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평>
재밌다. 영화 초반에는 뭔가 모르게 만화영화 '배추도사 무도사' 나이 먹어서 보는데도 재밌는 느낌이다.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해서 어색한 CG조차 몰입에 방해를 주지 않는다. 극의 서사도 군더더기 없이 주르륵 진행해 준다. 잘 만들어진 TV드라마 한 편 보는 것 같다. 무엇보다 임금님 나오는 사극 좋아하는 한국인들의 특별한 정서를 자극한다. 그 특별한 정서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한다.
<그 생각>
선한 군주, 불가능한 꿈
사람들의 의식 속에 어진 임금에 대한 기대가 있다. 특히나 알게 모르게 유교사상이 내면화된 한국인들에게 '仁'(인)이라는 글자는 모든 것을 관통하는 한 글자이다. 어진 사람이, 어진 가장이, 어진 군주가 '正道'(정도)이고 나아가야 함이다. 그래서 그런지 유독 정치인을 선출할 때도 도덕적 잣대를 제1의 가치로 두는 편이다. 이념과 능력의 유무보다 사생활의 올바름, 언행의 단정함 등이 우선순위이다. 조선왕조 500년의 우리에게 내면화됨이다. 조광조, 퇴계이황, 정약용 등 성리학에 기반을 둔 도덕정치의 우월성을 통치의 이념으로 삼으려던 사상가들의 결실이다.
사상가들이 주조해 낸 '말'들이 당대든 후대든 사람들의 사유에 주는 영향은 모든 행정가, 정치가, 과학자가 그저 그들의 수족일 뿐이라고 느껴지게 만들기도 한다. 법률, 정책, 과학이론 모두 그것을 만든 그들 자신이 한 시대를 살아가는 개체로서 자신들이 받아들인 사유체계에는, 그 사유들을 구성하는 관념들이 갖게 되는 본질을 담지하게 된다. 즉, 우리는 교육받고 사사된 옛 사상가들의 생각들과의 관계 맺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것들을 본질로서 또는 씨앗으로 가지게 된다. 본질로서 보면 사유의 자동기계 같은 면을 갖게 되는 것이다. '나'는 그 사상과는 다르게 생각해라는 생각조차도 한 시대의 개체로서는 그것(사상가들의 사유)의 '아님'일 뿐이다.
우리는 이렇게 생겨 먹었다. 그래서 성군이 될 수도 있었던 왕에 대한 애잔함이 사무치게 그리운 것이다. 그리고 그런 왕이 우리를 다스려주기를 내심 기대하고 있다. 그럼 나의 생도 좋아지고 가족도 행복하고 나라도 평온해질 것이라고... 하지만 권력이란 투쟁 후에 얻게 되는 것이고 그런 투쟁에서 선함은 패배의 빌미를 제공한다. 성군이라 불리는 군주들 중에 선대가 잔혹하게 숙청하지 않은 정치사는 없다. 세종에게 태종이 있었고 아우구스투스에게 카이사르가 있고 카이사르에게는 더 잔혹한 술라가 있었다. 그리고 성공한 성군들 조차 보이는 이미지가 선할 뿐이지 계략과 모략의 달인들이다. 선하게 보이는 것조차 얻고자 하는 바를 얻으려는 방책으로 보일 정도다. 어쩌면 우리는 선한 군주라는 불가능함을 꿈꾸기에 계속 꿈꿀 수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