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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엔나 옥탑방 Feb 10. 2023

어쩌다 빈소년_3

/ 여섯 시 반의 통곡

보지 않아도 상상은 어렵지 않았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하며 외계어와 동급인 독일어 폭격을 온몸으로 맞고 있을 아들을 생각하니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저녁에 연락이  때까지 어떻게 시간이 갔는지도 몰랐다. 함부로 전화를 해볼 수도 없는 터였다. 빈소년 기숙사는 아이들의 핸드폰을 아침에 걷었다가 오후 6-8 사이에 다시 나눠주고 8:30까지 잠깐 부모와 연락한 다음 9시가 되면 다시 핸드폰을 반납하고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철저한 통제 아래 놓이기 때문이다.


슈테판 성당,  페터 성당... 눈에 보이는 성당마다 들어가 엎드렸다. 나는 불교였지만,  나라의 신은 하느님이니 그분한테라도 빌어야 했다. 기왕   됐으면 했다가도 아이가 상처받을 거면 차라리 관두는  낫지 않을까  멋대로 이리저리 기우는 마음의 저울질 때문에 기도도 기도가 아니었다.


아들은 우선 하이든 코어(Chor: 합창단)에서 최종 테스트를 받기로 했다. 이렇게 테스트 오는 소년들을 일명 슈눕페른 킨트(Schnuppern Kind: 맛보러 온 아이)라고 부르는데, 아이가 오는 시기에 따라 현재 빈에 남아 있는 코어 중에 일단 집어넣고 테스트를 한 다음, 합격 여부가 결정되면 합창단과 개인의 절충 하에 정식 입단이 결정된다.


빈소년은 합창단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위대한 작곡가들의 이름을 딴 4개의 개별 합창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이든> <브룩크너> <슈베르트> <모차르트>로 나누고 100명의 소년들을 각각 25명 정원으로 배치한다. 각 지휘자의 성향에 따라, 또 고유한 전통에 따라 반 분위기는 사뭇 다르고 거기 속한 아이들도 그렇게 닮아간다.

아이의 목소리가 제일 시급하게 필요한 합창단, 해외 투어를 갈 때 금방 적응할 수 있는지 여부, 그리고 내셔널리티가 우선적으로 체크된다. 예를 들어 같은 한국 국적이면 2명, 혹 곧 졸업할 4학년이 있는 반은 3명까지만 같은 합창단에 배속될 수 있다. Mr. Heider의 설명에 의하면, 너무 많아도 고국 공연을 갔을 때 관객들이 ‘우리나라 애가 저렇게 많다니! 빈소년 들어가는 게 별 거 아닌가 보네’ 하고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그래서 한 반에 보통 2명 정도, 같은 국적의 멤버라도 최대한 서로 학년을 다르게 조절한다. 아이 하나하나가 프로페셔널한 가수이기 때문에 최적의 조합을 위해 학교도 치열하게 고심한다는 증거다.


아들의 전화가  때까지,  시간은 길고 길고 길었다. 벌써 축축하게 전해오는 처참한 전쟁의 냄새.

역시나 무슨 말하는지  알아들어서  웃는데  웃는 바보가 되었고, 수업 시간엔 뭐라는지 하나도 모르겠고, 어디로 오라는데 어리바리 길을 잃어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혼쭐이 났고, 겨우 아는 영어  마디조차 머리가 하얘져서  나오지 않았고

도중에 끊기가 미안할 만큼 힘들고 아팠던 하루를 쏟아내는  살짜리의 빈소년 1 차는 그야말로 상처투성이였다. 덩달아 나도 아프고 쓰렸다.


다만 유일하게 코어 프로베(Chor Probe: 합창 연습) 시간에는 그나마 견딜 만했단다. 다행히 악보는 읽을 줄 알고 합창단 활동도 했으니 악보 대로 소리 내면 노래는 가능하니까. 독일어 가사는 잘 모르지만 두어 번 들으니 대충 흉내는 낼 수 있었다고, 그 시간이 매일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미사곡인 것 같은데 지루해서 계속 시간만 보긴 했지만 어쨌든 지휘자 선생님한테 혼나지는 않았다고…


당장이라도 돌아오고 싶겠지. 목구멍에 꽉 막힌 말을 차마 꺼내지 못하고 아들은 전화를 끊었다.

두 밤만 자면 집에 오니까 일단은 견뎌 보자! 니가 싫으면 그만둬도 되는데, 그래도 우리 비행기 타고 왔으니 일주일 정도는 해보자! 붙은 뒤에 안 하는 거랑 해보지도 않고 안 하는 거랑은 다르니까… 아들한테 하는 말인지 스스로에게 하는 말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너덜너덜했다.


학교 문고리에 꼭뒤를 묶어 놓고 다니는 심정이었다. 그리고 이틀 뒤 수요일 오후 6시, 아들의 기숙사로 올라갔다. 원칙적으로 아이들이 집에 가는 날만 학부모 출입이 가능하다. 이불, 옷가지 등을 정리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아들의 침대는… 일부러 이랬다면 너무 고약하다 싶을 만큼 난장판이었다.

잠깐 테스트를 위해 일주일 머무는 것이라 대충 적당한 방에 배정을 한 건 십분 이해하겠다. 그래도 개인 침구를 갖고 오라 해서 새로 꾸민 이불인데 아무렇게나 벗어던진 옷가지, 흙 묻은 운동화짝, 거꾸로 말린 양말짝, 심지어 팝콘 부스러기까지 지저분하게 널브러져 있었다. 아들의 물건이 결코 아니었고, 이건 누가 봐도 괴롭힘의 흔적이었다.

아들한테 물었더니 원래 자기 침대 자리가 아이들이 물건을 걸쳐 놓는 소파 자리여서 평소 하던 대로 던져 놓은 거라 한다. 아무리 애들이지만 누군가 자는 곳이고 이불이 깔려 있는 곳을 이렇게 함부로 할 수 있나 싶어 에어치어(Erzieher: 남자 보모)에게 조심스럽게 얘기를 해봤다. 애들이 누가 잔다고 아직 인식을 못해서 그런 거라고 실드를 친다. 눈이 있잖아? 같은 방 쓰는 애한테 여긴 막 그래? 2층 침대에서 아래로 팝콘 봉지를 일부러 털었다는 얘기를 했더니 그제야 애들한테 주의를 주겠다 한다. 꼰질렀다고 괜히 또 괴롭히면 어쩌나 이건 잠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임시 숙소인 <비엔나 소미네 민박>에 돌아와서야 긴장이 풀려 긴 한숨을 내쉬는 아들.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토닥토닥해 줄 수밖에 없었다. 오늘 하룻밤은 편하게 잘 수 있을까? 집에 와서 충전하고 가면 이틀 후면 또 집에 오니까 괜.. 찮겠지??


다음 날 아침 6시 반, 아들이 엉엉 목놓아 우는 소리가 문너머까지 들려왔다. 치밀어 오르는 답답함에 가슴을 치며 눈물을 떨구는데 도저히 달랠 재간이 없었다. 형아가 우니까 4살짜리 동생도 같이 운다. 천장을 보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나까지 울면 진짜 큰일이니까…                                          _2017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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