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관, 임신, 그리고 출산까지의 기록 (30)
@임신 40주 차 ~ 출산
임신 39주 차 글을 올린 것이 약 한 달 전. 날짜를 보니 심지어 유도분만을 시도한 첫 번째 날이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태어난 지 약 40일이 된 아기와 함께 하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재작년 겨울에 난임병원 방문을 시작해서 임신을 알게 된 작년 봄, 그리고 봄 여름 가을 겨울까지 4계절을 모두 보낸 임신기간을 거쳐 아슬아슬하게 크리스마스를 피해 출산을 하게 된, 벌써 작년이 되어버린 12월의 겨울까지. 생각해 보니 꼬박 1년의 사이클을 거쳐 아기를 만나게 되었다.
그렇게 큰 이슈가 없었던 임신기간이었기에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출산의 고통과 이제 막 시작된 육아의 힘듬은 나의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이틀, 약 22시간의 진통을 했던 유도분만이 실패로 끝나고 받게 된 제왕절개 수술. 그리고 흔히 '후불제'라고 칭하는 수술의 고통과 전혀 생각지 못했던 여러 가지 증상들을 겪으면서 유도분만 첫날에 아기를 낳기 위해 손으로 V자를 그리고 웃으며 분만실에서 짐볼을 탔던 해맑던(?) 나의 모습은 사라졌다. 바닥난 체력과 수술 전으로 돌아오려면 아직도 멀고 먼, 바람 빠진 풍선처럼 변해버린 나의 복부를 볼 때마다 오는 자괴감, 그리고 아직 산후조리를 도와주시는 이모님이 오시고 새벽육아를 남편이 해줌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고장 나버린 나의 손목을 느끼며 매일 풀리지 않는 피로가 어깨에 한가득이다.
그러다 보니 출산 전에 내가 느꼈던 행복감이 얼마나 피상적인 행복이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때 나는 귀여운 아기 용품을 사고 물려받은 예쁜 아기옷들을 아기 옷장에 정리하고, 아기에게 필요하다는 물품들과 출산에 필요한 용품들을 준비하면서 '내가 생각보다 이런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구나. 아기 낳고 복직하기 싫어지면 어쩌지?' 등의 생각을 나도 모르게 하기도 했는데, 현실을 모르는 얼마나 철부지 같은 인간이었나 싶다.
내가 아이를 돌보는 시간이 거의 없던 병원 입원과 조리원 생활을 지나 막상 아기와 함께 집에 오니 펼쳐진 것은 현실. 그것도 전에 없던 빡센(?) 현실인 것을. 아기는 이유 없이 울어대고 기저귀 가는 것부터 분유를 먹이는 것까지 모든 것이 어설픈 초보엄마인 나는 아직 도움이 손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이런 하찮은 손목과 멘탈로 2개월 후부터 거의 혼자 감당해야 하는 육아를 할 수 있을 것인가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조리원에서 돌아오고 약 2주 동안 아기에게는 미안하지만 수없이 출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산휴가를 시작했던 내 생애 가장 평화로웠던 월급 받는 백수였던 작년 11월로, 남편과 느긋하게 저녁을 먹을 수 있던 나날들로, 그보다 더 전에는 내 생애 가장 긴 여행이었지만 행복했던 신혼여행 때로, 심지어 옛날에 친구와 갔던 활기에 차 돌아다닌 이탈리아 여행 때까지도 생각이 났다. 그러다 '내가 대체 무슨 일을 한 거지?' 하는 생각이 들며 두려움에 휩싸였다. 귀여운 아기용품이나 아기옷 같은 것을 보며 행복해할 것이 아니라 한 생명을 낳아 돌봐야 하는 것이 부모라는 무거운 책임감. 이렇게 가장 중요한 걸 놓치고 매번 병원에서 초음파 사진을 보며 마냥 행복해했던 내가 한심스럽게까지 느껴지던, 행복해야 할 것 같은데 많이 우울했던 몇 주였던 듯하다.
다음 주 초반이면 이제 도움을 주시던 이모님의 손길도 멈춰지게 되고, 2달 후면 휴직했던 남편도 복직을 하게 된다. 임신 사실을 알았던 따뜻한 4월, 꽃피는 봄이 다시 오면 아기가 100일이 되고 나는 인생 최대의 고비를 맞게 되는 것이다. 다시 다가올 봄에서 겨울까지, 이제 나는 뱃속이 아닌 눈앞에 존재하는 아기와 4계절을 고군분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