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수기3] 아버지와 함께 걷는 시간

추억 만들기

by 피안으로

아버지는 입원 2주째에 접어들었다.

약물로는 혈당 조절이 쉽지 않았고, 원인 모를 잦은 설사와 다리의 부종으로 고통스러워하셨다.

의료진은 약에 설사를 유발하는 성분이 있을 수 있다며, 약을 바꿔볼 요량으로 입원을 권했다.


나는 혹시 모를 상황에 가슴이 철렁했지만,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병원 침대 곁을 지켰다.

며칠이 지나자 다행히 상황은 조금씩 나아졌다.

빵빵하게 부어올랐던 다리의 부기는 거짓말처럼 가라앉았고, 설사도 멈췄다.

한결 편안해진 아버지의 표정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좀처럼 내려가지 않는 혈당 수치는 여전히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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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부족 때문인가?’

나는 조심스럽게 아버지를 일으켜 세웠다.

병원 복도를 한 걸음씩 떼는 아버지의 발걸음은 힘겨워 보였다.

걷다가 쉬고, 다시 걷다가 쉬기를 반복하는 그 순간,

문득 아버지가 걸어온 세월이 머릿속을 스쳤다.


어느덧 구십의 노인이 된 아버지.

주변의 친구분들은 대부분 세상을 떠나셨고,

형제들도 이제는 막내 고모 한 분만 남으셨는데

그분마저 병상에 누워 계신다는 소식에 코끝이 시큰해졌다.


예외 없이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세월의 시계는,

아버지에게도 무자비했다.


“아버지, 제가 벌써 예순을 바라보고 있네요.”

내 말에 아버지는 흠칫 놀라며 내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셨다.

주름 가득한 눈빛 속에

흐르는 세월의 야속함이 스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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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겨워하는 발걸음에

나는 리듬을 선물하고 싶었다.


조심스럽게 아버지의 귀에 이어폰을 끼워드리고,

평소 좋아하시던 옛 노래를 유튜브로 들려드렸다.

나지막이 흘러나오는 선율에 아버지의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굳게 다물렸던 입술 사이로 콧노래가 흘러나왔고,

이내 힘 있는 목소리로 노래를 따라 부르셨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졌다.

내 마음마저 가벼워지고,

아버지를 지켜보는 내 발걸음에도 신나는 리듬이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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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가진 것 없이 살아오신 분.

어쩌면 저 또한 그러한 삶을 살아왔는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특별한 것을 많이 가졌다.


바로, 아버지와 함께하는 시간.

그 시간 속에 피어나는 추억들이다.


오늘도 우리는 병원 복도를 걸으며 새로운 추억을 쌓았다.

이 순간이 먼 훗날 아버지를 추억할 때,

가장 아름다운 보석처럼 빛날 것을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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