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날
나라에서 헤이안으로 천도할 때의 교토는 지금처럼 도시의 모습과 전혀 달랐다. 완전히 새로운 도시를 새워야 했던 이들이 참고한 것은 중국의 <주례>와 당나라의 장안성이었다. 당대 세계 최고의 도시였던 장안성은 완벽한 바둑판 모양의 계획도시였다. 성의 북쪽에 황궁이 있어서 남쪽으로 주작대로가 뻗어나가는 도시의 모습은 비단 헤이안쿄 뿐 아니라 당대의 전형적인 수도의 모습이었다(경주도 그러했다). 주작대로를 기준으로 동서의 대칭을 이루게 계획한 도시의 모습은 세월이 흐르면서 파괴와 변형의 과정을 겪는다. 도지(동사)는 그 중에서도 옛 헤이안쿄의 대칭성을 보여주는 몇 안되는 증거 중 하나다.
도지는 이름 그대로 동쪽의 사찰, 정식명칭은 교토 호국사다. 헤이안쿄를 건설할 때 호국사찰로서 주작대로를 기준으로 남문 뒤에 도지(동사)와 시지(서사)를 건설한 것이 시작이다. 796년에 창건된 사찰의 역사는 곧 교토의 역사와 같을 정도로 그 역사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도지의 랜드마크는 일본에서 가장 높은 목조 건축물인 도지 오중탑인데 그 높이가 55미터에 달한다. 그 높이가 상당할 뿐더러, 도시의 정문인 남쪽의 라쇼몬으로 들어오는 이들이 도지 오중탑을 보면 비로소 교토에 왔음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도시의 대표적인 랜드마크였다고 한다. 지금에야 기요미즈데라니, 킨카쿠지니, 교토를 상징하는 다양한 랜드마크가 많이 있지만, 도지 오중탑과 전통가옥들이 만들어내는 지붕선은 교토의 가장 오래된 상징과도 같다.
도지 오중탑. 일년 중 며칠만 내부를 공개한다
정문, 금당, 강당으로 이어지는 일직선의 가람 배치는 지겨울 정도로 전형적이다. 다만 도지 오중탑과 함께 금당의 연식과 규모가 대단하여 그 웅장함에 일단 압도당한다. 사찰의 역사가 오래되서 인지 사찰 안의 나무들 마저 거대해다. 물론 현재의 건물들은 대부분 에도 막부 시기에 재건된 것들이다.
그 중에서도 호조(보물창고)는 오닌의 난에서 살아남은 것으로 도지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주변에 연꽃을 심은 해자로 방비를 하고 있고 쥐나 벌레가 올라와 갉아먹지 못하도록 바닥을 땅에서 조금 띄우고 벽을 오돌토돌하게 만든 것이 인상적이다. 헤이안 시대 때부터 이어진 역사성 때문에 국보로 지정돼 있다.
호조는 헤이안 시대 건축물로 보물창고다. 1000년에 지어져 화재가 난 것을 1198년에 복원한 것이다. 안에 있던 보물들은 지금 보물관에 옮겨서 보관하고 있다고.
도지가 유명한 것으로는 오중탑 말고도 금당과 강당의 불상들이 있다. 금당에는 약사여래 본존불과 십이신장상이 있다. 금당의 크기도 크기인 만큼 불상의 규모도 굉장하다. 중앙의 약사여래 좌상은 십이신장이 받들고 있으며, 좌우로 협시보살 입상이 있다. 사진으로는 그 크기가 가늠이 잘 가지 않지만 매우 크다. 금당 내부는 산쥬산겐도처럼 채색 등의 장식이 전혀 없어 화려한 멋은 없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불상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매력이 있다.
금당, 약사여래 본존불과 십이신장상
뒤의 강당은 금당에 비하면 건물이 작고 소박하지만 내부에 모시고 있는 입체 만다라는 말문이 턱 막히는 풍경을 연출한다. 만다라란 부처가 도달한 해탈의 경지와 우주의 삼라만상을 묘사한 것인데 주로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 일반적이다. 입체 만다라는 그것을 조각을 통해 표현한 것으로 도지 강당의 입체 만다라는 21개의 불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크기로만 따지자면 물론 금당의 약사여래 본존불 쪽이 더 거대하지만, 수십개의 불상이 그리는 만다라의 세계는 가히 눈이 돌아가는 경지다. 도지 오중탑과 그 정원이 연출하는 그림을 사진으로 담고 싶어서 도지에 왔는데, 오히려 입체 만다라만 기억에 남으니 본말이 전도된 셈이다.
강당과 입체 만다라. 21개의 불상 중 15개는 창건 당시의 것으로 약 1300년이 넘은 것들이다.
사진을 못 찍어서 엽서라도 사려고 했는데 산쥬산겐도에서처럼 멋지게 찍은 사진이 없어서 사지 않았다. 지금은 그거라도 사지 않은 것이 못내 후회된다. [사진출처 도지 안내 팜플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