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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비 Oct 09. 2019

당신에게, 몽골

- 몽골로 가는 39가지 이야기 (0)

몽골 바이러스의 숙주


그러니까, 요즘 내게 일 년이라는 시간의 단위는 둘로 나뉜다.
몽골을 그리워하는 시간과, 몽골에 가 있는 시간... 
혹 운이 좋아 내게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고비에서 주막을 차려
 양 몇 마리와 말 한 마리를 기르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심심하게 죽다가
 저녁이면 작은 의자를 뒤로 물러 앉히며 노을을 백번쯤 보고 싶다.


최근 들어 몽골을 찾는 여행자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어찌하여 지구 최고의 속도를 자랑하는 '빨리빨리족'이 볼거리 많은 유럽이나, 먹을거리 풍성한 동남아를 놓아두고 느닷없이 몽골을 찾는 이유를 정확히는 모르겠다. '정글의 법칙'에 몽골편이 상영된 덕이라는 말도 있고, 더 이상 갈 데가 없기 때문이라는 구구한 설이 난무한다. 그러한 설 가운데는 스무여덟 차례나 몽골을 찾아드는 나를 원흉으로 지목하는 이까지 있다. 호불호가 엇갈리는 몽골에는 현재의 의학으로는 치료가 불가한 난치의 '몽골 바이러스'가 있는데, 그 숙주가 나라고 한다. 


별로 기분 좋은 설은 아니지만, 도의적인 책임과 후유증으로 인한 심적 혼란으로 인해, 몇 해 전에 몽골에 관한 책을 펴냈다. 새 책을 준비하며, 우선 몽골을 찾아가는 여행자들이 알아두면 좋을 이야기들을 먼저 소개한다.  텍스트는 <당신에게, 몽골>에 실린 내용을 발췌하고 사진을 새로 곁들이되, 출판사도 책을 팔아야 하니 일부만 소개하니, 흥미 있는 분들은 종이책을 구입하기 바랍니다.  




고비주막을 꿈꾸며


요즘 나는 몽골병에 걸렸다. 

마당에 심어 놓은 콩 졸가리가 바람에 넌출거리는 것만 보아도 고비 벌판에서 무시로 흔들리던 풀들이 생각나 눈가가 질척거리고, 줄 풀린 개가 저물녘에 집 주변을 어정거리는 걸 보아도 바끄가자링 촐로에서 보았던 늑대가 찾아왔나 싶어 달려 나가기를 일삼는 것만 봐도 그러하고, 반구 충만한 별들에 취하여 대중없이 마셔대던 칭기스 보드카 때문에 소주 마시기를 맥 빠져한다던가, 동대문 시장에서 행여 몽골말을 쓰는 이를 보면 이역만리에서 제 동족 만난 것처럼 손부터 붙들고 싶어 어쭙잖은 몽골말을 건네며 자꾸 따라다니는 증세만 보아도 이미 중증임에 틀림없다. 아직까지 치유약이 없다는 고질에 걸렸으면 팔자소관으로 여기고 시난고난 병고를 견딜 것이지 어찌하여 무고한 이들에게 자꾸 몽골에 가자고 꾀거나, 가 봐야 볼 것 없다는 이에게 불뚱 가지까지 내는지 스스로 생각해 보아도 참 심각한 병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요즘 말로 내가 몽골에 '훅' 간 것은 아니다. 

몽골에 관한 내 지식은 '몽고간장'과 몽골반점, 원나라에 충성할 '충'자를 박아 넣은 고려의 왕들과 삼별초처럼 동강 난 것들이었다. 

막상 몽골의 풍광을 처음 접한 것은 단골로 드나들던 대폿집에서였다. 방앗간 자리에 우묵하니 들어앉아서는 시큼한 막걸리에 제 남편도 먹지 않을 시어터진 오이지 쪼가리를 안주랍시고 내놓는 '왕언니집' 담벼락에 걸린 달력에서 나는 몽골을 처음 보았다. 한 마장 거리에 있는 몽골문화촌에서 거저 얻어왔음직한 달력에는 '저 푸른 초원'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말 몇 마리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달력 속의 몽골은 비록 파리똥이 여기저기 붙어 있기는 했지만 얼큰하니 취한 눈에도 심히 광활하고 장대했다.


몽골은 그렇게 멀지가 않았다. 일없는 글쟁이들이 공연히 밭두렁에 거름 내는 나를 불러낼 적마다 숨을 헐떡이며 달려 나가던 마포 어름보다 외려 덜 먹히는 시간이면 가 닿았다.

여행이라는 것이, 그것도 적잖은 돈을 바쳐가며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바에는 눈 파랗고 머리 바글거리는 인종들이 적당히 노린내도 풍기는 맛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이것은 우리 동네 느타리 작목반장 김 씨를 보듯, 쪽 째진 눈초리에 불거져 나온 광대뼈에 부리부리한 눈빛까지 전혀 낯선 구석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일주일 동안 매연 냄새 지독한 울란바타르 언저리만 맴돌다 돌아온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절대 몽골에 가지 말라”고 외치고 다녔다. 


김진경 시인이 몽골을 간다고 했을 때도 나는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며 가지 말 것을 엄중히 경고했다. “거기 갈 바에는 우리 동네로 오셔. 마유주보다 더 션한 막걸리래두 대접할테니.”

문인들 사이에 '국경을 넘'어 제3세계에 대한 징검다리를 부지런히 놓을 무렵이었으니 몽골에도 그런 바람이 불던 듯했다. 알타이 산을 넘는다는 여정에 귀가 솔깃해졌다.  

이런 사연으로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중학 세계사 시간에 졸면서 얼핏 들었던 '고비사막'이라는 말과, 별들에게 타박상을 입으니 머리에 헬멧을 쓰고 가야 한다는 말에 홀려, 소 팔러 가는데 개 따라나서듯 줄레줄레 몽골을 다시 찾아 나선 것이다. 



거기에는 김진경 시인의 다른 말도 한몫을 했다. 

“거 가믄 한 평에 일 원짜리 땅두 있어.”

이 나라에 돈푼깨나 있는 이들 가운데 땅 덕 보지 않은 이가 없으니, 점잖게는 재테크라고 하고 속 편히 말하자면 땅 투기라는 재주 아니던가. 그런 재주가 없어 스스로를 비관하던 터에 그저 땅에 맺힌 한이라도 풀어보려 질리도록 내 땅 좀 가져보자고 비장한 목소리로 “갑시다. 땅 사러.” 하고 나섰던 것이다. 평에 일 원이면 백만 평이라고 해 봐야 요즘 있는 집 애들 군것질거리도 안 되는 백만 원이었다. 백만 평이라면 아침에 나서서 저녁에나 돌아올 면적이요, 혹 돌아오다 길을 잃어 이리저리 헤매어 쓰러져도 얼굴에 웃음을 잃지 않을 땅 아닌가. 어디 나도 내 땅에서 길 좀 잃어 보자. 나도 투기가 아니라 땅이란 것 좀 ‘사랑하여 보자.’

정색을 하고 나서자, 김진경 시인이 여물 씹다 하품하는 소처럼 유난히 큰 눈을 끔벅이며  “근디 물이 안 나와.”한다. 으잉, 물이 안 나오는 백만 평이라. 땅 둘러보러 나갔다가 목말라죽을 땅이요, 일찍이 톨스토이가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라는 글에서 빠홈이 저를 묻고 만 땅이 아니던가. 

좋다. 물 안 나오는 허허벌판이라도 내 땅 일백만 평을 이번 세상에 어디 가서 구하겠는가. 우선 문패 하나 꽂아 놓고, 의자에 앉아 해 저무는 걸 우두커니 바라보고, 어정어정 걷기도 하고, 별들이 우수수 바람에 떨어지는 것도 구경하자. 속으로 그리 생각하고 과연 어떤 땅인가 둘러보자고 나선 마음도 있었다.


가서 만난 고비는 내가 앞서 보았던 몽골이 아니었다. 스텝으로 시작하여 남행할수록 비어져가는 불모의 풍경은 고요하고 적막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거리만큼 비어져있으면서도 고비는 결코 지루하지 않았다. 시들었다가도 소나기를 만나면 일제히 꽃을 피우는 허브들의 향과 메뚜기 날개 소리가 텅 빈 대기에 '성령'처럼 충만했다. 거룩하리만치 '외롭고 높고 쓸쓸한' 고비를 시인들 틈에서 여행하였으니 어떠하였겠는가. 가만히 바라보아도 눈물이 나는 시인들 틈에 백설기에 콩 박히듯 소설가 둘이 낀 것이었다. 

“시인들은 다 저런가.”

해 있는 동안은 멀쩡하다가도 해가 기울어 눈물이 그렁그렁한 별들이 스며 나오면 무슨 늑대인간처럼 뿔뿔이 흩어져 땅에 자빠져 눕기도 하고, 칠흑 야밤에 늑대 울음소리를 내며 몽유병자처럼 이리저리 거니는 것이었다. 저잣거리의 야바위 약장사를 스승으로 삼아온 나 같은 삼류 소설가 입장에서야 순도 높은 고비의 별처럼 지고지순한 시인들의 심경을 헤아리기 어려우니, 밤마다 술 먹기 아늑한 게르에 둘러앉아 코펠 뚜껑 두드리며 세상의 어느 종파에도 속하지 않은 무차별교의 게송이나 읊조리는 게 고작이었다. 

“안주믄가나바라 그칸다구주나바라...”

시인들의 구박에도 불구하고 고비 벌판에서 외로운 소설가 두 마리가 소주병에 꽂은 숟가락을 흔들며 낭자히 염하자니, 드디어 독일이며 이탈리아에서 온 여행자들이 게르 앞에 엎드려 교화되기를 다투더라. 

이렇게 되어먹지 못하고, 신성모독이며, 보드카에 취하는 게 전부였던 여행이건만 이후 ‘아무것도 볼 것 없는’ 몽골에 깊이 함몰되고 말았다. 일부 물정 모르는 이들이 “거기 가 봐야 뭘 볼 게 있다고 한 번도 아니고 자꾸 간대?”라고 묻는다면 “볼 게 없는 거 보러 가는 겨.” 라는 대답을 들어야 했다. 그 뒤로 여름이면 정기화물처럼 몽골항공에 몸을 싣게 되었다. 




이제 바란다면, 아무것도 볼 것이 없는 고비 한가운데 주막 하나를 차려, 귀화하면 몽골 정부에서 거저 준다는 양 다섯 마리에 염소 몇 마리, 말 두 마리쯤 기르면서 그 흰 젖을 마시고, 붉은 살코기로 끼니를 이어가며 일 년에 더도 말고 꼭 여남은 명씩 들르는 솔롱고스 여행객들에게 먹다 남은 마유주나 팔고, 보드카에 물 좀 섞어서 바가지를 씌어 일 년을 살아갈 궁리를 하는 중이다. 되어 먹지 않게 꼭 술상마다 집을 거리를 찾는 한국인들에게는 벌판에 세금도 없이 차르르 차르르 날아다니는 메뚜기를 잡아다가 말똥에 불 붙여 굽고 볶아서 안주로 내놓을 셈이다. 그래도 질깃하니 씹을 살점 타령을 하는 자가 있다면, 타르박 구이는 어떨까. 술만 취하면 집에 간다고 떼를 부리며 밤중에 길을 나서는 이에게는, 그래, 모든 지저분한 것들을 일거에 정리해 주는 ‘만능 청소기’ 늑대가 있잖은가. 고비 주막을 꿈꾸며. 하염없이 책 한 권을 얹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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