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미국 유학 생활의 시작
나는 초등학교 6학년을 마치며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보통 청춘 드라마에서 보면 주인공이 갑작스럽게 유학을 가게 될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을 때,
"아니야, 난 한국에 있을래! 내 친구, 내 삶의 모든 것이 여기에 있는걸! 난 그곳에서 적응 절대 못 할 거야!"
이렇게 드라마틱한 반대의 의견을 낼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말없이 부모님을 따랐던 아이라 그냥 바로 수긍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사실 나는 속으론 매우 도전적이고 모험적인 아이였던 것이다. (음흉한 아이로 구먼.)
사실 미국에 사는 사촌들도 무척이나 보고 싶었고 낯선 나라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체험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찬란한 무한 긍정함은 그리 오래가지 못하였다.
현실은 사실 매우 냉혹했다. 대다수의 유학생들의 삶은 사실 비슷할 것이다.
친구를 빨리 사귀고 싶었지만 나는 정말 introvert였다. 내성적이라, 먼저 말을 거는 아이가 아니었던 것이다.
거기에 가장 중요한 "소통"이 안됬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마음으로는 알지만 머리로 매번 통역하려다가 말할 타이밍을 놓치는 게 대다수였다. 그러다 보니 무척이나 더 자존감이 낮아지고 더욱더 과묵한 아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나의 사춘기는 암흑시대였던 거 같다.
사실 지금 많은 사람들은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비웃겠지만, 난 아직도 내 영어 실력이 의문이다.
10년이나 살아왔는데도 자신감이 없다. 왜냐면 아무리 잘하려고 해도 현지인만큼 따라가지 못한다고 너무 오랫동안 느껴왔던 탓이다. 그래서 아직도 한국에서 "오~ 10년이면 현지인만큼 영어 하시겠네요! 영어 너무 잘하시겠다~ 저 좀 가르쳐줘요!"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냥 세상 가장 어색한 웃음을 짓고 넘어가게 된다.
그리고 한국에 10년 만에 돌아와서 느끼는 가장 큰 허무함은, 현지에서도 나 자신이 너무 이방인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사실 그 오랜 기간 동안 한 번도 한국에 오지 않았기 때문에 정말 많은 것을 다시 적응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이방인으로 살아온 탓에, 현지에서도 또다시 이방인이 된 이 기분이 씁쓸해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 외롭다. 미국에 있는 친구들이 보고 싶고 과연 내가 한국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귈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다시 여러 이유로 자신감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가장 나에게 묻고 싶은 질문은 왜 굳이 지금 다시 돌아왔냐는 질문일 것이다. 그리고 사실 이 질문이 가장 많이 받아왔던 질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말 여러 가지의 이유였기 때문에 이 부분은 나중에 정리해서 써봐야 할 것 같다.)
다시 미국 유학생활을 얘기하자면, 나는 중학교 7학년 때부터 (한국으론 아마 중1일 것이다.) 다니게 되었는데 이것도 시작부터 만만치가 않았다. 나는 영어를 잘 못하기 때문에 한 학년을 낮추어 중학교 6학년 (한국으론 초등학교 6학년) 다니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렇게 기대하고 있었고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6학년 수업에 들어간 지 한 며칠 만에 담임선생님이 아침부터 나를 갑자기 불러 나오게 되었다. 그러곤 눈 깜짝할 사이에 난 7학년 반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때 생각해보면 난 고작 6학년 아이였지만 정말 온갖 문제를 머릿속으로 그렸었던 것 같다. '내가 여기에 있음 안 되는 거 같은데, 이게 무슨 일이지? 나 안 그래도 언어 때문에 진도도 잘 못 따라갈 거 같은데 더 높은 학년으로 와버렸어. 난 이제 이곳에서 꼴등이 될 거야. 내 미래는 이미 망함...(지금 생각해보면 이건 투머치이지만 그땐 정말 패닉 상태였다.)' 이렇게 내면적 갈등을 하며, 난 눈물이 나기 시작하였고 수업시간 도중에 나도 모르게 갑자기 울음이 터져버렸다. 완전 최악이었다. 첫날의 새로운 반에 들어가서 이런 모습을 반 친구들에게 보여주다니.. 하지만 나중엔 차 차히 긍정적이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왜냐하면 또 다른 한국 아이가 반에 든든히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당시 살고 있던 곳은 한국사람들이 드문 곳이었다.) 그때 6학년 반에서는 나를 도울 수 있는 한국 아이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학교에선 나를 내 나이에 맞게 7학년 반으로 다시 보내기로 했던 것이었다.
7학년 반으로 온 후, 무엇보다 다행이었던 점은 내 자존감이 서서히 높아졌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내가 ESL이라는 반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나처럼 영어가 2번째 언어인 아이들이 모여있던 곳이었다. 모두 영어가 서툴렀고 그 점에 대하여 아무도 서로를 비웃거나 놀리지 않았다. 사실 생각해보면 나 자신, 이방인으로써 영어가 서툴렀던 것은 정말 당연한 일인데 왜 자존감이 그렇게나 낮았었나 싶다. 하지만 갑자기 다가온 낯선 배경과 문화는 당시 내 나이에 조금 많이 버거웠었던 거 같다. 그리고 때로 느껴지는 인종차별이나 부족한 언어 실력으로 무시당하는 상황들이 내 멘틀을 자꾸 나약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다행히도 ESL반의 친구들은 대부분 정말 순수하고 착한 아이들이었던 것 같다. 지금까지도 아주 편한 마음으로 종종 연락할 수 있는 고마운 친구들이다. 그들 앞에선 내 영어실력이 평가되지 않았고, 누군가 버벅거려도 오히려 서로를 이해하려고 더더욱 귀를 기울이려고 노력해 주었던 거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항상 경려 해주는 천사 담임선생님이 가장 큰 힘이 되었던 거 같다. 정말 친구가 많이 없더라도 든든한 선생님 한분이 얼마나 큰 힘과 영향을 줄 수 있는지 느끼게 된 계기였던 거 같다. 한 명의 한국 아이도 물론 여러 힘이 되었지만 사실 나의 나약한 멘틀을 꽉 잡아 주신분은 그분이었다. 매일 아낌없이 칭찬해주시던 7학년 때의 담임선생님이 아직도 아른거린다. 아마 그분도 항상 위축되어 보였던 나를 응원해주려고 그러셨던 거 같다. (그래서 사실 한국에 돌아오기 전에도 나는 그 선생님을 보러 찾아갔었다. 그때 정말 감동적이고 놀라웠던 건 그 선생님이 나를 보자마자 부르신 내 한국 이름이었다. 내 이름은 사실 영어로 부르기에 좀 어려운 한국 이름이었다. 그런데 그 어려운 걸 해내시고 기억해주신 너무 고마운 분이었다.) 정말 아직까지도 나에겐 미국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 중 한 분이신 거 같다.
더 세세한 여러 에피소드의 미국 중학교 유학 생활은 다음 편에 이여가도록 하겠다.
(여러 나라의 친구들과 다양한 성격의 친구들.. 그리고 그들과 나의 갈등이나 소소한 에피소드들을 써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