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어루만지는 꼭 잡은 손
추석 아침, 동네를 한 바퀴 산책하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골목 어귀에서 낯선 노년의 여인이 손을 내밀며 다가왔다. 손가방을 든 차림은 마치 집에서 막 나온 듯 편안했고, 눈빛은 어딘가 멍하니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기까지 걸어가려면 어느 길로 가야 하나요?"
그녀의 질문은 조금 엉뚱했다. 너무 먼 거리였기에 “걸어서 가신다는 말씀이세요?” 하고 되물었더니, “자주 걸어 다닌다”고 했다.
지금 어디서 오는 길이냐고 물으니 “저기서 자고 왔다”고 했다. 대화는 자꾸 어긋났고, 나는 곧 그녀가 치매를 앓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혹시 가족을 찾을 단서가 있을까 싶어 이것저것 물어보았지만, 대답은 흐릿한 기억의 조각뿐이었다. 조심스레 가방 안을 여쭤보니 검은 봉지 안에는 낡은 옷가지만 들어 있었다.
나는 가까운 정자로 모셔 대화를 이어갔다. 단서는 끝내 나오지 않았다. 경찰을 부를까 고민하던 찰나, 그녀의 손목에서 작은 시계 모양의 기기를 발견했다. 심박수와 걸음 수를 보여주는 화면에는 다행히 보호자의 전화번호가 있었다. 전화를 걸자 아들이 받았다.
“어머니가 치매를 앓고 계세요.”
그의 목소리는 놀라움도, 안도도 아니었다. 마치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닌 듯 담담했다.
잠시 후, 약속한 장소에서 아들을 기다리며 나는 그 여인의 손을 꼭 잡아드렸다.
그 손에는 세월의 무게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굴곡진 주름마다 삶이 있었다. 고단한 희생과 헌신, 기쁨과 슬픔, 웃음과 눈물이 모두 얽혀 있었다. 나는 그 손을 통해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어떤 것을 느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5분쯤 지나 아들이 걸어왔다. 인사는 짧았고, 표정은 피로에 묻혀 있었다. 순간 화가 났다. 그러나 이내 이해가 됐다. 아마 오늘만의 일이 아닐 것이다. 수없이 반복되는 같은 하루, 무거운 돌봄의 시간 속에서 그는 이미 지쳐 있었을지 모른다.
그래도 그는 어머니를 시설에 맡기지 않고 곁에서 함께 살고 있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그 또한 고단한 삶을 감당하고 있는 또 한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음이 오래도록 먹먹했다.
그녀의 손을 잡고 있던 순간이 자꾸 떠올랐다. 그건 단순한 위로나 연민이 아니었다. 한 인간이 또 한 인간의 삶을 어루만지는 시간, 말보다 깊은 존중의 표현이었다.
작가의 말
어렸을 적 누구나 한 번쯤은 길을 잃고 헤매던 우리를 부모님이 애타게 찾아다니시던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다시 만났을 때, 그 따뜻한 손을 꼭 잡고 집으로 돌아오던 순간도 말이죠.
이제는 우리가 그 손을 꼭 잡아드려야 할 때가 아닐까요.
삶의 무게를 묵묵히 견뎌내신 부모님의 손을 어루만지는 일,
그것이야말로 가장 깊고 인간다운 사랑의 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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