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기록2]그러려니, 여여(如如)하게

걷고, 숨 쉬고,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오는 어느 날의 기록

by 피안으로

그러려니, 여여하게


걷고, 숨 쉬고,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오는 어느 날의 기록


멍한 정신으로 눈을 떴다.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라 한참을 서성이다가, 그냥 걷기로 했다.


무작정 길을 나섰다.

발길은 자연스럽게 광주천으로 향했다.

익숙한 물빛과 바람의 냄새가 나를 맞이했다.

정확한 이름도 모르는 들풀들이 바람결에 흔들리고,

해오라기인지 황새인지 모를 다리 긴 새 한 마리가

흐름을 읽듯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광주천은

누가 뭐라 하든,

누가 머물다 가든,

아무 말 없이 묵묵히 흘러간다.

그 흐름 아래,

무더위에 지친 나무 그늘이 작은 평화를 내어주고,

그 아래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조용히 숨 쉬고 있었다.


기온 33도.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모든 것을 꿰뚫고 있는 듯한 태양.

그 앞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졌다.

무기력했지만, 마음만은 똑바로 마주하고 싶었다.


문득, 오래된 우화 한 편이 떠올랐다.

‘누가 나그네의 외투를 벗길 수 있는가.’

바람은 실패했지만, 태양은 스스로 벗게 했다.


그것이 진짜 힘일 것이다.


나는 덮어쓰던 생각을 벗어던지듯, 걷고 또 걸었다.

걷는 순간이 명상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호흡이 차분히 단전으로 내려앉았고,

그 숨결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그때, ‘나’라는 자의식 — 아상(我相) — 이 흐릿해졌다.

무아(無我)의 순간.

풀도, 새도, 나무도…

모두가 나였고, 둘은 하나였다.

그래서 모든 것이 조심스럽고, 더없이 소중해졌다.


그러다 자전거의 경적 소리에

무아의 세계에서 불쑥 튕겨 나왔다.

하지만 몸은 이미 더위에 소독된 듯 깨끗해졌고,

영혼도 땀과 함께 조금은 정화된 듯했다.


새 옷을 입듯 새 마음을 준비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몸을 단련하고, 숨을 고르고, 다시 길을 나서야겠다고.


우리는 매일 선택의 길 위에 선다.

옳은 길에도 옳음과 그름이 함께 있고,

모든 일에는 긍정과 부정이 공존한다.

유(有)와 무(無)는 서로를 살린다.

삶에 정답이 없다면,

지금 이 순간, 피하지 않고 살아내는 것이

최선일지 모른다.


높이 나는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면

인간은 모래알처럼 작다.

삶의 무게는 무겁지만,

그 무게를 너무 무겁게만 여길 필요는 없다고

문득 생각했다.


그래서, 그러려니.

그저 그렇게, 여여하게(如如) 살아가기로 한다.


요즘은 김훈의 『칼의 노래』를 읽고 있다.

영웅이 아닌, 고뇌하는 인간 이순신을 만난다.

수많은 죽음 앞에서 흔들리는 그의 모습이

왠지 내 삶과 닮아 있었다.


삶의 시련을 크고 작음으로 재단할 수 있을까.

결국 우리는,

자기 몫의 무게를 짊어지고 걸어갈 뿐이다.


길 끝에서 문득 떠오른다.

“아모르파티. 메멘토 모리. 카르페 디엠.”

사랑하라, 너의 운명을.

죽음을 기억하라.

지금을 살아라.

삶의 무게를 견디며,

현실에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삶일 것이다.


삶과 돌봄 사이에서 피어난 문장들.


자연과 고요 속에서,

글로 피안(彼岸)에 닿고자 한다.

고요함 속에서 마음 가는 대로 글을 쓰며,

흔들리는 이들에게 잠시 쉴 자리를 건네는 사람 — 피안으로

걷고, 숨 쉬고,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오는 어느 날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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