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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준호 Jun 22. 2023

주가와 나

금리

금리인상이 옳은가? 금리인하가 옳은가? 질문을 바꾸고 싶다. 돈이 적절한 인물들에게 투여되고 있는가? 금리 결정과 관련된 담론이 헤게모니 싸움으로 느껴진다. 인상이든 인하든 금융시장에만 돈을 풀면서 온갖 통계수치를 들먹이며 자신들의 결정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기시감이 느껴진다. 작은 정부냐, 큰 정부냐로 담론을 생성하고 통화주의가 헤게모니를 잡으며 권력은 시장에 넘어갔다. 정부가 유능하면 큰 정부를 지향하고 정부가 무능하면 작은 정부를 지향함이 합당하지 않나? 나에게만은 이것이 상식이다.


특정사회 구성체의 발전에 대하여 논할 때, 시스템이 있기 전에 인물이 있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개혁에 있어서도 제도의 개선이 있기 전에 인적쇄신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금리 결정의 척도에 있어서도 기대인플레이션이 어떻고, 실업률이 어떠한지 같은 사회시스템적 통계 수치가 있기 전에 누구에게 돈이 주어지느냐가 관건이라고 본다. 돈을 올바로 쓸 수 있는 이에게 금리인하를 통한 유동성 공급의 혜택이 돌아갈 수 있다면 시장에 돈을 풀어야 되고 아니라면 죄어야 한다.


일차적으로 투기세력에게 돈이 주입되면  된다. 투기와 투자의 정의를 분간하려면 이것 또한 어려운 일이지만 적어도 갭투자와 같은 형태에는 단호해야 하지 않겠는가? 둘째로 사회에 진정한 사업가들이 여럿 있는가를 파악해야 한다. 적재적소에 돈을 투자할  있는 안목이야 말로 기업가의 존재 의의라 말하지 않을  없다. 셋째로 젊은 인재들에게 돈이 가는가이다. 이것은 사회적 분배의 문제로, 사회말단까지 구석구석 돈이 퍼져야 한다. 아무리 위대한 인간이라도 혼자 모든 것을   없듯이 아무리 위대한 기업가도 혼자 모든 돈을 가장 효율적으로 투자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진정 위대한 무언가는 비천하고 비루한 곳에서 시작된다. 스티잡스도 앨론 머스크도 제프 베조스도 창고에서 시작했다.


속이 검다. 담론을 생성하는 자들의 속이 검다. 올바름이 사라지니 그럴듯함이 득세한다. 이제 인간의 논리로도 부족하니 Artificial Intelligence가 논리도 만들어주고 주가도 뻥튀기해 준다. 새로운 것에 진리가 있다고 생각하지 말자. 신자유주의가 자유로부터 멀어지게 하였고 신실증주의가 실증을 불가능하게 만들어 버렸다. 중세시대를 벗어난 르네상스 시대도 그리스 로마시대의 별이 총총한 별빛을 돌아보니 각성된 시대이다.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의 그날을 위해 검은색들을 하얗게 하고 싶다.


(금일 미국증시는 연준의사의 우발성만 아니라면 하방이 제약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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