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퍼디플레이션

by 최준호

인공지능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며 기술과 설비의 진보에 따라 물가가 급격히 하락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들이 나온다. 엘론 머스크, 피터 틸 등 미국 빅테크 기업의 수장들이 하는 소리다. 불가능하지는 않다. 기술혁신이 물가를 낮춘다는 경제학의 기초적 사실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능, 불가능은 모두 물리적 사실들의 구조 속에 확률에 따른 주도적 인간의 역량에 달려있다. 다만 그들이 바라는 세상이 우리가 바라는 세상인가이다.


AI로봇을 통한 고된 노동으로부터 해방이 인간에게 절대적 자유를 줄 것이라는 자유주의자들의 달콤한 속삭임이 잡신처럼 모셔지고 있다. 인공지능 로봇이 생산을 하고 돈을 벌어오면 인간들은 그 생산물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고 말이다. 물어보고 싶다. 그 로봇은 누가 만드냐고 말이다. 그러면 재차 로봇이 로봇을 만든다고 답한다. 잡신에 대한 맹종은 하나같이 순환논리의 오류를 내포하고 있다. 절대적인 것이 있다. 그러니 믿어라. 우리의 기대와 달리 AI로봇이 보편화되면 노동은 사라지는 것이 아닌 가려지는 것이다.


가진 자들의 바람대로라면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기존체제의 가속화, 즉 생산 분업의 철저한 가속화로 노동이 없어지는 것이 아닌 우리의 시야에서 더욱 사라질 뿐이다. 소수의 고임금 노동은 본국에 남고 다수의 저임금 노동은 여행으로 조차 가지 않는 개발도상국들로 말이다. 기술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면 로봇이 로봇을 만드는 모습도 물론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그 로봇에 들어가는 원자재의 채굴 같은, 로봇 생산비보다 적게 드는 저 임금노동은 계속될 것이며, 궁극적으로 채굴 로봇의 생산단가가 임금노동비보다 낮게 되더라도 생존을 위한 산업예비군이 항시 대기 중인 산업사회에서 노동공급이 인건비를 낮춰서라도 노동 수요를 창출해 낼 것이다. 이런 현상은 채굴산업만이 아닌 전체 산업영역에 실질임금 수준의 저하를 야기하며 임금노동의 잉여가 남아있는 한 고용 수요의 계속됨은 불변이다.


경제적 번영의 지속을 바라는 우리에게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기술 진보에 따라 물가가 서서히 하락하게 하는 정책과 다른 하나는 물가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 임금을 서서히 인상하게 하는 정책이다. 만에 하나 기적과 같은 기술진보로 물가가 급격하게 하락하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그건 축복이 아닌 재앙이다. 위든 아래든 물가의 급격한 변동은 경제에 득 보다 실이며, 그런 경우라 하더라도 중앙정부의 기준금리 결정권 같은 공개시장조작 내지 이와 유사한 방책들은 충분히 물가를 관리 가능한 범주안에 둘 수 있다. 특히나 인플레이션은 금리 인상 같이 시장에 찬물을 끼얹으며 고통을 감내해야지만, 기술진보에 따른 우호적 상황에서 디플레이션은 자본의 영속성을 강화시켜 줄 뿐이다. 그저 기업이든 국가든 기술이라는 담보로 채권을 더욱더 발행하여 통화량을 늘려주기만 하면 된다. 비근한 예로 금융위기 이후 빅테크 기업들의 폭발적인 성장과 그 시기 미국의 패권강화를 떠올리면 된다.


결론적으로 하이퍼디플레이션이라는 담론은 그저 인공지능 사업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 있는 장사치들의 이익을 위한 레토릭일 뿐이다. 인플레이션이냐 디플레이션이냐는 양자택일적 질문들은 북한이 나쁘냐 미국이 나쁘냐 같은 하등의 발전적 가치가 없는 물음들이다. 우호적 상황에서 디플레이션이 오면 정책의 방향을 인플레이션 지향을 통해 자본의 지속적 발전에 기여할 기회가 주어지는 자본주의에 있어 축복이며, 비관적 상황에서 디플레이션은 죽어가는 병자를 살리려는 심정으로 극단적 처방이 필요할 수 있는 난관에 봉착해 있을 뿐이다.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지상낙원을 꿈꿀 수는 없다 하여도 두 가지 길 중에 전자가 아닌 후자, 즉 물가 안정 속 임금의 인상이 돼야 한다. 두 가지 선택지 밖에 없다면 차악을 선택해야지 않겠나? 그들의 프로파간다에 속지 마라! 그들은 더 많은 돈을 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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