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수기4]아버지의 구순을 맞아-나이 아흔의 사내

끝내 웃으며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

by 피안으로

아흔 해의 감사, 웃음으로 남다


케이크의 불빛처럼, 삶의 목적은 음으로 빛나야 한다


아버지가 아흔 살을 맞으셨다.

슬하에 1남 2녀를 두시고, 나는 장남으로 살아왔다.


아버지의 삶은 곧 이 땅의 민주화와 참 교육의 역사였다. 그 길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두 차례의 해직, 경제적 어려움, 위태로운 가정사. 우리 집은 늘 가난했고, 쫓기듯 살아야 했다. 그러나 그 모든 세월 속에서 아버지는 한결같이 버팀목이었고, 자랑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짧고 굵게 사시는 것보다 오래도록 우리 곁에 계시길 바랐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성실보다는 도전을 택하며 살아왔다. 성공과 가난을 벗어나려 했으나 실패가 더 많았고, 경제적 자유나 사회적 지위보다는 여전히 가난과 실패를 품고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아버지의 삶은 언제나 나를 지탱하는 힘이 되었다.


구순을 맞은 날, 나는 작은 케이크를 준비해 초를 켜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목이 메어 노래를 겨우 부를 수 있었지만, 그것마저도 감사한 순간이었다. 이어 아버지께 내가 좋아하는 노래 나훈아의 <사내>를 들려드렸다.

“긴가민가 하면서, 조마조마하면서, 설마설마하면서 부대끼며 살아온 이 세상을 믿었다, 나는 나를 믿었다.”


이 대목은 아버지의 삶을 그대로 닮아 있었다. 그 곡을 들으며 나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또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최희준의 <하숙생>을 함께 들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여쭈었다.

“아버지, 이 세상에서 90년의 하숙생활은 어떠셨나요? 그 하숙집의 음식은 어떠셨나요?”

아버지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셨다.

“너무 좋았다. 좋은 음식들이 상에 많이 올라왔고, 원 없이 맛있게 먹었다.”


그 대답 속에는 삶을 대하는 아버지의 태도가 담겨 있었다. 고단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감사로, 웃음으로 삶을 마주하신 것이다. 나는 그 순간, 아버지가 걸어온 길을 다시금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께 늘 죄송하다. 우리 삼 남매는 장가와 시집을 가지 못해 손자, 손녀를 안겨드리지 못했다. 그로 인해 외로움을 드린 죄스러움이 늘 가슴에 남아 있다. 그것은 평생 지워지지 않을 불효이자 슬픔이다.


아흔 해의 세월을 살아오신 아버지. 그 길은 민주주의의 길이었고, 참교육의 길이었으며, 한 가정을 끝내 지켜낸 길이었다. 이제 나는 그 발자취 앞에 서서, 한 아들로서, 또 한 인간으로서 묻는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나는 어떤 흔적을 남겨야 하는가.


아버지의 구순은 단순한 생신이 아니다. 한 세대가 남긴 궤적이고, 후대에게 던지는 물음표다.


나는 오늘, 작은 케이크와 노래로밖에 축하하지 못했지만, 세상에 이렇게 아버지의 구순을 기록하고 싶다.

아버지의 삶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은 단 하나, 끝내 웃으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버지

많이 미안합니다

많이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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