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은 단지 육체로 하는게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겁니다
“돌봄은 단지 육체가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일입니다.”
오늘도
나는 부모님을 모시고 병원에 간다.
익숙한 일이지만,
오늘따라 마음이 유난히 무겁다.
아버지는
두 번의 뇌출혈과 뇌경색, 대장암 수술,
고관절 골절, 허리 협착증을 겪으며
생과 병의 경계를 수없이 넘나드셨다.
그 시간 동안 병원은
몸을 치료하는 공간이기도 했지만,
삶의 인내심과 가족의 마음을 시험하는
깊은 물웅덩이 같았다.
병실의 침묵은 자주 내 마음을 꿰뚫었고,
새벽의 차가운 복도는
내가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가
얼마나 조용히 깊어지는지를 알려주었다.
진료를 마친 의사는
내일 순환기내과 외래에 꼭 들르라고 했고,
나는 다시 병원 갈 준비를 한다.
그런데 아버지는 고개를 젓는다.
‘병원’이라는 단어에
무의식적인 거부감과 지침이 묻어난다.
나 역시 오늘은 몸이 좋지 않다.
무기력한 몸과 마음 사이로
짜증과 분노가 뒤섞여 올라온다.
그때 어머니가 말한다.
“요양보호사라면서 왜 그래.”
그 말은 순간,
마음 깊은 곳을 찌른다.
나는 가족요양을 하고 있다.
국가에서 인정하는 제도 아래
하루 1시간, 한 달 20일만 보상받는 돌봄이다.
그 외의 시간들,
그 긴 하루의 대부분은
제도 밖에서 흘러간다.
그 시간 안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순간들이 있다.
새벽녘의 갑작스러운 호출,
예고 없는 배변 실수,
끊임없는 불안과 긴장,
그리고 감정을 꾹꾹 삼켜야 하는 순간들.
이 모든 건
그 누구의 눈에도 잘 보이지 않는 노동이자, 삶이다.
단지 육체적인 수발만이 아니라,
감정까지 견디고 책임지는 정신적 노동이다.
나는 질문을 던진다.
왜 가족요양은 하루 1시간뿐입니까.
왜 자식은 인정 범위가 좁습니까.
관계 부처의 대답은 이랬다.
“자식은 부양의무가 있으니까요.”
그 말은 너무 단단했고,
나는 너무 지쳐 있었다.
물론,
누군가는
안부로 마음을 전하고 짐을 덜기도 한다.
그 안에도
정성과 애틋함이 있음을 나는 안다.
하지만 매일 곁에서
숨소리를 듣고 손을 잡고,
감정까지 함께 견뎌야 하는 삶은
또 다른 차원의 ‘부양’이라는 것을
나는 오늘 새삼 느낀다.
나는 이 일을
직업처럼 하려 한 적이 없다.
그저 자식으로서,
운명처럼 받아들이며
부모님 곁에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때때로 서운하고,
화가 나고, 슬프고, 고단하다.
그 감정을
숨기고 싶지도,
미화하고 싶지도 않다.
그건 나약함이 아니라,
사랑과 책임이 만들어낸
진짜 마음이기 때문이다.
진짜 돌봄은
감정을 견디는 일이다.
속으로 소리 지르고 싶은 말을 삼키고,
병원에 가기 싫다는 아버지의 손을
다시 잡는 일이다.
그것이 나의 하루이고,
누구도 보지 못하는 나의 삶이다.
나는 오늘도 병원에 간다.
그 길 위에서 다시 묻는다.
나는 왜 이 길을 걷고 있는가.
이렇게 사는 나를,
과연 누가 기억해 줄까.
이 글이
부모를 돌보는 누군가의 하루와 조용히 이어져
잠시나마 따뜻한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고요함 속에서
내 마음대로 글을 쓰는 사람, '피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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