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희미한 선을 만날 때까지
1. 이직을 주제로 여기저기서 강연을 하곤 하지만,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내 커리어에 대한 의심과 불안으로 가득했다. 남들이 보기엔 예쁜 이력서이지만 내가 보기엔 이도저도 아닌 마케터가 된 것 같았기 때문이다.
2. 주니어 시절부터 누군가 ‘지은님은 어떤 리더가 좋은 리더라고 생각하나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다양한 경험을 기반으로 상황에 맞는 마케팅 전략을 잘 짜는 리더요’라고 답하곤 했다.
3. 그러한 나의 리더상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특정 마케팅 분야에 집중하는 것보다 여러 직무/산업/기업규모에 대한 경험치를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이를 위해 선택적 이직을 하기도 했다.
4. 10년 동안 6번의 이직. 콘텐츠, 퍼포먼스, 브랜드, 전략까지 다 경험해봤다고 말은 하면서도 그 것이 정말 강점이라고 할 수 있나? 의심이 들었다. 한 가지 마케팅 분야를 깊게 디깅하며 연차를 쌓고, 책이니 강연이니 멋지게 확장해가는 친구들을 보며 더더욱 위축되기도 했다.
5. 그러한 불안감이 스스로에 대한 확신으로 바뀐 것은 대기업에서 다시 스타트업으로 돌아와 ‘마케팅 팀장’ 롤을 수행하기 시작한 이후였다. 그동안은 여러 회사에서 쌓은 경험치가 제각각 병렬적으로 존재했다면, 스타트업에 돌아온 후 그 경험들이 연결되며 하나의 메타 경험으로 완성되어 내 모든 의사결정에 시너지를 냄을 느꼈다.
6. 또한 스타트업부터 대기업, 다시 스타트업으로 온 독특한 경험 덕분에 스타트업에 있는 주니어들이 어떤 고민을 하고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있으며, 스타트업과 대기업의 경험을 기반으로 이런저런 상담을 해주는 파트너가 될 수 있는 것도 나의 강점 중 하나가 됐다.
7. 나의 커리어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유니크한 것’임을 인정하자 그간의 내 노력과 현재의 나 자신이 더없이 자랑스럽고 만족스럽고 소중해졌다.
8. “Connecting the dots”라는 문장을 떠올려본다. 그 순간에는 전혀 상관없게 느껴지던 일들이 어느 순간 하나의 연장선상에 있는 일들처럼 관계성이 연결이 된다는 것이다.
9. 사람마다 경험의 점들이 선으로 연결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제각각이다. 나 또한 희미한 선을 만나기까지 10년이 걸렸고, 이 선이 단단해지려면 앞으로 얼마의 시간이 더 걸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건 이 희미한 선을 한번 만난 후 새로운 점들을 찍어가는 것에 예전같은 불안함을 느끼지는 않게 되었다는 거다.
10. 그러니 의심과 불안을 넘어 하나하나 점을 찍는데 집중해보자. 나만의 희미한 선을 만날 때까지.