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어더 랜드] 이스라엘은 왜 이렇게까지 하는가?

by 최준호


이해가 가지 않는다. 왜 이렇게까지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미워하는 것인가. 영화를 보는 내내 물어보고 싶었다. 같이 살면 안 되나? 왜 몰아내려고 하지? 무슨 피해를 주었길래? 싫어하는데 이유가 없다. 그저 그곳은 이스라엘에게는 구원의 약속을 받은 땅이고 팔레스탄은 그곳을 점유하고 있는 것이다. 뺏어야 한다. 비공개 군사훈련지역으로 선언하고 민간인 거주 금지구역으로 묶어버린다. 법적형식이 갖추어졌으니 포클레인으로 다짜고짜 집들을 허물어 버린다. 그리고 바로 옆 구역에 이스라엘 정착촌을 건설한다. 팔레스타인 구역에는 사람이 살 수 없도록 우물에는 콘크리트를 부어버리고 전기를 쓸 수 없게 발전기를 빼앗아간다. 여기에 저항하는 와중에 영화감독의 형이 총에 맞아 어깨아래로 모두 쓸 수 없는 반신불수가 된다. 그의 어머니는 울지도 웃지도 않으며 덤덤하게 절규한다. "신이 내 아들을 데려가 영원한 안식을 주길..."


이유 없는 싫음의 실체가 무엇일까? 강탈이 목적이라기에는 상대에 대한 저주가 극에 달해있다. 이스라엘인이 팔레스타인을 돕기만 해도 팔레스타인의 개라고 쏘아붙이고 이스라엘의 부당성에 대한 비판에는 밑도 끝도 없이 반유대주의로 몰아붙인다. 히스테리적이다. 원래 부당함에 저항하지 못한 자가 힘을 가지면 부당한 짓을 하게 마련이다. 맞고 자란 아이가 폭력적이기 십상이고 서열과 계급의 부당성에 찍소리 못하던 인간이 위로 갈수록 갑의 횡포를 당연시한다. 그리고 이러한 정신현상은 외부의 폭력에 자기 자신의 현존재, 즉 살아있음을 인식하기 위해 주관적 가상을 세우기 마련이다. 이스라엘 인들에게 있어 국가, 민족, 종교가 그들 생존의식의 세 기둥이다. 손으로 잡을 수도 눈으로 볼 수도 없기에 가상이며 믿기 때문에 느껴지기도 한 추상성은 외부의 압박이 강하면 강할수록 심연에서 오는 불안의 증폭으로 강고해진다.


내가 살기 위해 세운 '나'라는 벽이기에 '나'아님에 배타적이다. 생각해 보라. 자신의 생존만을 위해 억척스럽게 사신 분들이 타인에게 모진 법이다. 이유 불문하고 이스라엘인이 팔레스타인을 핍박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서로 싸우면 닮아간다고 팔레스타인도 국가, 민족, 종교에 더욱 집착해 간다. 나라를 인정받고 싶어 하고 팔레스타인 민족의 해방을 꿈꾸며 이슬람 신 알라의 구원을 바란다. '나'를 고집하면 타인은 지옥이며 없었으면 하는 대상이 된다. '나'라는 국가, 민족, 종교의 삼위일체화된 이스라엘의 정체성이 바뀌지 않는 한 중동에 평화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부, 성자, 성령이 하나라 인식된 중세가 결국엔 저물듯 그들의 인식에도 변화가 오기를 바란다. 그들의 배타성이 신을 믿지 못하는 자에게는 순전한 광기로 비치기에 더욱 바래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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