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자본주의는 영원할까? 그럼 자본주의의 표상된 실재인 주식시장의 존재도 영원불멸한가? 누군가는 역사의 종언을 이야기한다. 더 이상의 진보된 사회체제는 있을 수 없다고 말이다. 보수적인 발언 같지만 진보의 단선적인 시간관에서 나오는 단견이다. 역사의 수레바퀴에서 인간의 선택은 무궁무진하다. 한 인간의 몸과 마음이 이뤄내는 인생사도 선택이 끝없는데, 인간 전체라고 달라지랴. 전체는 개체의 몸과 마음을 닮아있다.
마음은 쉽게 변하지 않지만, 변한다면 순식간이다. 떠올려보라. 지금의 연인이 내 옆에 있기까지를. 이성으로 생각하지 않던 그가 내 옆에 있기까지는 짧고도 긴 시간이 걸리지만, 연인이 되는 순간 많은 것들을 허락한다. 반대로 두 연인의 몸은 관계의 물질적 토대요 내용이다. 몸은 매 순간 변해가지만 단번에 도약하지는 않는다. 마음은 관념이요, 몸은 물질이다. 세상사도 몸과 마음의 구조와 동일하다. 노동의 비약은 일어나지 않는다. 한 개인으로부터 전체 집단의 노동의 지속적 집적이 경제적 토대를 이루고, 한 집합의 노동과 또 하나의 노동집합의 관계성을 결정지움이 상부구조로서 관념이다. 이 관념이 자본주의고 현재적 의미에서 금융자본주의다.
현상학의 노에마, 노에시스 개념처럼 마음먹기에 따라 대상의 물질성이 달라질 수도 있다. 그러나 마음먹기, 즉 고정된 하나의 관념은 선택이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하나의 선택이다. 순식간에 일어난, 그러나 쉽게 변할 것 같지 않은 우리가 믿는 바가 자본주의라는 하나의 관념이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의 선택이 수많은 사회적 모순들을 허락하게 하는 바이다. 건강한 자본주의란 없다. 오직 모순만이 자본주의를 박동시키기에, 우리가 지금 당장 결단 할 수 없다면 우리의 무지라도 알고자 해야 한다. 쉽게 변하진 않지만 변한다면 순식간이다.
영원할 것 같은 이곳, 자본시장에 참여하는 나를 포함한 모두는 알려고 해야 한다. 무엇을 하고 있는 지를 말이다. 단순히 큰 부만을 소망하기에 이곳에 있다면 더 큰 부를 소유한 이에게 강탈당할 것이며 역사의 수레바퀴에 짓눌리고 말 것이다. 모든 것은 변한다. 자본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그렇기에 무엇을 하고 있다는 전체성의 파악만이, 한낱 부속으로의 전락을 피해 줄 것이다. 진리는 전체다.
(미국증시는 휴장이다. 현물시장의 종료에 전일의 영향권 하에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