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3년간 고등학교에 다닌 그 시간 동안, 나는 언제나처럼 방황했다. 자퇴한 그 해에는 나름 교육방송으로 공부도 하고, 방학을 맞아 집에 내려온 큰언니의 도움으로 고등학교 문과생 1학년이 배울 수학 범위를 선행 학습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음 해, 나는 복학 후 또 한 번의 자퇴를 했다. 나는 사람들 틈에 섞여있는 나를 견디지 못했다.
'역시 난 저 아이들과 같지 않아. 저 속에 섞일 수 없어.'
또 한 번 뼈저리게 느꼈다.
하루하루가 미지근한 늦여름 바람 같았다. 겨울철 눈보라도 아니고 벚꽃 잎 날리는 봄바람도 아닌, 미적지근하고 싱거운. 대학 입시 준비는 내 관심 밖이었고, 교과서나 문제집에 나와 있는 질문들 보다는 내 안에서 들리는 질문에 귀 기울이는 시간들이었다. 이를 테면 '우주의 시작 전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왜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라 무언가가 있을까?' 같은 심오한 과학적 질문 같은 것들. 그때부터였다. 과학과 철학 분야의 책을 한 권씩 찾아보게 된 것은. 또 하나 내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바로 '시'였다. 나는 시가 항상 어려웠다. 잘 쓴 시란, 은유법과 비유법으로 멋들어지게 꾸민 시라고 생각해 왔던 나였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글짓기부에 속해 글짓기 대회에 나갔지만, 내가 쓴 글은 언제나 산문이었다. 운문은 자신이 없었고 글짓기부 선생님도 그런 나를 알고 계신 듯했다. 자연히 시를 읽는 것도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느 작가의 말처럼, '시가 내게로 왔다'. 국어 인터넷 강의를 듣고 있을 때였다. 강의는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문제집을 생기 없는 눈으로 훑어보는데, 시 한 편이 눈에 들어왔다. 읽은 뒤 멍하니 시를 곱씹게 된, 그 시는 천상병 시인의 '귀천'이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그 뒤로 시를 분석하고 공부하는 것은 여전히 재미가 없었지만, 마음을 쿵 울리는 시들은 한 편, 두 편 늘어났다. 그렇게 알게 된 시인들의 시집을 모아 읽는 것은 쏠쏠한 재미가 있었다. 천상병, 백석, 김수영 같은 시인들의 책이 집 책꽂이에 꽂히기 시작했고 잠 못 이루던 까만 밤에 그들의 시는 나를 위로했다.
내 또래의 아이들이 고3이 되던 해, 나는 검정고시 고등학교 졸업 자격시험에 합격했다. 공부를 하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과목은 과학이었다. 과학은 어려운 용어나 낯선 공식들을 외워야 하는 과목인 줄만 알았던 내게, 과학은 진리에 접근하는 학문이라는 걸 깨닫게 된 것이 중학교 3학년 때였다. 그때 물리 부분을 배우면서 자석에 이끌리듯, 뭔가에 홀린 듯 빠져버렸다. 당시 큰언니는 고 3, 둘째 언니는 고 2였는데, 우리는 큰 방에서 싱글 침대 세 개를 놓고 잤고 그보다 작은 방에는 책상 세 개를 놓고 각자 자리에 앉아 공부를 했다. 그런데 매일 과학 참고서만 꺼냈다가 집어넣는 나를 보곤 둘째 언니가 나무라듯 말했다.
"넌 맨날 과학만 하니?"
나는 순간 당황해서 당당히 대답도 못하고 우물쭈물했다. 그 후로 나는 일부러 흥미도 없는 다른 과목 책들을 꺼내서 눈싸움하듯 뚫어져라 봤다. 머릿속에 들어오는 건 없었다. 남 눈치 보는 건 아주 어렸을 적부터 형성된 습관이자 성격인지라 그 후 한동안 과학 책을 본체만체해 버렸다. 그리고 나는 두 번의 자퇴를 했고 언니들은 대학생활을 위해 서울에서 지냈기에, 내가 정말 보고 싶은 책을 눈치 안 보고(엄마 아빠는 일하시느라 바빴다) 볼 수 있었다. 당장 미래에 대한 계획도 대책도 없으면서 어떻게 마음 편히 입시와는 상관없는 책을 읽었을까. 어떤 이는 나를 한심하게 볼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불안하고 위태롭게 내일도 오늘도 모르며 세상의 테두리를 빙빙 돌아 살아온 게 나다. 지금도 나는 그때의 내가 왜 수험서를 파고들지 않았는지, 가 아니라 왜 더 깊이, 헤어 나오지 못할 정도로 내 관심 분야에 빠져들지 못했었는지를 후회한다. 또 어떤 이는 내 또래 남들은 맹렬하게 목표를 좇아 이른 새벽부터 깊은 밤까지 치열하게 사는데, 한가롭게 시나 읽고 수험서도 아닌 책 나부랭이에 빠져 있었느냐고 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지금 마흔을 앞둔 내 모습이 이렇게 초라한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그 당시 나는 한없이 자유로웠다고 말하고 싶다. 봄이면 미풍에 흩날리는 민들레 홀씨처럼, 아주 유유히 자유를 향유하고 있었다고.
난 지금도, 늘, 민들레 홀씨처럼 자유롭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