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적 형식과 내용의 일치가 흥미롭지만
물씬 풍기는 회의주의적 세계관에
지루함과 갑갑함만 공허하게 남는다.
스탈린 대숙청 당시 혈기왕성한 신임검사의 이야기다. 영화에서 처럼 이 시기 하도 많은 고위관료들이 숙청되어 아이러니하게도 소련에서는 끊임없는 인적쇄신이 이루어졌다. 그래서 실제로 막 부임한 신임검사가 고위직에 올라가기도 하는 상황이 허다했다.
영화에서는 전체주의적 관료주의를 부각하기 위해 위, 아래로만 동선이 짜이는 감옥과 관청의 이미지를 활용한다. 감옥에 수감된 죄수도 갇혀있고 죄수를 감독하는 교도관도 그 감옥에 갇혀있는 꼴은 매 한 가지다.
어떠한 웃음도 유희도 스탈린의 공포에 압살 되어 버린 전체주의 사회에서는 역설적이게도 '무의미의 축제'라는 듯 교도소장 둘은 웃기지도 않은 의미 없는 농담에 공감할 수 없는 깔깔 거림을 보여준다.
사회의 하층부인 감옥은 당연히 갑갑한 공간이겠지만 상층부인 관청 또한 이에 못지않다. 의미 없는 관료주의적 줄 서기와 처벌의 공포와 출세의 탐욕은 교차하지만, 어느 누구도 서로 돕지 않는 인간 아닌 인간만 남은 곳이다.
영화적 이미지라는 형식만으로 전체주의 사회의 갑갑함과 비인간성을 표현함이 예술적 완성도를 높여주며 그런 감옥으로부터 어떻게 해도 벗어날 수 없다는 내용조차 형식으로 표현한다.
영화를 논외로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표현하면 이렇다. 도덕성을 기반으로 한 칸트주의적 이상주의도 이념으로 무장한 변증법적 헤겔주의도, 한쪽은 스탈린을 다른 한쪽은 실패한 양심적 엘리트 젊은 검사를 대변할 뿐이다. 또한 이상사회의 꿈도 스탈린식 전체주의로 귀결되며, 하층민이든 엘리트이든 한 명의 영웅이 세상을 바꿔줄 것이라는 그들의 기대 또한 끝은 스탈린이고 레닌이다.
양심이라는 도덕성에 기반하여 정의감에 똘똘 뭉친 젊은 엘리트 검사는 그가 호소하는 자 또한 체제의 공범이라는 것을 모르는 우둔함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영화초반 부, 그 또한 엘리트 검사였을 늙은 정치범은 주인공에게 스탈린에게 호소하라 조언하고 주인공 또한 스탈린의 하수인인 검찰총장에게 간청한다. 결과는 변하지 않을 세상과 기층 민중의 절단된 다리와 감옥으로의 투옥만 남는다.
그렇다면 영화의 공백으로 남는 정확한 상황에 대한 인식, 그리고 그와 함께하는 도덕성이 갖춰질 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인가? 영화는 답하지 않지만 개인적으로 이것도 답이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총평>
평론가들의 평이 좋은 영화이다. 만점을 주는 평론가가 있다면 영화적 표현력의 극찬과 함께 세계관에 적극적 동감이 있었을 것이다. 실제 스탈린 시기 시베리아 유배를 떠난 작가의 소설원작이 있는 영화이다. 비슷한 소설로 플라토노프의 '구덩이' 솔제니친의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 같은 작품들이 있다. 서구사회의 전체주의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과 경계심인 듯 이런 류의 소설들이 작품성에 비해 과하게 평가받는 면이 있는 것 같다. 필자는 그저 회의주의가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