오래다. 오전 2시 이전에 잠자리에 든 적이 없다.


학회 일정이 잡히면 나와 같은 분야에 대해 연구하는 교수님 박사님들이 모여서 각각 연구결과를 발표하는데, 이런 자리를 주최하는 데에는 품이 많이 들고, 몇몇 분들이 도맡아 진행을 할 수밖에 없다.


학회 당일날, 긴장됐던 발표를 마치고 부담감을 채 털어내지도 않았는데 씁쓸한 소리를 들었다. 너도 학회에 봉사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사실 거기까지 라면 마음이 무겁진 않았을 게다. 그런데 그 뒤에 이어진 말에 짓눌렸다.


A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혼자 준비하는데, 너도 도와야지


그 학회는 A라는 한 동료이자 선배가 솔선수범 주최를 돕고 있었다. 마음이야 돕고는 싶으나 나는 현재 내 삶 하나 챙기기도 벅차다. 그 선배는 학회 일을 도우니 그만큼 인정을 받을 것이고, 나는 인정받고자 하는 욕심을 애당초 내려놓을 수밖에 없다. 내게 직책이 없고 그만한 보상을 받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해야 할 의무도 없다. 그렇다고 내게 누가 부탁한 적도 없었는데 이런 이야기를 들을 이유가 무엇일까.


이럴 때 몇몇은 특유의 ‘애엄마는 이래서 안 된다’는 눈빛으로 날 바라본다. 말하진 않지만 이미 아이를 낳으면 학교생활을 하기 어렵다는 말을 한 적이 있기에 난 그 눈빛과 어감에 어느 정도의 경멸이 담겨있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문제는 왠지 모르게 A가 미워진다는 것이다. A가 결혼하지 않았고 아이가 없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말이 목까지 차올랐지만 차마 그 말을 뱉을 수는 없었다. A의 노력을 폄하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렇게 내뱉는 순간 워킹맘과 싱글의 갈등관계가 만들어지고 아이엄마는 집단에 봉사하지 않는 뺀질이가 된다. 난 그런 대결구도나 ‘여적여’같이 되는 것도 참 거북하고 별로다.


나 하나 챙기기 바쁜 상황에선 누구든 봉사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그리고 비교당하지 않을 권리도 있다. 순수하게 노력한 자를 칭찬하기만 하면 안 되는 걸까? 내게 봉사와 희생을 강요한다는 것은, 노력하는 자의 봉사도 당연하다고 보기 때문이겠지.


그렇게 안쓰럽다면 그대가 도우십시오



라고 말하고 싶었다. 워킹맘의 적은 결코 싱글이 아니다. 이들의 대결 구도를 만들어내며 타인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비교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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