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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비 Oct 15. 2019

금기- 금지된 삶의 계율

당신에게 몽골 #5

몽골에는 금기가 많다.


중국 사람은 돈을 믿고, 몽골 사람은 징조를 믿는다는 말이 있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 한정된 자원으로 살아가야 하는 유목민들에게는 무엇보다 근신과 절제가 요구되었을 것이다. 또한 가혹한 천재 앞에서 인간의 한계를 절감하며 겸허와 하늘에 대한 경외심이 오래도록 몸에 배었을 것이다. 하늘을 섬기며 자연에 순응하는 삶의 계율이 금기로 이어진다. 

유목민들의 금기는 칭기즈칸 시절에 법령과 마찬가지로 엄격히 준행되었다. 집안의 불을 꺼뜨리거나, 개울물을 더럽히거나, 집안의 난로에 오물을 태우는 행위는 엄격히 다스려졌다. 현대에 이르러, 많이 완화되었지만 여전히 유목민들의 생활 속에는 금기가 남아 있다. 



여행자들이 알아 두면 좋을 금기 몇 가지를 소개한다.

게르에 들어갈 때는 문지방을 밟지 않는다. 주인의 목을 밟는 행위로 받아들여진다. 지붕과 끈으로 연결되어 있는 문이 쓰러지면 게르 전체가 무너지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게르에서는 시계 바늘 방향으로 이동하여야 한다. 좁은 게르 안에서 우왕좌왕하는 것을 방지하려는 지혜가 아닐까. 게르의 가운뎃자리는 바깥주인의 거처이며, 불상을 모시는 곳이니 함부로 걸터앉는 것을 피해야 할 것이다. 손님의 경우에는 좌측의 침대에 앉는 것이 좋으며, 여자들의 공간에 해당하는 오른쪽은 외간 남자가 피하는 것이 예의이다.

게르에서는 쭈그려 앉지 말아야 한다. 쭈그리고 앉는 것은 개나 하는 자세라고 생각한다. 게르 안에서 차나 술을 따를 때에는 주전자의 꼭지가 문 쪽으로 향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집안의 복이 문으로 빠져나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당을 쓸 때, 집 밖 쪽으로 쓸면 복이 나간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금기와도 비슷하다. 

주인이 주는 술이나 음식은 사양하지 않으며, 반드시 오른손으로 받는다. 왼손은 부정한 손으로 여겨 피한다. 사람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것도 피해야 할 금기이다. 검지로 사람을 가리키는 것은 그 사람을 죽이겠다는 오해를 일으킬 수 있다. 삿대질은 우리도 종종 시빗거리가 되는 일이니 주의할 일이다. 또한 친한 경우라도 어깨나 머리에 손을 얹는 것을 꺼린다. 몽골 사람들은 신이 사람의 어깨에 앉아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함부로 그 어깨나 머리에 손을 얹는 것을 꺼린다. 남의 발을 밟았을 경우에도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 

게르의 기둥을 신성시 여기므로, 두 기둥 사이로 드나들거나, 물건을 주고받는 것을 피한다. 기둥에 부러지거나, 지붕 덮개를 연결한 끈을 끊으면 집안이 망한다고 여기므로 기둥과 지붕 끈은 함부로 만지지 않는다.


모자는 신분을 나타낸다. 모자가 작을수록 지위가 높은 신분을 나타낸다. 모자는 머리를 눌리는 것으로 여겨 윗사람에게는 선물로 하지 않는다. 부득이 모자를 선물할 때에는 모자를 뒤집어서 바친다. 모자는 벗어 놓을 때에도 바로 놓아야 한다. 죽은 사람의 모자만 뒤집어 놓기 때문이다. 모자를 가지고 장난하는 것은 무례한 일로 여기는 것은 우리의 의관문화와도 비슷하다. 

칼을 선물하는 것은 각별한 우정을 뜻한다. 남자들은 외출할 때에 칼을 허리춤에 꽂고 나가지만, 남의 집에 들어갈 때에는 반드시 줄에 매달아 늘어뜨려야 한다. 칼을 허리춤에 꽂고 들어가는 것은 싸우러 왔다는 표시가 될 수 있다.



몽골 사람에게 대지는 어머니와 같다. 짐승을 잡을 때, 그 피를 어머니인 대지에 함부로 버리거나 더럽히지 않아야 한다. 과학적으로는 피 냄새를 맡은 늑대나 짐승들이 몰려들까 봐 이를 피하는 금기라고 생각된다. 

어머니인 대지를 파거나, 그곳에 놓인 돌을 함부로 움직이는 것을 불경스럽게 여긴다. 게르를 지을 때에도 오로지 기둥을 세울 자리 한 군데만 판다. 그 판 자리도 이사를 갈 때면 쌀과 흙으로 정성껏 채워 다듬어 놓고 떠난다. 

특히 제사를 모시는 산(산신령이 있다고 믿는 신성한 산)에는 여자는 오르지 못하며, 그곳의 돌 하나도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 항가이 부근에서 제사 지내는 산을 넘다가 차가 수렁에 빠진 적이 있다. 건져내면 빠지고, 다시 건지느라 날이 저물 판이었다. 수렁에 빠진 차를 건지기위해 주변의 돌을 주워다가 바퀴에 받치게 되었는데 몽골 여자 가이드가 그 와중에도 주변의 돌을 파내지 못하게 했다. 


널리 트인 평원으로 되어 있는 몽골 고원에서 산은 신성한 것으로 여겨진다. 높은 산이나 제사를 지내는 산을 지날 때에는 그 산의 이름을 불러서는 안 된다. 여행을 하면서 큰 산을 지날 때마다 가이드에게 산의 이름을 물었지만 우물거리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산의 이름이 없거나, 이름을 몰라서 그러는 줄 알았다. 나중에야 산을 오를 때에 산의 이름을 입 밖으로 내어놓는 것을 꺼리는 금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산을 지칭하는 여러 명칭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할항(khairkhan)’이라는 말은 산에 대한 최고의 존칭이다. 부모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산이라는 신성한 존재를 경외하는 마음이 담겨 있는 금기이다. 산에서 내려와서는 그 이름을 부를 수 있다. 우리의 금기 중에도 바위에 함부로 이름을 붙이지 말라는 금기가 있다. 바위에 이름을 붙이면 평생토록 그 바위를 책임지고 제사를 지내 주어야 한다고 한다.

턱을 받치면 고생을 하며 산다는 금기도 우리와 비슷하다. 여행을 떠나는 차의 바퀴에 수태차와 우유를 뿌려 안전을 기원한다. 새 차를 사면, 안전운행을 위해 바퀴에 술을 뿌리는 우리의 풍습과 비슷하다.  


공산 혁명을 거쳐 러시아의 영향을 받으며 몽골의 금기는 유명무실한 존재가 되었다. 개울에 들어가 몸을 씻으면 사형에 처하던 칭기즈칸 시절의 금기가 생각나, 무릉의 개울에서 세수를 할 때도 행여 누가 목을 자를까 싶어 이리저리 눈치를 살펴야했다. 개울에는 들어가지도 못한 채 살며시 손을 담가 얼굴을 씻고 있는데, 저 아래에서 몽골 운전사들이 개울에 차를 집어넣고 세차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금기 없는 세상이 행복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몽골에 한번 온 사람은 반드시 다시 찾게 된다는 ‘금기 아닌 금기’가 오래도록 남아 있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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