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노동이란 무엇인가? 특정개념에 대해 정의를 내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변해가는 사회현실에서 모든 시대를 관통하는, 즉 시대마다 생겨났을 개념들 속에서 차이지움이라는 종차의 범주적 구분을 하고도 남는 그 무언가를 '일이관지' 해냄이 정의 내림이고, 정의를 내릴 수 있다는 확신 속에 개념이 생기고 이론적 토대가 되는 것이다. 수많은 차이들 속에서 인간의 행함에 남는 사실은 무엇일까? 언젠가는 죽는다는 확고부동한 사실일 것이다.
과로사와 복상사, 인간의 죽음에 있어 가장 극단적인 두 형태이다. 하나는 노동행위를 과하게 해서 생긴 결과이고, 다른 하나는 번식행위의 과함에서 온다. '무'에서 '유'로 태어나 다시 '무'로 돌아가는 인생사, 죽음이라는 실체도 없고 알지도 못하며 체험해 보지 못한 '없음' 그 자체에서 무엇 하나라도 '있음'을 남기려는 행위가 노동과 번식 아니겠는가?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있어 '해야 한다'는 의지의 표현인 노동과 '하고 싶다'는 의지의 발현인 번식이 타자라는 대상존재 앞에 서서 발현되는 무의식으로서 충동과 의무가 인간사에서 노동과 번식의 양 극단으로 드러남이다.
'하고 싶다'와 '해야 한다'의 무의식적 의지작용 속에 인간사의 즐거움과 고통이 형용사로 장식된다. 의식하지 않았는데도 하고 싶고 의식하지 않았는데도 해야 한다고 느끼는 사회체로서 인간의 본원적 현상태가 노동과 번식하는 주체로서 드러남이다. 즉 노동행위는 생을 유지하기 위해 노동을 하겠다는 의지가 의식으로 드러남이 아닌, 죽음에 저항하려는 무의식적 의지가 드러남이다. 다시 말해 죽지 않기 위해 '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하는 모든 행위를 통칭하여 노동이라 정의할 수 있다.
노동이라 하면 현대사회에서 유쾌하지 않은 뉘앙스가 떠오른다. 자본가가 되어 육체노동으로 부터 멀어짐만이 안락한 삶의 표상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노동이 죽음에 저항하는 태도라면 현재적 시점에 있어 우리에게 노동이란 어떤 형태인가? 낫과 망치를 들고 피와 땀을 흘리는 행위만이 노동이 아니다. 모니터 앞에서 더 값싼 물건을 찾아 헤매고 더 좋은 물건을, 더욱 합리적 가격에 사야 한다는 강박적 의무에 사로잡혀 내일의 돈 없음에 저항하는 또는 타자들로부터 지워지지 않게, 즉 타자의 눈길로부터 주목받기 위해 전심전력으로 노동하는 사회적 존재들이 있다. 이러한 존재의 행함이 죽지 않고 살아보려는 무의식적 의무감의 발호 아니겠는가?
플랫폼 업체들의 기업 분석 리포트를 살펴보면 MAU(Monthly Activity User)라는 개념이 있다. 기업가치 측정 지표 중 하나로 월별 앱 방문자 수이다. 거대 플랫폼 업체들을 살펴보면 그들의 고용 노동자 수는 적다. 그런데 그들의 기업이익은 상상을 초월한다. 기업가치의 근간을 노동이라 본다면 그들의 노동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노동을 하면서도 노동을 하는지 모르는 우리에게 노동소외는 필연이다.
(미국증시는 주기성을 벗어나지 못하면 상방 제약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