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덧약을 선택하다
사실 살면서 생리통과 같은 이렇다 할 호르몬의 영향을 크게 받아본 적 없기에 내 몸은 호르몬을 이겨낼 수 있는 몸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완전한 착각이었다. 알람을 설정해 둔 것 마냥 30일이 되면 생리가 자동적으로 탁 터지는 것만큼 큰 호르몬의 영향은 없었다. 인간은 호르몬의 노예이며 나 또한 그중 하나일 뿐이었다.
임신 후 매일 저녁시간이면 찾아오는 극심한 두통 때문에 도저히 이렇게는 논문을 쓸 수 없을 것 같았다. 지도교수님에게 '임신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고 호기롭게 내뱉었던 말들을 주워 담고 싶지도 않았다. 난 최대한 아무렇지 않아 보이고 싶었다. 조금은 느슨해져도 될 텐데 왜 그리도 고집스럽게 행동했는지, 배려의 말을 왜 배려로 받아들이지 않았는지 지금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아마도 난 임신한 여성을 배려하는 말이 때때로 차별처럼 돌아오는 것을 알기에 그것이 나의 경우가 되지 않기를 바랐던 것 같다.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웠고 맘카페에서 내 입덧증상을 검색해 가며 어떻게 하면 고통을 줄일 수 있는지 샅샅이 찾아보았다. 카페에서 입덧 완화법을 살펴보다가 한 아이 엄마가 말 안 듣는 아이에 대한 걱정과 불만, 그리고 스트레스를 토로하는 고민글을 보았다. 그 글에는 아이에 대한 실망감과 '내가 어떻게 낳았는데', '아이 때문에 포기한 것이 얼마나 많은데'와 같은 말이 가득했다. 나 또한 입덧을 겪으며 '아이 때문에'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는지 불안했다. 입덧으로 고통받는 상황이 "너 때문에 박사학위를 포기했어"라는 말로 이어지지는 않기를 바랐다. 나는 "네 덕에 힘이 나서 박사학위를 마칠 수 있었어"라는 다정한 말을 하고 싶었다.
나는 바로 병원을 찾아가 입덧 약을 선택했다. 의사 선생님은 요즘 입덧 약이 아이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고 하셨고, 일상생활이 너무 어렵다면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느니 약을 먹는 것이 낫다고 했다. 권장하는 두 알을 먹으니 하루 종일 졸음이 쏟아졌다. 그래서 고심한 끝에 약 한 알로 하루를 버텼다. 약효가 5시간 뒤부터 나타나기 때문에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인 오후 10-11시가 되기 5시간 전인 5시쯤 약을 먹었다. 다행히 입덧 약이 내 고통을 경감해 주었고 매일 책상에 앉아 논문을 쓸 수 있었다.
‘네 덕에 할 수 있었어’라고 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