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텍사스] 비극은 벗어날 수 없기에 비극

by 최준호


미치게 좋아 비극일 사랑

비극이라 도망가도 남을 사랑

다시 돌아온들 벗어날 수 없는 비극

비극은 벗어날 수 없기에 비극


텍사스 사막 한복판을 정처 없이 걷는 남자

댄디한 양복에 슬리퍼와 캡모자.

그의 형용모순 같은 모습이

파탄난 정신을 대변하는 듯하다.


쓰러진 채 구조된 그에게

4년 만에 동생이 찾아온다.

동생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아무리 다그쳐도

벙어리가 된 그는 입을 열지 않는다.


그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고

왜 사막을 헤매고 있는 것일까?


동생은 남자가 버린 어린 아들을

아내와 함께 친자식처럼 키우고 있었다.

캘리포니아 동생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과 함께 본 과거 홈비디오 영상에는

젊고 너무나도 아름다운 그의 아내와

함께한 행복한 모습이 담겨있다.




미치게 좋아 비극일 사랑

자신보다 훨씬 어리고 젊은 금발의

바비인형 같은 아내를 너무 사랑했다.

너무 사랑해서 일용직 일을 나가기보다

좁은 트레일러에서 아내와 함께 하기를 택한 그였다.

그러다 생활비가 떨어지면 일을 나가고,

그 떨어진 시간 동안 과한 사랑에 의처증에 시달린다.

의처증은 폭력을 부르고 그 폭력은 임신한 아내에게

자식을 인생의 짐이라 여기게 만든다.

반대로 아들이 생기고 정신을 차린 남자에게는

모든 것이 비극으로 끝나버린 사랑만 남게 된다.


비극이라 도망가도 남을 사랑

사랑의 끝이 비극임에 남자는 자신의 현재를

모두 불태워버리고 사막을 헤매던 것이다.

그가 찾던 곳은 그의 부모님이 사랑을 나눠

자신이 생긴 텍사스 사막 한복판에 파리라는 마을,

그리고 그곳 어딘가에 그는 행복한 가족을 꿈꾸며

집을 지을 곳을 사놓았었다.

사막 한복판을 헤매다 돌아온 그는 아들과의 재회 이후

다시 정신을 차리고 모든 것을 되돌리려 다시 아내를 찾는다.


다시 돌아온들 벗어날 수 없는 비극

어디에 있든 다시 찾을 수 있고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남아있을

그의 너무한 사랑은 그 자신도 안다.

비극은 희극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여전히 아름다운 그녀에게 다른 남자라는

의심이 다시 돋을 것이고

다시 불행의 시작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는 닿을 수 없는 거리에서만 그녀를 보려 한다.




<마무리>

인간의 광기는 언뜻 보면 이해할 수가 없다.

고소공포증이 생겨 비행기를 탈 수 없기도 하고

세상과 담을 쌓으려는 듯 실어증에 걸리기도 한다.

이렇듯 광증의 결과는 밑도 끝도 없다.


우리도 삶이 버겁거나 싫어질 때면

이유 없이 말하기 싫어지고,

어떤 상황이 느닷없이 두려워지기도 하며,

정처 없이 걷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저 시작과 끝이 작으냐 크냐의

광기일 뿐이다.


그래서 주인공은 왜 살던 곳을

불 질러 버리고 아무 이유 없이

파리, 텍사스를 걸어갔을까?


그저 미칠 정도로 좋아했기에

그 끝이 광기였고

비극임을 알았기에 버릴 수 없지만

버려야 했으며

모두 버리니 자기 자신을 찾고자

시작점으로 돌아가려 했을 뿐이다.


이런 이율배반이 모든 인간, 정신, 사랑의 시작점이자 끝점이다.

그래서 인생도 사랑도 밑도 끝도 없는 듯하다.

비극적 아름다움이 영화의 긴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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