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은 유혹은 쉽사리 찾아왔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사실 그전부터 나는 세상에서 서서히 고립되고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학교에서 따돌림을 경험했고, 중학생이 된 후에는 한 해가 거듭 될수록 친한 친구가 줄어들었다. 3학년 2학기에는 도시락을 같이 먹을 친구도 없어서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그대로 집에 되가져 오기도 했다. 친구라고 부를만한 사람이 없었던 거였다. 나는 혼자인 게 점점 익숙해졌고 굳이 친구를 사귀려 노력하지도 않았다.
언제부턴가 사람들 속에서 어색해하고,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남들을 의식하는 나였다. 그리고 '어차피 쟤는 나를 싫어할 거야', '난 또 혼자가 되겠지',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원만한 교우관계를 형성하기 어려웠다. 그러면서 또 혼자가 되는 걸 견디기 싫었다. 당연히 수업시간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그 시절 내 관심사는 공부도 이성 문제도 교우관계도 아니었다. 그냥 나 자신의 존재 자체를 사람들에게 거부당하는 기분이었다. 내겐 생존이 걸린 문제였던 것이다. 이렇게 미움만 받으며 살바에야 그만 살자, 죽고 싶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성공적으로 죽을 수 있을까. 버튼 하나만 누르면 고통도 괴로움도 없이 생이 마감된다면 좋을 텐데. 여러 가지 실현 가능성이 있는 방법들을 생각해 봤지만, 하나같이 자신이 없었다. 그때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건, '굶어 죽기'였다. 그렇게 무섭지도, 아프지도 않을 것 같았다. 더불어 굶어 죽기에 좋은 장소도 생각해 두었다. 바로 우리 집에서 걸어서 1분 거리에 있는 사용하지 않는 통신사 기지국이었다. 3월이라 아직 제법 춥긴 하겠지만, 집과 가까운 데다 오가는 사람도 거의 없어, 낯선 사람에게 해코지당할 가능성이 낮으며 출입문을 안에서 잠글 수도 있으니! 굶어 죽기까지 안전하게 있을 수 있고 혹시 모를 추악한 꼴은 안 당하겠지.
그렇게 마음먹은 토요일 오전, 학교 수업이 시작되기 전 교실에서 빠져나왔다. 집으로 가는 버스 터미널 근처에 도착한 내 배에선 꼬르륵 소리가 났다. 그제야 아침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어떻게 죽어야 할지 고민을 했던 나 자신이 떠올랐다. 굶어 죽겠다던 포부는 어디 가고 나는 근처 시장에서 맛있어 보이는 것들을 하나둘 사기 시작했다.
'이것만 먹고 나면 어차피 먹을 게 없어서 굶어 죽을 수 있을 거야.'
주머니에 챙겨 온 용돈으로 닭강정, 김밥 등을 사고 냉기 가득한 기지국에 도착했다. 그렇게 내 생애 첫 가출이 시작되었다. 차가운 바닥에 누워 잠도 청하고, 잠에서 깨면 사 온 음식들을 먹고, 이제 죽으면 다시는 볼 수 없을 새로 받은 지 얼마안 된 새 교과서도 읽어보는 사이 일요일이 되었다. 밖에는 나를 찾으러 다니는지 우리 집 차가 오가는 소리가 들렸다. 후에 알게 되었지만, 그때 엄마와 둘째 언니는 나를 찾으러 피시방 같은 곳을 뒤지고 다녔다고 한다(큰언니는 대학생활로 타지에 있었다). 그렇게 사흘째 되던 날, 나의 자살 시도(?)는 싱겁게 끝나버렸다. 아빠가 내가 있는 곳을 찾아낸 것이었다. 어떻게 짐작해 냈는지는 모르겠지만. 햇살 맑은 오후에 누군가가 기지국 건물을 열려고 시도했고 잠가놓은 문고리는 달그락 거렸다. 그리곤 이내 내 이름을 부르는 아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나야! 공나야!!!"
난 피할 곳이 없다는 걸 느끼고 어쩔 수 없이 문을 열었다. 아빠는 나를 혼내거나 내게 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 더 이상 학교에 다닐 용기도 의지도 없어진 내가 자퇴를 선언했기 때문이었다.
엄마 아빠는 처음엔 완강히 반대했다. 이런 과정에서 난생처음 정신과 전문의의 진료를 받기도 했다. 50대로 보이는 남자 의사는 단 몇 마디로 내가 정신적으로 아무 이상이 없다고 판단했다.
"식사는 잘하나요?"
"네."
"잠은 잘 자고요?"
"네."
의사 선생님은 피식, 웃음을 짓는가 싶더니 내 옆에 서있는 엄마에게 말했다.
"학교에 가도 됩니다. 아무 문제가 없어요."
아무래도 학교에 다니지 않겠다는 내가 치기 어린 반항을 하는 것으로 보였나 보다. 엄마는 지금도 가끔, 그때 조현병의 조짐을 발견했더라면, 하고 그 의사를 원망할 때가 있다. 조현병이 그때부터 발현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도 그 선생님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살기 위해 자퇴를 선택한 건데, 그런 나의 간절함을, 사춘기를 맞은 반항아의 고집쯤으로 치부하는 게 싫었던 거다.
하지만 결국, 엄마 아빠도 내 뜻을 꺾지 못하고 자퇴를 허락했다. 대신 일 년 후에 복학을 약속하면서. 나는 복학한 후 학교에 잘 적응할지 걱정이 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일 년 후엔 내가 조금은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 수 있게 될까, 그렇다면 한 살 어린 동생들이랑 같이 공부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절하게 죽고 싶었다. 또한 간절하게 살고 싶었다. 자퇴를 하고 나니, 이젠 좀 살겠다, 숨이 트이는 느낌이었다. 당장 학교에 가지 않는다는 생각만으로 시끄러웠던 마음이 잠잠하게 가라앉았다. 그렇다고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희망이나 계획이 생긴 건 아니었다. 난 그저 지금 행복하고 싶었다. 일 년 후도, 한 달 후도, 내일도 아닌 바로 지금. 지금 이 순간의 마음의 평안을 포기할 수 없었다. 내 마음이 흐르는 방향대로 길을 찾아 나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