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몽골 #7
세 줄도 길다
몽골의 대표적인 전통 현악기이다. 아랍의 라바브(Rabab)라는 악기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지는 마두금은 우리의 해금이나 중국의 얼후(二胡)를 닮았다. 마두금의 구조는 아주 단순하다. 달랑 두 줄로 되어 있는 마두금은 보기와 달리 오묘하며 애절한 소리를 낸다. 얼핏 들으면 벌판을 오가는 바람 소리 같기도 하고, 초원을 달리는 말발굽 소리 같기도 하다. 그 소리는 사람의 가슴을 쥐어짜기도 하고, 격하게 고동을 치게도 한다.
얼핏 보면 단순해 보이는 악기이지만, 마두금을 만드는 과정은 까다롭고 정성이 많이 들어간다. 잘 마르고 뿌리 깊은 나무로 만드는데, 줄은 말총을 쓴다. 마두금의 한 줄은 숫말의 꼬리털 130가닥을 꼬아 만들고, 다른 하나는 암말의 꼬리털 105가닥으로 만든다. 종마의 말총은 쓰지 않는다. 몸체를 말가죽으로 씌우고, 악기의 끝에는 말의 머리가 새겨져 있어 마두금(馬頭琴)이라 부른다. 몽골말로는 ‘모린 호르(말 악기)’이다.
마두금은 평생을 말과 함께 살아가는 몽골인들에게 말의 화신이나 다름없다. 두 줄을 이리저리 문질러 말이 달리는 소리며, 두 발을 치켜들고 투레질을 하거나, 큰 소리로 우는 소리를 켜낸다. 마두금 연주를 듣자면, 설화 속의 나오는 말의 슬픈 사연이 머리를 스친다. 마두금에는 여러 전설이 있지만, 대체로 죽은 말을 기리기 위해 만든 악기라는 점은 다르지 않다.
몽골을 떠올리자면, 바람에 날리는 초원의 들꽃들 사이로 들려오는 그 애잔한 마두금의 소리를 잊지 못한다. 새끼에게 젖을 물리지 않는 낙타에게 마두금을 들려주면 눈물을 흘리며 새끼에게 젖을 물린다. 마두금은 천하영웅인 칭기즈칸의 마음도 움직였다. 칭기즈칸이 고려 여인에게 빠져서 정사를 소홀히 하자, 신하들이 마두금을 켜서 그 마음을 돌렸다.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에는 세 줄도 너무 길다.
바얀자크의 여행자 캠프에서 저녁노을을 배경으로 초원에서 듣던 마두금 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후벼 파는 듯했다. 마두금 연주에 맞추어 몽골인 가이드 보드르마가 들려준 몽골의 국민가요 ‘사흥 에이지(아름다운 어머니)’라는 노래의 가락은 아무리 목석같은 사람이라도 눈물을 흐르게 하고야 말 것이다.
마두금은 울란바타르 시내의 공연장 두 곳이 있으니 다른 전통예술 공연과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운이 좋다면 여행자 캠프에 마두금 연주자가 있어 약간의 팁을 주면 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 바얀 자크와 엉기 히드, 하르허린의 캠프장에서 마두금 연주를 청하여 들은 적이 있다.
그럴 형편이 되지 않거나, 몽골여행의 마두금 소리를 잊지 못하여 병이 날 지경이라면 한국에 있는 몽골문화촌에서 마두금 연주를 감상할 수 있다.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에 있는 몽골문화촌에서는 정기적으로 몽골전통예술 공연을 한다. 몽골 여가수가 부르는 ‘잠깐만 잠깐만’ 트로트 노래를 참고 들을 수 있다면 한국에서도 허미와 마두금 노래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마두금은 고비에서 들어야 제 격이다. 몽골 악사가 쓰던 마두금을 선물 받은 적이 있다. 슬쩍 현을 켜니 몽골의 바람소리가 난다. 그런데 며칠 지나 마두금을 켜려니 아무 소리가 나지 않는다. 소리는커녕 누가 줄을 풀어 놓은 것처럼 늘어져 도저히 현을 문지를 수가 없었다. 나중에야 말총으로 만든 마두금의 줄들이 습기에 따라 민감하게 늘어나고, 오므라든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실제로 한국에 와 있는 몽골의 마두금 악사들도 비가 내리거나 습기가 많은 날에는 연주를 포기한다고 했다. 마두금이야말로 고비의 악기임이 틀림없다.
마두금과 비슷한 몽골의 악기로 이흐헬이라는 것이 있다. 마두금과 마찬가지로 2줄의 현악기이지만, 몽골의 5가지 가축의 머리를 장식으로 하고 있는 점이 다르다.
초원의 노래
허미는 몽골 고원에서 살아가는 유목민들의 고유한 창법이다.
일명 ‘throat song’이라 불리는 허미는 사람의 목청과 배, 머리 등을 이용하여 두 가지 이상의 소리를 내는 독특한 창법이다. 한 사람이 여러 소리를 동시에 낼수록 고수로 인정된다. 허미의 기원은 정확히 알려져 있지는 않다. 대체로 허미 창법으로 불려지는 ‘토올’이라는 노래들은 몽골의 영웅이나 자연을 찬미하는 서사시가의 형태이다. 토올치는 토올을 전문적으로 부르는 가객을 말하는데, 마두금과 비슷한 톱쇼르라는 현악기를 반주로 토올을 부른다. 토올은 토올치만이 부르며, 아무 때나 부르는 것이 아니다. 주로 가을에서 겨울철에 해가 진 다음에만 토올치를 초청하여 듣는다. ‘토올’은 몽골의 토착신앙과 연관되어 사회주의 시절에는 금지된 적이 있다. ‘토올’은 운문의 형태로 문자의 기록이 없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데, ‘더워 하르 부르’라는 토올은 가사가 7만 줄이나 되어 완창하려면 사흘이나 걸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흡사 소리꾼을 청하여 듣던 우리의 판소리를 연상시킨다.
흉노 때부터 시작되었다는 허미는 목과 배와 머리에서 내는 소리로 3옥타브를 넘나드는 음역대를 지닌다. 늑대의 울음을 흉내 낸 창법이라고 하는데, 내가 듣기에는 늑대 울음소리보다는 초원의 바람소리나 메뚜기 날개 소리들과 닮았다는 느낌이 든다. 유목민들 사이에 전해오는 허미는 양떼를 불러 모으기 위해 먼 거리까지 전달될 수 있는 가성들을 쓰기 시작한 데서 만들어진 창법이 아닐까 싶다. 허미는 몽골의 자연을 이해하고, 자신의 호흡을 가지고 놀 줄 알아야 가능한 창법이라고 한다.
허미는 대체로 몽골 서북의 알타이 산맥 주변에 유래를 두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도 홉드와 찬드마니에는 허미의 명인들이 많다. 허미는 몽골에서도 능숙한 사람을 만나기 쉽지 않다. 대략 만 명 가운데 한 명의 비율이라 한다. 요즘은 고등학교 음악 과목에 포함되어 허미를 배운다 한다.
허미 노래가 몽골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러시아의 투바 공화국에도 있다. 몽골의 허미가 유목민들 사이에 전래되고 있는 데 비해 쾨미이(khoomei)라고 불리는 투바의 허미는 현대적으로 발전시켜 ‘세인코 남실락’(Sainkho Namtchylak) 같은 가수와 'Hunn hunn tu' 연주단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몽골 고원의 한 부족이었던 투바 사람들이었으니 몽골의 허미와 맥을 함께 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허미와 더불어 장가(long song)로 불리는 ‘오르틴도’도 아름다운 음악이다. 주로 여성들이 부르는 장가는 몽골 초원의 풍광과 가축들과 고향의 풍속들을 노래하고 있어, ‘초원 목가’라고도 불린다.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장가는 티벳의 음악과 비슷한 가락과 창법을 보인다. 이 장가의 창법은 우리의 창(唱)과도 비슷하여 낯설지가 않다. 몽골의 전통음악들은 대체로 남성의 낮고 어두운 저음과 여성의 높고 청아한 고음이 조화를 이루는데, 이질적인 소리들이 절묘하게 어울리는 화음을 접하자면, 그야말로 푸른 늑대와 흰 암사슴의 신화적 원형이 그대로 음감으로 나타난 듯하다. 남성이 부르는 허미의 저음부는 흡사 현대 대중음악의 랩을 연상시킨다. 1991년에 결성된 울란바타르의 몽골 전통음악 밴드 ‘Egschiglen’의 ‘Talin Salhi’란 노래를 들어보면, 남녀 혼성밴드인 우리의 ‘영턱스’나 ‘룰라’의 음악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 밖에도 마부들이 부르는 말 노래가 있으며, 몽골의 울란바타르 시내의 주점이나 클럽 등에서는 몽골의 현대 대중음악도 들을 수가 있는데 수준이 예상 밖으로 뛰어나다.
몽골 사람들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가무를 즐긴다. 가축을 돌보고 살아가는 유목민의 생활상을 춤으로 표현했다는 ‘빌게’라는 전통춤의 춤사위는 발과 팔의 동작이 빠르고 활달하고 힘차다.
몽골에는 시를 사랑하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시 낭송대회가 열리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암표까지 돈다고 한다. 암표라면 야구경기나 인기 연예인의 콘서트라면 모를까. 줄을 지어 시를 들으려는 사람들의 모습은 이야기만으로도 가슴이 떨려온다. 투기 지역의 아파트를 청약하기 위해 밤을 새워 줄을 서던 우리로선 상상할 수 없는 장면이다. 시를 듣기 위해 사나흘씩 말을 달려온다는 사람들이야말로 한 편의 시가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