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겉만 보면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지루하지 않고 즐거운 영화다. 그러다 영화를 보면 볼수록 그 내부에 수많은 생각의 편린들이 녹아 있음이 보인다. 무거운 임무에도 가볍고 유쾌한 주인공. 자신과 타자에 대한 관계성. 죽음에 마주한 삶의 태도. 소멸의 원인이 생성의 발단이라는 양가성. 태양이 소멸해 간다는 비현실적 상황과 우주와 외계인이라는 현실적이지 않은 것으로부터, 현실적으로 보이는 삶의 긍정. 그리고 거시적 삶 그 자체에서 드러나는 그러한 삶의 긍정이 미시적 세계의 원자 단위에서는 박테리아라는 세포들의 서로 먹고 먹히는 포식자와 피식자의 투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유기체적 세계관.
우주에 내던져진 기억을 잃은 주인공이 '나는 누구인가'로 시작한다. 그러나 영화 후반부에는 그 문구를 지우며 외계인 '로키'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상황과의 관계성으로 고쳐 적는다. 이 부분 그냥 영화의 단순한 스토리 전개로 볼 수도 있지만, '주체성'은 허구적 개념이라는 철학적 사유다. 있지도 않은 주체 개념을 찾으려 개인은 미치기도 하고 미친 사회를 만들기도 한다. 너무도 선명하게, 어쩌면 노골적으로 표현해서 그냥 단순히 오락영화의 흘러가는 레퍼토리로 치부하기에는 많은 철학적 주제의식을 내포하고 있다.
외계인 '로키'는 잠자는 것 말하고 듣는 것 모든 것을 공유하려 한다. 주인공은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말하며 넋두리를 하지만 서로를 이해해 가며 사건사고의 발생과 해결을 계속해 나감 속에 우정을 쌓아나간다. 그런 가슴 뭉클한 우정이 꽃피워 나갈 때 그들 사이에는 서로를 구분 지을 수 있는 얇은 막만이 놓여있다. 이 부분도 그냥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위한 전개로 볼 수도 있지만, 영화 속 전개에서 주인공은 어떤 직계 가족도 없고 배우자도 없음을 도드라지게 표현한다. 여러 철학적 사조 속에 누구는 사랑이 인생의 핵심이다, 누구는 정의다, 누구는 행복이라고 말하는데, 영화 속 주인공처럼 쾌활함과 낙천성을 잃지 않으려던 철학자는 '우정'을 첫째로 꼽는다.
태양 빛을 좀 먹어가는 것들이 죽어 있는 물질이 아니고 살아있는 생물이라는 설정이 흥미롭다. 그냥 단순히 운석 덩어리가 가로막은 것이 아니다. 번식을 목적으로 하는 생명체가 태양의 포식자가 되기에 원자 단위로 분해하고 쪼개도 근원을 알 수 없어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 그런데 다른 근원을 알 수 없는 포식자 세포로 문제를 풀어낸다. 그리고 태양 빛을 좀 먹는 문제덩어리가 우주선의 동력원이 되기도 하고, 문제 해결책의 포식자가 우주선을 파괴하는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양가성이라는 모순으로부터 생성을 만들어 낸다는 사유가 그냥 나온 것 같지는 않다.
불교에서 금강경 단계까지 올라가면 가상세계의 주조로부터 진리를 구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마음속에 자신이 극락정토라 여기는 만다라 상을 만들어내고 삶의 길을 찾고자 할 때 떠올린다. 할리우드 상업영화에 불교철학까지 언급하는 것이 조금 거시기하지만, 우주공간과 외계인이라는 상상력을 통해서 삶의 긍정과 가치를 드러내고자 하는 형식의 유사성이 우연이든 아니든 놀랍기도 하거니와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알기에 작가의 능력이 경이로워 보였다. 죽음을 마주한 삶에 대해서 영화는 이러쿵저러쿵 떠들지 않는다. 삶은 하나의 은유라는 듯, 주연배우의 노래가 아직도 귓가에 울린다. 'Sign Of The Times' - Harry Sty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